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삼키는 공포가 더 큰 비극

캄보디아 범죄가 불러온 공포 인도적 지원에도 위기 불러와 범죄가 낳은 공포의 그림자 연민심까지 등져서는 안 돼

2025-11-14     남수연 기자

충격적인 사건의 여파는 의외로 크다. 한 나라 전체를 향한 시선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 발생한 캄보디아 납치·살인 사건 이후, 동남아시아 전역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SNS에는 ‘가지 말아야 할 나라’ 목록이 여기저기 돌고, 여행 취소 후기가 곳곳에 넘쳐난다. 개인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우려스러운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지역에서 묵묵히 인도적 활동을 이어온 NGO들이 후원 감소와 관심 위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참담한 비극의 여파가 절실한 도움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웃들을 향한 자비의 손길마저 끊어놓을 위기로 이어진다. 공포가 자비를 집어삼키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불교계의 국제 NGO인 로터스월드가 만수사와 함께 캄보디아 시엠립의 한 초등학교에 정수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현지를 방문했다. 1000여 명이 넘는 학생과 주민들이 이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플 걱정 없이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어린 학생의 소감은, 그곳에 여전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상이 있음을 일깨운다.

현장을 직접 방문한 이들이 마주한 캄보디아 시엠립은 언론에 연일 전해지는 불안과는 달리,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처참한 사건 사고가 주는 막연한 공포보다 매일 매일의 생존을 위해 깨끗한 물을 찾아다니는 아이들의 간절함이 있었다.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현실이 그곳에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자비희사(慈悲喜捨)의 가르침 중 ‘비(悲)’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다. 절실한 도움을 기다리는 중생들을 향한 시선을 비극적 사건이 가리는 것은 더 큰 비극을 잉태할 수 있다. 연기(緣起)의 가르침은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과 건강한 환경, 안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이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토대이자 동시에 빈곤과 절망이 만들어내는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올바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보내는 자비의 손길이 미래 캄보디아 사회를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국가로 만드는 씨앗이 된다. 국제개발협력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전과 평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지혜로운 투자인 것이다.

소셜미디어 시대, 공포는 빠르게 확산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은 올바르게 관찰하고 판단하는 ‘정견(正見)’의 지혜다. 불안감에 휩쓸려 인도적 지원의 끈을 놓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장 약한 이웃들에게 돌아간다.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범죄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자비와 연민의 마음마저 얼어붙는 우리 내면의 변화가 아닐까.

불교계는 사회에 만연한 ‘포비아’를 걷어내는 ‘자비의 물줄기’를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두려움과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고 지구촌 이웃들의 고통에 깊이 귀 기울이며 그들을 향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야 말로 고해를 건너는 불자들의 지혜이자 불교의 힘이다. 자비와 연대로 공포와 편견에 맞서야 할 때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801호 / 2025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