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마저 ‘왜곡 복원’ 하는가?

의도적 내용 삭제·편집 상식 밖 오류 넘어 참담한 실상 드러나 고서 속 인쇄술·제본법 속에는 당대의 관습·과학·예술성 담겨

2025-09-19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금속활자본 ‘직지(直指)’의 복원본과 영인본이 52년간 원본을 심각하게 왜곡한 채 학계와 교육 현장서 ‘진본’을 대체하는 연구자료로 통용되어 왔다. 국민 세금으로 제작된 자료가 오히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중으로 훼손해왔다는 사실은 문화유산 관리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충격적이다.

유우식 박사와 유영식 교수가 ‘보존과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제작된 직지 영인본들은 원본과 색상 차이가 최소 5.78배에서 최대 18.7배까지 났다. 이는 출판물의 국제 표준 허용 오차보다 6배 이상을 초과하는 수준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단순한 색상 실수뿐 아니라 의도적인 내용 삭제와 편집까지 이뤄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금속활자본의 핵심적 특징마저 무시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

교육 현장에서의 피해는 실로 크다. 초·중·고교와 대학에서 수백만 명의 학생들에게 잘못된 직지의 모습이 각인된 것 아닌가. 해외에도 부정확한 한국 문화유산 정보가 전파되어 K-문화 확산 시대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사실 직지만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밀랍본 복원 역시 15년간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1229책 중 131권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인데다, 밀랍 제거 과정에서 한지까지 상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26억 원을 들인 삼국유사 목판은 완성 후 9년째 수장고에 방치되어 있다. 

이러한 실패들의 공통점은 성급한 일정, 고증 부족, 전문성 결여, 그리고 무엇보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매몰된 채 진정한 복원의 의미를 망각했다는 점이다. 고서 복원은 신중해야 한다. 한 권의 책 속에는 종이, 먹, 인쇄술, 제본법, 서체 등 그 시대 삶의 관습과 예술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문화적 바탕과 과학기술의 변천과 발전을 가늠케 하는 핵심 증거 자료다.

직지는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최근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주목받았다.  인류 출판문화사의 이정표이자 한국의 과학기술 우수성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료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유산을 복원하면서 원본의 핵심 특징인 개별성을 무시하고 인쇄본과 목판본의 특징을 섞어 넣는다면 이는 복원이 아니라 왜곡이다.

진정한 복원은 원형 보존과 과학적 접근이 원칙이어야 한다. 복원 과정에서 오류를 저지른다면 원본 연구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에 그릇된 문화유산 지식을 전파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특히 직지와 같이 원본 접근이 어려운 경우, 복원본과 영인본은 대다수 연구자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더욱 엄격한 기준과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 복원 시에는 충분한 사전 연구, 전문가 집단의 엄격한 검증, 국제적 표준에 부합하는 제작 과정, 그리고 투명한 결과 공개가 보장되어야 한다. 복원 과정과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평가 시스템도 구축되어야 한다.

직지 사태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던진다. 문화유산 복원은 ‘보여주기식 행정’이나 ‘예산 소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고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징검돌이다. 우리의 무관심과 졸속 행정이 그 다리를 허물게 해서는 안 된다. 직지 사태를 계기로 문화유산 복원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시스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현재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시험대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무다. 유우식 박사가 지적했듯, “공공기관의 무책임한 문화유산 관리가 낳은 참사”인 만큼, 즉각적인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1794호 / 2025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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