[기고]법흥 대종사의 법시공덕을 기억합니다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선의 세계’ 편찬 주도하며 수행·전법 뜻 전한 원력 행자 수천 권의 책을 사비로 구입해 법보시한 ‘법시제일’ 스님
조계총림 송광사의 도연법흥(度然法興, 1931~2025)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지난 7월 1일의 일이었는데, 5일에서야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영결식이 봉행되는 날이었습니다. 송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스님의 각령(覺靈) 앞에 삼배(三拜)를 올리는 것이 도리인 사람입니다.
스님의 열반과 영결에 대한 소식은 ‘법보신문’의 신용훈 기자가 쓴 보도에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비록 생전에 스님을 직접 친견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글을 통하여 스님의 생애와 교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중대사실’이 빠져있기에 이 글을 씁니다. 그 빠져있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며, 기억해야 할 사실이고, 또한 본받아야 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스님을 뵙게 된 것은, 1987년 2월 송광사에서 보조사상연구원이 설립되면서였습니다. 당시 주지 현호 스님은 제8차 중창불사를 하고 있었으며, 건물의 불사만이 아니라 보조지눌 스님의 정혜결사 가풍을 잇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법정 스님을 원장으로 모시고, 보조사상연구원이 출범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석사과정 학생으로서, 연구원의 간사 소임을 맡았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축복이자, 가피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송광사를 오며 가며, 화엄전에 주석하시던 법흥 스님 역시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스님을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스님께서 편집·발행한 ‘선의 세계’(호영출판사, 1992. 2010년 제11판 발행) 덕분입니다. 스님이 기획하시고, 사진작가 안장헌 선생이 사진을 제공하였는데, 저는 ‘교정’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송광사는 근대사의 격변을 거치면서 많은 파괴와 화재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후 8차에 걸친 중창불사로서 이제는 대가람의 면모를 드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 송광사의 역사적 전통과 현금의 수행자들을 잇는 공감대인 선을 주제로 하여 책을 펴내는 일은 매우 의의 있는 작업일 수 있다.” 머리말에 해당하는 글, ‘선의 세계를 펴내면서’의 한 구절입니다. 얼마나 힘 있는 말씀인지, 생생하게 그 음성이 전해져 옴을 느낍니다.
이렇게 하여 자주 스님을 뵙게 됩니다만, 제가 이 글을 통해서 전하려고 하는 스님의 모습은 ‘선의 세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송광사 화엄전의 스님 방(방우산방)을 찾아가서 스님을 친견한 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스님이 계신 그 방, 좌우로 연결된 창고방마다, 방방이 쌓여져 있는 책들 말입니다. 어느 출판사의 창고와 같은 책방입니다. 수백 권씩, 수천 권씩 쌓여있습니다. 몸소 읽으시다가,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시면, 이 책을 불자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면, 스님께서는 대량구입하시고 대량으로 법보시하셨습니다.
2017년에 보조사상연구원 원장이 되어서 학자들과 학생들을 이끌고 송광사를 찾았을 때도, 스님의 그러한 모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날도 저는 양손에 가득 책들을 들고 스님의 방을 나왔습니다. 제가 읽을 책을 그렇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서 읽게 하라고 그렇게 바리바리 싸서 주신 것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닐 터입니다.
상좌 스님들이나 신도님들이 주시는 ‘약값’을 모으고 또 모아서, 스님께서는 법보시불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감히 스님을 ‘법시제일(法施第一)’로 추앙합니다. 법흥 스님만큼, 평생에 걸쳐서 법보시를 실천해 오신 분이 또 계신지 어떤지는 알지 못합니다. 혹 계시다 하더라도, ‘공동우승’일지언정, ‘2등’은 될 수 없는 분입니다.
스님께서는 다음 세상에서도 법보시불사를 이어가실 분이라는 점은, 그 방우산방에서 책을 한 권이라도 얻어 온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실 것입니다. 스님,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스님의 법시공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배상
[1785호 / 2025년 7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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