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불교 언어학에서 길 찾는 학술의 장 열리다
통도사 10월26일 네 번째 한글 학술대회 ‘훈민정음 창제와 불교계의 영향’ 주제 ‘불교의 동진(東進)과 동아시아 문자발달’ 이용 교수, ‘불교 전파와 한국 불경 석독 전통의 만남: 훈민정음 창제의 맥락’ 이태승 교수, ‘훈민정음 창제에 끼친 범어 음성체계 연구 – 조선시대 ‘진언집’ 범어체계와 비교’
불교의 전래가 문자 발달과 훈민정음 창제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며, 불교적 언어관 속에서 한글의 창제 원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훈민정음 주제 학술대회가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마련됐다.
통도사(주지 현덕 스님)는 10월 26일 경내 해장보각에서 ‘2025년 영축총림 통도사 추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훈민정음 창제와 불교계의 영향–불교의 동진(東進)과 동아시아 문자발달’을 주제로 마련됐다. 통도사에서 훈민정음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린 것은 지난 2022년 이후 매년 이어진 가운데 올해가 네 번째로, 조계종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의 관심과 격려 그리고 통도사 사중 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지속돼 의미를 더했다.
이 자리에도 조계종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 통도사 주지 현덕 스님, 수좌 명신 스님, 염불원장 법산 스님, 율주 덕문 스님, 강주 인해 스님, 율원장 도암 스님, 율원 및 강원 스님 등 사중 스님들이 한결같이 동참하며 학술대회에 힘을 실었다. 또 발표와 토론 관계자뿐 아니라 훈민정음 연구진 등도 함께하며 대회의 가치를 공명했다.
조계종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는 격려사에서 “불교가 한글 창제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가 이어져 왔고, 오늘 발표는 그동안 중에서도 가장 근접한 성과로 느껴진다”며 “앞으로도 학계의 깊은 연구와 협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통도사 주지 현덕 스님도 “불경 독송과 다라니 수행 속에는 이미 한글과 불교의 관계가 녹아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가 그 이론적 연관성을 밝혀내는 뜻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첫 번째 발제에서 이용 서울시립대 교수는 ‘불교 전파와 한국 불경 석독 전통의 만남: 훈민정음 창제의 맥락’을 주제로, 훈민정음 창제를 불교와 문자 지식의 확산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불교 전파가 문자 지식의 전파 통로로 작용했다”며 “훈민정음의 삼분법(초성·중성·종성 분리)과 종성부용초성 원리는 불경 독송과 구결 전통에서 비롯된 음운 인식의 결실”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불교의 동진 과정에서 인도 음운학이 중국으로 전해져 중국 음운학의 성립에 기여했고, 그 이론이 세종대의 훈민정음 창제에 반영되었다”고 설명하며 훈민정음은 불교적 지식 전통과 한국의 문자 실천이 융합된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에서 이태승 전 위덕대 교수는 ‘훈민정음 창제에 끼친 범어 음성체계 연구 – 조선시대 ‘진언집’의 범어체계와 비교하여’를 통해 훈민정음의 자음 배열이 범어의 조음학적 분류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태승 교수는 “훈민정음의 자모음 체계가 범어사 자모음 체계를 토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며 “특히 범어의 자음 분류법 ‘아치설후순(牙齒舌喉脣)’ 방식을 훈민정음의 자음 분류법인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방식으로 전환을 해 보면 훈민정음 23자모의 발음이 발견된다”고 제시했다.
이어 “세종대왕이 범어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러한 범어적 특성은 불교의 전문가에 의해 충분히 조언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세종대왕은 승하하는 시점에 마지막 유훈으로 신미대사에게 혜각존자라는 큰 법호를 남기고 있는 점도 세종대왕과 불교의 관계는 매우 깊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종합토론에서는 권인한 성균관대 교수의 사회로 신웅철 국립한밭대 교수, 조운성 성균관대 초빙교수가 참여해 한글 창제를 ‘불교 전파가 매개한 문자 지식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훈민정음을 불교 문화사 속 지적 성취로 볼 때, 동아시아 문자사 전반의 이해가 새롭게 열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글을 ‘백성을 위한 문자’이자 ‘자비의 언어’로 해석한 불교적 시각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학술대회를 마치며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훈민정음 창제에 깃든 자비의 정신은 곧 불교의 소통의 지혜”라며 “이번 학술대회는 불경 석독 전통과 한글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검증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앞으로 해야 할 과제도 많다. 앞으로도 많은 학자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고 연구진들을 격려했다. 통도사 주지 현덕 스님도 “불교가 한국 문자문화 발전에 기여한 사실을 체계적으로 밝혀나가는데 통도사 차원에서도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799호 / 2025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