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칠석의 견우 직녀와 인욕바라밀
칠석, 사랑에서 무상·인욕을 배우다 칠석이 일깨운 애별리고 괴로움 속에 드러난 진리 인욕이 빛내는 수행의 길 인연 지키는 자애의 발원
각 나라의 미풍양속과 불교의 만남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한나라 때로 2세기 이후 중국 전통문화와 유교·도교(老莊思想)의 사상을 빌려 불교를 해석한 격의불교(格義佛敎)와 깊이 연관돼 있다.
민간에서 전해오는 칠석(七夕)은 음력 칠월 초이렛날 밤, 은하수 동쪽의 견우와 서쪽의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다리인 오작교(烏鵲橋)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애틋한 날을 말한다.
옛날 옥황상제가 머무는 은하수 동쪽에 부지런하고 착한 목동(牧童) 견우가 살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베를 짜는 일을 맡은 손녀 직녀와 견우를 결혼시켰다.
결혼 후 두 사람은 너무나 뜻이 잘 맞아 사이좋게 지냈다. 그런데 할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으련만, 산과 들로 놀러 다니기에 바빠 농사와 가축 기르기, 옷감을 짜는 본분사를 소홀히 했다. 이 일로 천계의 질서가 어지러워져 사람들이 천재(天災)와 기근(飢饉)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보다 못한 옥황상제는 견우를 동쪽 독수리자리 알타이르(Altair)에, 손녀 직녀를 서쪽 거문고자리 베가(Vega)에 살도록 둘을 갈라놓았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만 태우게 되었는데,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이 해마다 다리를 놓아주었다. 다리를 건넌 두 사람은 하루 동안 만나고 다시 헤어져야 했다.
그래서 칠석 전날 내리는 비는 동서에서 오작교를 건널 수레를 깨끗이 씻어주는 비라 하고, 낮에 오는 비는 기쁨의 눈물, 저녁에 내리는 비는 헤어짐의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이런 애틋한 사연은 하늘의 일이나 인간계의 일이나 모두 무상(無常)하며, 뭇 생명이 겪는 여덟 가지 고통의 뿌리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근본적인 네 가지 고통 외에도,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오온성고(五蘊盛苦),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있다. 견우와 직녀의 이별은 애별리고의 전형이다. 그리고 각자의 임무에 성실히 임했다면 옥황상제가 둘을 갈라놓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떠올리면 육바라밀 가운데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 생각난다.
보시도 중요하고, 지계도 중요하며, 정진·선정·지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를 더욱 빛내주는 바라밀은 인욕바라밀이 아닐까 싶다. 지혜롭게 잘 참는 바라밀의 대표적 사례로 ‘금강경’에 석가모니의 전생담인 인욕선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 범부들은 그와 같이 목숨마저 초개(草芥)처럼 여기는 경지를 따라 하지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업 가운데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만으로도 십선행 중 일곱 가지를 실천할 수 있으니 그 비중은 참으로 크다.
기도 끝에 하는 축원문에도 귀인상봉(貴人相逢)이 있다. 귀한 인연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자 행복이며, 그 인연을 잘 지키고 이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칠석을 맞아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단순히 애틋한 로맨스로만 여기지 말고, 각자의 일에 충실하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자애(慈愛)의 발원을 해보기를 권한다.
덕산 스님 조계사 교육수행원장 duksan1348@nate.com
[1791호 / 2025년 9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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