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위령재, 추모 넘어선 ‘변화의 선언'
정부·국회·유가족 간 소통 물꼬 산업재해 근절의 전환점 마련 위험의 외주화 구조 개선 촉구 ‘이익보다 생명’ 기업 인식 기대
조계종이 11월 18일 조계사에서 산재사망 희생자 추모 위령재를 봉행했다. 정부·국회·노동계·유가족 1000여 명이 참석하여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사회적 공론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천도법문에서 “모든 존재는 불성을 지녔으며 어떤 생명도 가볍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2000여 명이 사망했고, 2025년 상반기에만 1120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경제 선진국이라는 한국이 이처럼 OECD 최고 수준의 산재 사망률을 기록하는 것은 안전 관리의 실패뿐만 아니라,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이윤이 생명에 앞설 수 없다”고 한 말은, 산업 현장에서 생명을 비용 아래에 두는 관행을 지적한 것이다.
위령재에서는 이주노동자도 함께 추모했다. 차별 없는 산재 예방의 필요성을 상징한 것이다.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는 이주노동자도 많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김민석 총리와의 간담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단속 과정에서 뛰어내려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가 19년 동안 반복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짚었다. 실제로 베트남 노동자 고 뚜안 씨는 계명대를 졸업하고 부모를 돕기 위해 일하던 중, 대구 단속 과정에서 에어컨 실외기 뒤에 숨어있다가 기력이 소진되어 추락·사망했다.
한국 경제의 뒤편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감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와 불안정한 체류 구조 아래 목숨을 잃는 현실은 단순한 안전 관리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의 문제다. 원청 기업이 위험한 작업을 하청과 외국인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안전 책임은 회피하는 ‘위험의 외주화·이주화’ 구조가 산재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위령재의 성과 중 하나는 조계종이 정부·국회·유가족 간 소통의 물꼬를 텄다는 점이다. 김민석 총리는 “유가족들의 요청을 무겁게 받들어 노동부 장관과 함께 정례 간담회를 마련하겠”고 약속했다. 안호영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도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안전으로 이어지도록, 생명존중의 제도를 더욱 굳건히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의 요구안을 직접 총리에게 전달하며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이날의 추모를 ‘경계의 목탁’이라 표현했다. “오늘의 추모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경계의 목탁이며, 부처님의 자비는 구조적 변화의 용기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은, 고인을 추모하는 차원을 넘어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매일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회 구조를 방치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 문화, 안전을 소홀히 하는 정부 정책, 취약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정례 간담회를 형식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야 한다. 국회는 생명존중의 법을 강화하고, 기업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특히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노동자 차별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조계종이 울린 ‘경계의 목탁' 소리가 사회 전체에 울려 퍼져, 더 이상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슬픔 속에 남겨진 유가족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이다.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