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지킨다더니…서지학자들이 금속활자본 왜곡 주도
목판 형식으로 금속활자본 복원…“직지마저 훼손했다” ‘직지’ 앞서는 금속활자 부정·배척한 서지학자들 중심 “형식 복원이 더 중요”…“편집 일관성 무시한 무책임”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제작한 ‘직지’의 영인본 및 복원본이 왜곡·조작됐다는 학계의 지적이 제기된 가운데, ‘직지’ 상권 금속활자 인판본(이하 상권인판본)과 결락돼 있는 하권 1장의 복원 과정에 참여한 서지학자들이 목판본을 활용한 형식 재현에 치중한 것으로 확인, 금속활자본의 특징이 왜곡된 부실 복원물이 제작됐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본지가 입수한 ‘직지 상권 금속활자 복원을 위한 학술연구 용역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직지’ 복원 사업에는 당시 경북대 A교수와 청주대 B교수 등 학계의 권위자들을 비롯해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전문위원,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관,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실장 등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직지 상권 금속활자 복원 사업은 문화유산청과 충청북도의 지원을 받아 총 18억 1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직지’ 금속활자본과 목판본 연차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 용역결과보고서에 이어 2015년 복원된 직지 상권을 공개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이 평소 ‘직지를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해온 당사자들이면서도, 정작 복원에서는 목판본 경전에서 보이는 표기법을 그대로 적용, 현전하는 ‘직지’ 하권의 특징마저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52년간 영인본 조작에 이어 복원본마저 왜곡되면서 한국 서지학계의 신뢰성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주고인쇄박물관에 따르면, 직지 복원 연구용역은 2013년 경북대 사회과학원이 맡았으며, A교수가 책임연구원을 맡고 또 다른 권위자들이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했다. A교수는 40여 년간 서지학계를 이끌어온 원로로, 직지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연구진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직지 하권의 특징’으로 ‘동일 면에서는 같은 글자가 반복되지 않으나, 다른 장에서는 동일 활자가 다시 사용된다’는 점을 들며 ‘이러한 여러 특징들은 금속활자본의 조판 방법에 견주어 잘 설명될 수 있으며, 이를 목판본과 비교해 보면 금속활자본으로서 가지는 특징이 더욱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현전하고 있는 직지 ‘하권’에서도 ‘頭頭物物(두두물물)’ ‘巍巍(외외)’, ‘渠渠(거거)’, ‘漫漫(만만)’과 같이 같은 글자가 반복된 경우에도 이를 모두 표기하고 있는 점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복원에서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2015년 완성된 복원된 상권인판본을 비롯해 ‘직지’ 하권의 결락된 1장 복원에서 ‘巍巍(외외)’, ‘渠渠(거거)’, ‘漫漫(만만)’ 등을 또 우(又)자 등의 반복기호로 표기했다. 현전 ‘직지’의 복원본에서 조차 편집의 일관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보존과학회지’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복원한 직지(直指) 금속활자본 하권 제1장 금속활자 인판의 정확성 검증’을 게재한 공동저자 유영식 단국대 교수는 “현전하는 ‘직지’ 하권의 결락 부분을 복원하면서 원본에 등장하지 않는 반복기호를 사용한 것은 원본의 형식을 훼손한 것”이라며 “특히 직지가 상·하권으로 구성된 1책이라는 점에서 하권에 적용되지 않은 반복기호를 사용해 상권을 복원한 것은 직지 간행 당시의 편집 일관성을 무시한, 상식 밖의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복원에 대해 당시 사업의 책임연구원이었던 A교수는 “현전하지 않는 상권의 복원을 위해 남아있는 목판본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았다”며 “상권에서 반복되는 한자를 다 표기했는지, 반복기호로 표기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모든 글자를 다 표기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고 해명했다. 특히 A교수는 상권 복원에 대해 “직지 하권에서 어떤 형태의 활자를 선택해 사용할 것인지를 비롯해 서문·발문 등 책의 구성, 활자 배열 방식, 저자 표기 방식 등 책의 형식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더 중요했지 글자의 반복 여부 등은 복원의 기준이 아니었다”고 반 박하면서도 새로운 문제 제기와 상권인판본 수정 여부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상권’을 수정·복원하는 것은 어차피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우식 웨이퍼마스터스(경북대 인문학술원) 박사는 “비록 복원 당시 연구나 고찰이 부족했더라도 이후 새로운 연구 성과가 도출되거나 문제가 지적된다면 이를 반영해 연구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것이 학자의 기본 자세”라며 “‘직지’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을 고수하면서 새로운 학계의 성과들을 외면하는 것은 자신의 연구 성과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기득권 의식이자 학자의 기본 양심을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795호 / 2025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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