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경계의 목탁’으로 정부·노동계의 ‘산재 제로’ 한목소리 이끌어
[조계종, 산재 사망 위령재 봉행 의미와 전망] 6명 매일 사망…노동 현장 비극 종식 위한 불교계의 사회 참여·여론 환기에 새 분기점 진우 스님, 유가족 간담회로 소통 물꼬 터 김민석 국무총리, 유가족 정례 간담회 약속 안호영 국회 환노위원장도 제도 개선 추진 "사회적 약자 대변하고 책임 있는 답변 이끌어"
매일 평균 6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을 멈추기 위해 조계종이 울린 ‘경계의 목탁’이 정부, 국회, 노동계는 물론 종교계를 한자리에 모았다. 조계종이 11월 18일 서울 조계사에서 봉행한 ‘산재사망 희생자 추모 위령재’는 ‘산재 제로 사회’를 향한 공동 발원을 이끌어내는 촉매제로 평가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는 응답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불교의 사회참여 활동에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조계종은 이날 위령재에서 국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구분 없이 산재로 희생된 모두를 추모했다. 동시에 정부에 구체적인 정책 개선을 촉구하며 유가족 간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그 결과 김민석 국무총리는 유가족과의 정례 간담회를 약속했고,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다짐하는 등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
이날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영하의 한파 속에서도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국회, 종교계, 노동계 인사와 30여 유가족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고인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안전한 일터 조성을 다짐했다. 위령재에는 태안화력발전소, 경동건설, 평택항 등에서 산재로 사망한 국내 노동자 94명과 스리랑카, 네팔, 미얀마, 베트남 등 이주노동자 50여명의 위패, 총 155명의 위패가 함께 모셔졌다. 고 김용균 태안화력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tvN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를 비롯해 세월호, 이태원, 아리셀,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도 자리를 함께하며 연대의 뜻을 보였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천도법문에서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생명존중 사상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스님은 “모든 존재는 불성을 지녔으며 어떤 생명도 가볍지 않다”고 설하며, “생명보다 앞서는 이윤은 없다”고 역설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의 뒤편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감당함에도 고용허가제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목숨을 잃는 현실을 깊이 지적했다.
진우 스님은 이날의 추모를 ‘경계의 목탁’이라 표현하며, 조계종은 생명존중의 가르침을 지키는 종단으로서 산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이주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자비의 시선을 놓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종교계가 울린 ‘경계의 목탁’에 정부와 국회, 노동계도 실질적 변화를 약속하며 응답했다.
김민석 총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라며 희생된 노동자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더 이상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산업현장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겠다”며 지난 9월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기반으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은 “일터가 곧 삶터가 되도록,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안전으로 이어지도록, 생명존중의 제도를 더욱 굳건히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안전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민주노총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위령재에 앞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유가족들은 정부에 구체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특히 진우 스님은 김민석 총리에게 이주노동자들이 단속 과정에서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문제가 19년간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와의 정례 간담회 개최를 요청했고, 김 총리는 이에 대해 노동부 장관과 함께 별도의 자리를 정례적으로 마련하겠다고 답함으로써 정부와 유가족 간 소통의 물꼬를 텄다.
이번 조계종의 산재사망 희생자 추모 위령재는 불교계가 사회적 책임 실현에 있어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단순한 추모를 넘어, 구체적인 정책 개선 요구와 함께 정부, 국회, 유가족 간의 소통을 이끌어 내는 ‘사회적 공론화의 장’을 마련한 것이 핵심이다.
이번 행사는 조계종이 향후 생명·인권 문제, 사회적 약자 보호 등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 더욱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유가족과의 정례 간담회가 실질적인 정책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으나, 종교계가 주축이 되어 사회 각 주체를 한데 모아 ‘산재 제로 사회’를 향한 공동의 책임과 실천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파급 효과는 지속될 전망이다.
법보신문 특별취재팀
사진=공동취재단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