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을 ‘함께 걷기’로 바꾼 시코쿠 순례
엄마는 시코쿠 원대한 지음/황금시간/ 324쪽/1만9000원
‘엄마는 시코쿠’는 돌봄이 일상이 된 가족의 발걸음을, 일본 시코쿠 섬을 돌며 ‘함께 걷기’로 바꾼 기록이다. 저자는 병원과 약봉투 사이에 갇힌 엄마와의 시간 속에서 길 위로 발을 돌린다. 이 여정에서 엄마의 보폭이 곧 순례의 속도가 되고, 순례의 리듬이 곧 돌봄의 숨결이 된다.
시코쿠 순례길은 흔히 시코쿠 섬의 88개 사찰을 잇는 원형의 길로, 대략 1200㎞에 달한다. 이 길 위에서 저자는 엄마와 함께 스탬프처럼 찍히는 납경장(순례 도장)을 하나씩 채우며 삶과 마주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강조되는 것은 ‘완주’가 아니라 ‘함께 서 있기’다. 앞서 나가기보다 옆에 머물기, 판단하기보다 귀 기울이기를 하며 저자는 돌봄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책은 엄마의 핸드타월처럼 손에 들려 있다. 비좁은 병실, 대기실, 주사침이 놓인 탁자 옆에서 저자는 스스로에게 “왜 걷는지?”를 묻고, 순례길 위에서 조금씩 그 답을 찾았다. 길가에서 전해진 귤 한 봉지, 따뜻한 차 한 잔, 어깨를 내어준 현지 주민의 미소 등 이 모든 작은 접대(오셋타이)는 순례자에게 자비의 언어가 되었다.
시코쿠 순례길은 또한 고승 구카이(弘法大師)의 발자취를 따르는 수행의 장이기도 하다.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엄마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삶과 죽음, 돌봄과 위로, 이어짐과 마침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마지막 사찰 앞에서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듯이 두 사람이 합장하고 길 위에 서 있는 장면은 강렬하기까지 하다.
저자에게 있어 순례길 위에서 만난 ‘함께’는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함께함은 마침내 돌봄을 넘어 삶의 방식으로 자리했다. 이 책이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것은 ‘속도’를 낮추는 연습이다. 얼마나 빨리 끝낼까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그 길을 내딛을까가 더 중요하다. 걷기가 곧 돌봄이고, 길 위의 풍경이 곧 마음의 풍경이었다는 사실이 맑게 드러나는 책이다. 하여 돌봄의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엄마는 시코쿠’는 조용한 격려이자 동행의 서사다.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800호 / 2025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