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천주교 사제들 성 범죄 ‘강 건너 불’ 아니다

2025-08-08     이병두

아동 성범죄 은폐라는 충격적 사건을 다룬 영화가 있다. 천주교의 미국 보스턴교구 사제 성추행 사건을 파헤친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프랑스 리옹교구 사건을 다룬 ‘신의 은총으로’이다. 두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몇 해 전 ‘스포트라이트’를 보고서 안타까움과 분노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어느 언론사나 기자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올리히 슈나벨의 ‘종교는 왜 멸망하지 않는가’를 읽다가, 미국 가톨릭교회에서 벌어진 아동 성범죄 은폐 사건을 접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충격을 받았다.

2000년대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 윌리엄 롭델은 한 교구가 어느 법대생에게 배상금 500만 달러를 지급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취재 과정에서 그는 수십 년간 이어진 은폐 구조를 확인하게 되었고, 마침내 미국 전역에서 1만 명이 넘는 피해자들의 고소가 이어졌다. 혐의를 받은 사제만 4000명 이상, 지급된 배상금은 20억 달러에 달했으며, 여섯 개 교구가 파산했다. 문제는 교회의 대응 방식이었다.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조직의 체면을 우선시했고, 범죄 사제를 다른 교구로 전임시켜 사건을 덮었다. 추적을 피해 해외 도피를 돕기까지 했다. 신자들은 ‘사제를 보지 말고 그 뒤의 십자가만 보라’는 권유 속에 이 문제를 외면했다.

아일랜드‧독일‧프랑스 등지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었고, 아시아와 남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는 특정 국가와 종교의 문화 차이가 아니라, 성직 중심의 권위 구조와 조직 보호를 우선시하는 관행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제도화된 종교라면 어떤 종교든 겪을 수 있는 위험이다. 같은 문제가 특정 국가와 종교 가릴 것 없이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문과 은폐가 이어진 결과, 세계 천주교회의 재정도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교구가 거액의 배상금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했고, 최근 교황이 전 세계 신자들에게 특별 헌금을 요청한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과거 튼튼한 재정을 자랑하던 바티칸까지 재정난에 직면했다. 신앙의 이름으로 모은 헌금이 피해자 지원과 교회 유지에 쓰이는 것은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배경에 누적된 구조적 잘못과 은폐가 있다는 심각한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이 옳을까.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신앙과 제도는 구별되어야 한다. 신앙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제도는 이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제도가 신앙 위에 군림하면 그 종교는 도덕성을 잃고 권력 집단으로 변한다.

종교가 본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비‧참회‧투명성이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자비, 잘못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바로잡는 참회, 권위보다 책임을 앞세우는 투명성. 이러한 요소가 없을 때 종교는 더 이상 신앙 공동체가 아닌 권력 조직에 불과하다.

신앙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종교는 그 도덕성에서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 세속 권력보다 더 위험한 힘이 될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와 ‘신의 은총으로’가 보여주듯, 종교가 지켜야 할 것은 맹목적 신뢰가 아니라 투명한 책임성이다. 우리가 어떤 종교를 믿든, 그 제도가 신앙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종교와 신앙을 살리는 길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788호 / 2025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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