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회로를 다시 켜는 방법

눈빛 하나가 마음 깨우고, 작은 미소가 생명 일으키듯, 존재는 서로의 인정으로 더욱 깊어져

2025-09-12     선우 스님

계절이 흐르듯 사람의 마음도 흐르고 변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려 애쓰며, 공감을 통해 진정한 연결을 꿈꾸기도 한다.

인류가 다양한 표정을 가지게 된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 덕분이라고 한다. 몸집에 비해 뇌가 크게 발달한 것도 타인의 마음에 반응하기 위해서였다. 타인을 마음에 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존중하려 애쓰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기 위해 진화해 온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말보다 앞선 언어로서의 얼굴과 몸짓을 통해 서로를 이해해왔다. 하지만 SNS의 시대, 모든 것이 연결된 듯 보이는 지금, 정작 마음은 더 닿기 어려워진 듯하다. 많은 것들이 짧게 단절되고 빠르게 변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말을 나눠도, 마음은 자주 비껴간다.

뇌과학은 그 이유를 들려준다. 공감과 이해의 핵심이라 불리는 '거울신경계'는 타인의 행동이나 표정을 볼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다. 그런데 이 회로는 직접적인 만남 속에서 가장 잘 깨어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일상은 다르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오가는 메시지와 이모티콘, 짧고 단편적인 대화 속에서 이 섬세한 회로는 점점 덜 쓰인다. 더욱이 뇌는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알림과 영상, 정보들로 과부하 상태가 되어 한 사람의 마음에 머무를 여백 없이 끊임없이 다음 자극으로 밀려간다.

공감은 멈춤에서 시작되는데, 우리는 그 멈춤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인간관계는 빠르고 얕다. 익명성과 거리감 속에서 더 안전해졌는지는 몰라도, 더 깊이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뇌는 사용하지 않는 기능을 줄여나가는데, 이는 뇌가소성의 한 측면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회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행히 뇌는 여전히 살아 있고,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말랑말랑하다는 사실이 과학이 전하는 가장 따뜻한 희망이다. 다시 눈을 마주하고, 긴 침묵을 견디며, 표정과 기척 속에서 마음을 읽는 시간을 되찾는다면, 뇌는 그 회로를 다시 켜줄 것이다. 우리는 아직 공감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 단지 너무 오래 꺼내지 않아 잊고 있을 뿐이다. 마음은 본래 서로를 향해 흐르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그 마음에 잠시 귀 기울인다면, 뇌는 여전히 타인을 위한 자리를 활짝 열어줄 것이다.

아프리카 줄루족은 만날 때 이렇게 인사한다고 한다. “Sawubona(나는 너를 본다).” 이에 대한 대답은 “Sikhona(나는 당신이 보았기에 존재한다).”

이 인사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상대를 존재로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고백이다. 누군가 나를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고, 그 순간 비로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눈빛 하나가 마음을 깨우고, 작은 미소가 생명을 일으키듯, 존재는 서로의 인정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I see you). 나는 당신을 느낍니다(I feel you).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I understand you).

선우 스님 부산 여래사불교 대학 학장 bababy2004@naver.com

[1793호 / 2025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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