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미니멀리즘

조금만 덜 소비하고 덜 낭비하고 덜 무심해진다면 지구도 다시 시원한 바람으로 응답할 것

2025-08-18     선우 스님

아침 일찍 산을 오르면 바람이 참 시원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는 바람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고,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은 마치 밤새 숲이 내쉰 깊은 숨결처럼 고요하고 맑다. 자연이 낮 동안 흡수한 열기를 조용히 식혀내고 있는 듯하다. 낮에는 그토록 뜨겁던 공기가 어디로 갔는지, 새벽이 되면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 호흡을 회복한다. 자연은 늘 헐헐 통하고, 시원하며, 순환하는 숨결을 품은 존재다.

하지만 도시로 내려오면 풍경은 전혀 다르다. 시멘트 위에 붙잡힌 열기는 밤이 되어도 식지 않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열기를 뿜어내는 에어컨 실외기, 하늘을 밝히는 인공조명과 소음이 밤공기마저 탁하게 만든다. 나무 그늘에 숨어도 식지 않는 그 열기, 그것은 햇볕이 아니라 지구가 열이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혹시 내가 내쉰 숨이 지구를 데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물론 인간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쉰다. 문제는 그 한 숨을 편히 쉬기 위해 만들어낸 삶의 방식이다.

과잉 생산, 소비, 폐기, 이 모든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의 무게를 남기고, 그 무게는 다시 열이 되어 지구의 숨통을 죈다. 탄소, 그 보이지 않는 흔적을 일상에서 추적해본다. 플라스틱을 덜 쓰면 바다거북이 목숨을 건질 수 있고, 고기를 줄이면 2000L의 물이 절약된다. ‘채식이 기후행동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육류 1kg을 생산하는 데에는 많은 자원이 들고,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배출된다. 전원 버튼, 일회용품 하나가 결국 지구의 온기를 만들고, 그 열기는 숲의 새벽마저 덮어버린다.

이렇듯 탄소는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진짜 문제는 배출 자체보다, 그것이 얼마나 무심히 이루어지는가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전기 스위치를 누르기 전, 이 빛이 정말 지금 필요한 것인지, 음식 한 끼를 남기기 전에 그 뒤에 숨은 시간과 자원, 그리고 버려질 때 발생할 온실가스를 떠올려본다.

마치 명상을 하듯, 내가 만든 파문이 자연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며, 조용한 책임일 것이다. 숲이 우리 대신 열기를 식히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다. 기후위기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 업보다. 탄소 미니멀리즘은 생활양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명과 다음 세대, 모든 존재를 향한 자비로운 책임이어야 한다. 자연을 ‘자원’이 아니라 ‘존재’로 대하고, 탄소 발자국이 아니라 자비의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가야 한다.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가볍게, 조심스럽게 살아야 할 때다. 조금만 덜 소비하고, 덜 낭비하고, 덜 무심해진다면 지구도 우리에게 다시 시원한 바람으로 응답할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제 작은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불편한 선택이 누군가의 생명을 위한 그늘이 될 수 있다면, 그건 결코 불편한 일이 아니다.
아침의 산사에서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호흡한다.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가는 존재로서의 나. 내가 머문 자리마다 조금은 시원한 숨결이 남기를….

선우 스님 부산 여래사불교 대학 학장 bababy2004@naver.com

[1789호 / 2025년 8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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