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고 싫음에 휘둘릴수록 과보가 되돌아온다”
증도가 강설 진우 스님 지음/조계종출판사/512쪽/ 2만7000원 진우 스님, 증도가를 일상 삶으로 해설 ‘지금 여기’의 평안 열리는 메시지 전달 말뜻에 머물지 않고 삶에서의 체험 당부
선시(禪詩) ‘증도가’는 영가현각이 자신의 체득을 노래한 한 편의 ‘깨달음 사용설명서’다. 그러나 한문 비유와 선적 어법은 오늘의 독자에겐 높은 문턱이었다. 이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증도가 강설’을 펴내 이 장벽을 현재의 언어로 맞추며, 선의 고전을 오늘의 삶으로 끌어당겼다. 문자 뜻풀이를 넘어 상처받을 때, 일이 잘될 때, 관계가 틀어질 때 마음을 어디에 둘지 구체적 장면으로 안내한다. 핵심은 고락·시비의 분별을 거두고, 인연 따라 일어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책은 124화로 나뉘어 일상에 맞닿은 질문을 던진다. “상대가 나를 욕할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 “무엇이 옳고 그른가” “부모와 자식 사이” 등 제목만으로도 방향이 선명해진다. 스님은 “마음을 깨친다는 것은 인과의 도리를 바로 아는 일”이라 짚고, 좋고 싫음에 휘둘릴수록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되돌아온다는 점을 반복해 환기한다. 복과 손해, 성공과 실패가 서로를 불러오는 현상 속에서 집착을 놓을 때 비로소 ‘지금 여기’의 평안이 열린다는 메시지다.
스님은 용흥사 몽성선원 등 제방에서 정진했고, 백양사 주지를 거쳐 교육원장, 현재는 제37대 총무원장으로 ‘K명상과 선수행’을 통해 한국불교의 중흥을 모색하고 있다. ‘신심명 강설’ ‘금강경 강설’ 등으로 경전의 현대적 해석을 꾸준히 시도해 온 스님은 이번에도 경전의 난해함을 덜어내되, 선이 요구하는 실천의 엄격함은 한 치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분별을 거둔 ‘중도’의 안목, 업과 인연을 직시하는 담대한 태도, 그리고 매순간을 수행의 현장으로 돌려세우는 결단이 곧 이 책의 골격이다.
‘증도가 강설’은 선방의 몫이던 가르침을 가정과 일터의 언어로 번역해 오래 신행한 이들에겐 마음을 다잡는 거울로, 초심자에겐 생활의 지남으로 건넨다. “손가락은 달이 아니다”라는 오래된 경책처럼, 말뜻에 머물지 않고 삶에서 체험하길 당부하는 이 책은 불안을 내려놓고 평안을 만나는 길이 결국 마음 공부의 철저함에서 비롯됨을 상기시킨다. 수행의 고전이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순간, 영가의 노래는 독자의 오늘을 바로 세우는 법문이 될 것이다.
스님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복이라 여기지만, 그 복이 다하면 허전과 괴로움이 온다.” “좋다·나쁘다 하는 두 마음은 서로를 부른다.” “인과와 연기의 질서 밖 예외는 없다.” “번뇌를 붙잡을수록 고통만 커진다.”고 말한다. 스님은 그렇게 ‘애쓰지 않는 삶’과 ‘걸림 없는 마음’을 일러주고 있다. 애씀을 멈춘다는 말은 무위가 아니라, 분별을 거두고 그때그때 할 바를 바로 행하는 결단이다. 막힐수록 호흡을 고르고, 말보다 마음을 먼저 살피며, 복과 손해의 계산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전한다. 이는 무기력이 아니라 마음의 작동을 알아차리는 선의 훈련이기 때문이다.
독법도 분명하다. 통독보다 한 구절을 오래 머금어 그 뜻이 몸으로 스며들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하여 억울한 말을 듣고 분노를 묵히지 않기, 가족의 서운함을 ‘나와 너’의 경계 밖에서 보기, 성취 뒤의 공허를 인과의 회복으로 알아차리기 등을 통해 독자를 수행의 자리로 부른다. 그리하여 스님은 결국 깨달음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분별 이전의 맑은 자각에서 드러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798호 / 2025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