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과 헛된 자존심 버려야

2025-09-12     이병두

1949년 후반 마오쩌뚱의 인민해방군이 장제스의 군대를 물리쳐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옮겨갔다. 이후 전 세계의 눈길은 홍콩의 운명에 쏠렸다. 

“영국으로서는 일단 파죽지세로 남하해오는 공산군에 대응해 자위 태도를 갖추었다. 5000명이던 홍콩 주둔 군사력을 탱크 부대까지 포함 5만 명으로 늘렸다. 공산군이 이들 영국군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100만 명의 병력 희생을 치러야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영국은 그 대가로 1950년 1월 서방 최초로 공산 정권을 승인하였다. 중국으로서는 중국 봉쇄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홍콩이라는 국제적 통로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그 결과, 한국전쟁 중 홍콩을 통해 석유·화학제품·자동차·기계제품 등을 수입할 수 있었다. 공산 정권은 이 같은 신축성 있는 정책으로 매국 조약을 없애기 위해 홍콩을 ‘해방’시키는 대신 ‘반환’을 기다렸는데, 홍콩은 그 사이 거대한 경제력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 경제력을 살려나갈 필요가 더욱 절실해졌고, 그리하여 ‘1국 2체제’를 택했으니 이는 ‘해방’노선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으로, 1949년 이래의 신축적인 홍콩 활용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 홍콩의 존재가 상징하는 열강의 중국 침략은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중국을 반쪽 식민지로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을 근대세계의 질서에 편입케 하는 기능도 담당”하였던 것이다. 동양사학자 고(故) 민두기 교수의 마지막 저서 ‘시간과의 경쟁’에서 25년 전에 읽은 내용이다.

홍콩은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淸]이 치욕적인 조약을 통해 강제로 빼앗긴 땅이다. 백만 명이 아니라 천만 명을 희생해서라도 되찾아야 할 ‘중국 땅’인데, 그 자존심을 누르고 영국 식민지 홍콩의 존재를 인정하는 실리를 택했던 것이다. 1949년 정부 수립 이후 20년이 넘도록 미국이 주도하는 봉쇄정책 때문에 중국은 기본적인 의약품 등 필수품 수급에 곤란을 겪고 있었지만 홍콩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과거 ‘메이드 인 홍콩’이라고 표기된 공산품 대부분이 중국 본토에서 생산된 것이었고, 이런 방식으로 중국은 외부 세계와 교류하며 자본주의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 개방 정책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최강대국 대열에 들어가 미국과 선두 경쟁을 하게까지 된 배경에는 헛된 자존심을 감추고 인내하며 실질적인 자부심을 회복하게 한 고도의 정책 결정이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과 갈등이 일어났을 때 대통령 수석비서관 한 명이 “죽창 들고 나가자”는 말을 인터넷 계정에 올려 일부 지지자들을 열광하게 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한 집안의 가장이든, 어떤 조직의 중간 간부 이상의 책임자이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거나 숨겨둘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 상황이 이와는 전혀 반대로 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정치권에서는 막말을 쏟아내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인 줄 착각하고 있다. 종교계에서도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사업을 ‘빨리빨리 이룩하겠다’며 조급증에 사로잡히다 보니 결코 하지 않아야 될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한다. 이런 조급증과 잘못된 자존심이 이기적으로 작동하여, ‘2027년 세계청년대회 지원법’ 추진을 비롯해 각 종교계가 정치권과 야합하여 국민의 혈세를 쓰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어 답답하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793호 / 2025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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