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아프면 누워 명상해도 될까
뛰어난 운동선수가 끊 임없이 훈련하듯 수행 자도 좌선을 기반으로 항상 자신을 단련해야
‘행주좌와(行住坐臥)’ 즉 ‘걷고, 서고, 앉고, 눕는 네 가지 자세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은 불교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자주 오해된다.
얼마 전 한 불자님이 말했다. 좌선을 하다가 다리가 너무 아파서 힘들었는데, 그럴 땐 편하게 다리를 풀고 명상하거나 걷기 명상을 해도 된다는 지침을 들었다고 했다. “앉아 있다가 다리가 아프면 누워서 해도 된다더라” “앉기 힘들면 그냥 걷기 명상하면 된다”는 말은 얼핏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 것 같지만, 사실 본뜻에서 크게 벗어난 해석이다.
행주좌와란 단순히 몸의 네 가지 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깨어 있는 마음을 유지하라는 경책이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라면 방일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셨다. 앉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걷고, 서 있고, 누워 있을 때조차 내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변화를 잘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고통과 불편함 속에서 자신의 반응을 들여다보며 그때 일어나는 생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버려나가는 것이 바로 선명상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이 가능하려면 단단한 기반이 필요하다. 그 기반은 바로 좌선이다. 매일 일정 시간 앉아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인 것이다.
수행이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몸이 괴롭다는 이유로 물러서면 자신과의 싸움을 할 필요도 없고, 발전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면, 그 속에서 더 깊은 집중력과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세울 수 있다. 불편한 자세로 좌선하는 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내면의 집착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지루함, 불안, 졸림, 걱정, 의구심 등 온갖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마주하고 내려놓는 연습, 그것이 선명상이다.
걷든, 서 있든, 앉아 있든, 누워 있든 정념이 끊어지지 않는 상태라면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이며 이상적인 수행자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며 기반을 닦아야 한다. 아무리 도가 높은 사람이라도 편안함만 추구한다면 섬세하고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없다. 좌선이라는 단단한 기반이 있어야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번뇌와 마음의 동요를 더 예리하게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수 있다.
좌선이 단단히 세워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루 24시간, 삶의 모든 순간에서 수행할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알아차림이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끊임없이 훈련하듯 수행자도 좌선을 기반으로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그 괴로움 속에서 마음을 예리하고 지혜롭게 재련하는 것이다. 즉 행주좌와란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정진의 태도를 뜻한다. 그 태도를 지켜낼 때, 수행은 방석 위를 넘어 삶 전체로 확장된다.
현안 스님 보화선원 지도법사 xa@chanpureland.org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