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붓다의 성도와 대중견성

견성, 소수 전유물 아닌 만인의 길 붓다의 깨달음, 연기·4성제 견성이란 본래 성불의 자각 인가에 갇힌 선종의 기득권 대중에게 열린 평등 가르침

2025-08-29     김백영

고타마 싯달타는 고행을 포기하고 기력을 회복한 뒤 보리수나무 아래 길상초를 깔고 고요히 앉아 깊은 사유에 들어가, 35세 납월 8일에 샛별을 보고 대각을 성취하였다.

불전에 의하면 그는 인간과 이 세계가 연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종교적 체험을 자각하였다. 연기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연기를 불이중도(不二中道)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붓다의 깨달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인도 사회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라문교가 지배하던 제사 문화와 새로운 사상인 6사외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라문교는 브라만이 지배하는 신의 섭리라는 세계관과 인간의 행위에 따른 업이 지배하는 업 사상을 숙명론처럼 유행시켰다.

붓다의 깨달음은 4성제와 8정도로 정리된다. 이 세계를 고(苦)로 진단하고, 그 원인을 무명에서 비롯된 욕망으로 보며, 고의 소멸인 니르바나를 제시하고, 고의 소멸 수행법인 8정도를 보여주었다.

붓다가 체득한 진리는 신비화되거나 소수 엘리트만이 아니라 만인에게 개방된 보편적인 것이다.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부처는 만인이 본래 부처라는 암호를 담고 있다. 성불이란 구리를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이 아니고, 본래 원석 자체가 금임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로 본래 성불이다. 즉 수행으로 견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처임을 자각하는 것이 견성이다.

중국에서 선종이 일어나면서 초기에 유가의 종법 제도에 영향을 받아 초조부터 6조까지 조사와 인가 제도가 있었으나, 학문이 없는 혜능이 특별한 수행 없이 6조로 보임받은 뒤, “누구나 자성을 철견하면 족하고 누구로부터 인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법의 전수 신표인 의발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는 만민평등의 근본 불교 정신으로 돌아갔다.

초기 경전을 보면, 수많은 사람이 지위고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붓다의 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견성하였다. ‘법구경 주석서’에 따르면, 우바새 584명, 우바이 2539명, 합 3123명으로, 출가자 9852명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조의 적손임을 표방하는 한국 선종은 견성을 신비화하고 인가 관례를 내세워, 스스로 달마 이후 몇 대 조사라며 인가 없는 견성을 사마외도라고 매도하며, 소수 엘리트 위주의 기득권화를 하는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붓다가 선언한 견성은 어려운 수학 문제 풀이도 아니고, 고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므로, 정상적인 사유로 해낼 수 있는 보편적인 가르침이다. 일반 불자들은 대중견성을 방해하고 불자들을 오도하는 기득권에 단호히 맞서 스스로 견성하기 어렵다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경전에 입각하여 공부하고, 박물관의 반가사유상처럼 사유하여 대중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견성을 세속법에 비유하면 전통 사회의 성년식에 해당되며, 현대 민법상 성년 제도와 유사하다. 성년이 되면 부모로부터 의존적이고 보살핌을 받는 수동적 삶에서 벗어나 자기 책임 아래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견성했다고 부처님과 같은 대역량을 바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을 두고 ‘보임’이라는 시간 속에서 숙성시켜야 한다. 마치 성년이 되었다고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없듯이, 배우고 익히는 숙련의 세월이 필요하다.

김백영 변호사 bykim8711@daum.net

[1791호 / 2025년 9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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