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전법과 행복, 그리고 평화
계급 타파 가르침과 보살도 실천 성도 후 망설임과 범천 권청 초전법륜과 함께 삼보 성립 혁명 사상과 기득권의 저항 연기관 기반 현대불교 과제
붓다는 성도 후 깨달은 진리를 일반인에게 알렸을 때 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전법을 망설였다. 이에 브라흐마(범천)가 가르침을 펴달라고 간절히 청했다.
붓다는 이 권청을 받고 “그들에게 불사의 문이 열렸다. 귀 있는 자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라. 성가시다는 생각으로 나는 숭고하고 뛰어난 가르침을 전하지 않으려 했다네, 오 브라흐마여!”라고 고백하며 마음을 바꾸었다. 출가할 때 동행했던 다섯 비구를 떠올리고 바나라시 녹야원으로 향했다.
붓다는 녹야원에 도착해 다섯 비구를 찾아 다르마를 설했다. 가장 먼저 꼰단냐가 깨달음을 얻었고, 이어서 다른 네 비구도 깨달아 열반(니르바나)을 성취했다. 이로써 불·법·승 삼보가 성립되었다. 마침 그때 바나라시의 야사가 붓다를 만나 법문을 들었다. 야사는 진리의 눈이 열렸고, 깊은 감동을 받아 부모님과 함께 승가에 귀의하여 불자가 되었다. 이후 야사는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새롭고 혁명적인 사상은 초기에 이단으로 배척되고 박해받기 쉽다. 붓다가 깨달은 진리는 브라흐마 신 중심의 바라문교와 카스트라는 계급사회의 장벽을 뛰어넘는 만민 평등 사상이었다. 이는 기존 사회 질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혁명적 사상이었기에 기득권층에게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상을 경솔하게 세상에 드러낼 경우 호응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붓다가 전법을 망설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당시 철기 시대가 도래하여 무자비한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직시했다. 인간의 무지를 깨우쳐 세상은 연기(緣起)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상호 의존적인 세계의 실상을 통찰하여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법에 나섰다. 붓다는 우선 다섯 비구를 찾아가 초전법륜(初轉法輪)을 굴리게 된 것이다.
붓다는 열반(니르바나)을 증득했지만, 개인의 행복과 사회 평화를 위해 제자 60명이 아라한에 이르렀을 때 승단이 충분한 조직력을 갖추었다고 보았다. 이에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또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세상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길을 떠나라. 둘이 함께 같은 길을 가지 마라.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라. 완전하고도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붓다는 이후 80세에 열반에 드실 때까지 인도 전역을 유행하며 전법의 길을 걸으셨다.
보리달마는 양무제와 인연이 닿지 않아 소림사에서 9년간 벽을 마주했고, 육조 혜능은 새로운 선종을 펴기 전 16년간 신분을 감추고 사냥꾼들 틈에서 지냈다. 공자 또한 도를 펴기 위해 14년간 천하를 주유했다.
현재 우리 헌법 제20조 1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다만 종교를 빙자해 재산과 노동력, 성을 착취하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는 사기죄 등으로 처벌하고 있다. 대승불교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을 수용하여 미신과 주술에서 벗어나 연기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정견(正見)을 갖추고, 올바른 수행을 통해 유물론적 사고를 넘어선 연기적 삶을 구현하며 이를 널리 알리는 전법의 삶, 즉 보살도(菩薩道)를 발원해야 할 것이다.
김백영 변호사 bykim8711@daum.net
[1793호 / 2025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