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출가 여정 시작과 달

어디에서 달을 찾으랴 대승의 ‘달’은 본래면목 상징 태양, 군주 상징인 시대 지나 달로 상징되는 국민시대 도래 각자 ‘빛나는 달’임을 보아야

2025-07-25     김백영

‘태자 싯달타’는 모두 잠든 한밤중에 성을 떠나 출가를 감행하였다. 이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출가란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첫 시도이다. 모두가 오욕에 취해 있는데 홀로 이를 뛰어넘고자 위대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밤이라도 달은 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잠들어 고요한데도 달은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달은 초승에서 보름과 그믐을 거쳐 적멸에 든다. 다시 초승달로 태어나 그믐까지 생사의 과정을 반복한다. 대승불교에서 달은 본래 면목을 상징한다. 이 점에서 출가란 달을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볼 수 있다.

‘지월록’에선 달을 잊은 채 손가락만 보는[見指忘月]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다음과 같은 일화도 보인다.

설봉이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을 가리키자, 흠산이 “물이 맑으면 달이 나타나지 않느냐?”라고 하자 설봉이 웃으면서 “물이 맑으면 달이 사라지지”라고 답한다. 옆에 있던 암두가 일어나 물그릇을 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필자가 보기에, 흠산은 달에 묶였고 설봉은 물에 묶였으며, 암두는 그물에서 벗어났으나 너무 거칠었다.

달을 찾아 여정에 나선 나그네는 결국 집으로 돌아온 마당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출가한 그날 밤의 달을 보게 된다. 달은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승행자는 생사즉 열반이라는 묘리를 터득한다. 반면 중생은 물에 비친 달이 실체인 줄 알고 붙잡으려 허우적댄다. 이규보의 시 ‘우물 안의 달[詠井中月]’을 보면, 스님이 달을 탐하여[山僧貪月色] 병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어[幷汲一甁中] 절에 돌아와 비로소 깨달았다[到寺方應覺]. 병을 기울이니 달 또한 비게 됨을[甁傾月亦空].

필자는 2023년, 이에 관한 그림 한 점을 미국 텍사스주 킴벨미술관 동양관에서 뜻깊에 보았다. 일본 화가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가 그린 ‘달을 건지려는 원숭이’다. 우리 생활에서 가장 친근한 별은 해와 달이다. 해는 찬란해 제왕을, 달은 어슴푸레해 백성을 상징한다.

이집트의 파라오, 고구려 동명왕,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의 난생설화는 모두 태양의 상징이고 천손사상을 보여준다. 해는 권력과 남성의 상징이며 파괴적이기도 하다. 태양이 너무 강렬하게 계속되면 만물이 말라 죽게 된다. 절대 권력이 너무 강압적으로 작용하면 폭력으로 변하여 국민이 다치게 된다. 반면 달은 여성의 생리와 주기를 맞추고 있어 여성의 상징이기도 하며, 조수와 관계를 맺고 있고 원시 생명체가 바다에서 출현한 만큼 생명력의 상징이다. 달빛은 아무리 강해도 만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달과 달빛은 신비감을 더해 준다.
신비란 현묘(玄妙)하다. 현이란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니다. 15세기 일본 제아미(世阿彌)는 ‘풍자화전’에서 천하제일의 아름다움은 “정월 대보름날 계림의 달빛”이라 하였다.

지금은 태양의 시대가 아니고 달의 시대다. 태양왕이라고 칭한 프랑스 부르봉 왕조 루이 14세의 후손 왕조는 프랑스 혁명으로 사라졌고, 절대 왕정도 오래전에 무너졌다. 달로 상징되는 국민과 시민이 주인되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 ‘TV부처’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이제 고개를 들어 우리 속의 달을 봐야 한다. 그러나 달을 보려는 대상으로 여기는 순간, 그르치게 된다. 왜냐고? 우리가 바로 달이니까!

김백영 변호사 bykim8711@daum.net

[1787호 / 2025년 7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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