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벽부터 보자

의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거듭된 오해와 편견 내 안의 불쾌감은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비롯

2025-09-19     현안 스님

출가하자마자 영화 스님께서 나를 한국으로 보내셨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지만, 사미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누군가 “선생님이라 불러야 합니까, 아니면 스님이라고 해야 합니까?”라고 묻기라도 하면 괜히 마음이 상했다. ‘내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는데 왜 그런 걸 묻지?’, ‘승복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청주 보산사가 문을 열고 선명상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출가하지 않았다는 이유, 큰 종단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돕겠다고 하루도 쉬지 않고 노력했지만, 그들의 가족들은 “이상한 곳에 가는 것 아니냐”며 길을 막기도 했다.

한국에 도량이 생긴 첫 1~2년 동안 청년들의 부모님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절에 찾아와 어떤 곳인지 확인하려 했다. 그런 시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따뜻한 인연도 있었다. 어떤 스님은 내 승복을 지적하기보다 자신의 승복을 꺼내 건네주셨고, 어떤 스님은 “그럴 수도 있지”라며 공감해 주셨다. 힘내라며 공양물을 보내주는 분도 계셨다. 그런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응원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더 많이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어른 스님들께 인사드리며 우리가 어떤 수행을 하는지 보여주려 했다.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출가 전부터 선명상과 불교수행을 통해 삶이 변화하는 경험을 했기에, 그 가르침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믿었다. 진실의 길을 간다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좋은 수행법이라면 한국의 것이든 미국의 것이든 함께 나누면 된다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그때는 누군가 힘을 보태 주리라.

돌아보니 나를 평가하던 이들과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습관처럼 평가하고 판단했다. 불자나 스님을 뵐 때도 내가 배운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역시 나의 스승이 최고”라는 마음은 신심이 되기도 했지만, 교만이 되어 독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늘 나와 남을 비교한다. 그러니 누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나 역시 알게 모르게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문제의 뿌리는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모든 번뇌와 요동의 바탕에는 언제나 자존심과 내가 옳다고 믿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였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끝까지 비추어 보아야 했다. 오해하거나 모함하는 이들에게 화내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얼마나 나 자신에게 진실한가. 수행은 다른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다. 
 

지금도 나는 습관처럼 다른 이에 대한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은 왜 나를 저렇게 보나?’, ‘왜 화를 내나?’ 그럴 때마다 내 안을 비추어 본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내 마음을 닦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벽을 허물려면, 내 안의 벽부터 먼저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현안 스님 보화선원 지도법사 xa@chanpureland.org



[1794호 / 2025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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