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사상은 어떻게 탄생해 우리 삶을 이끄는가

업이란 무엇인가 히라오카 사토시 지음/법장 스님 옮김/운주사/256쪽/ 1만8000원

2025-11-21     심정섭 전문위원

불교를 배우는 이들에게 ‘업’은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핵심 개념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회자되는 업은 대부분 부정적 이미지에 치우쳐 있다. ‘업보를 받는다’ ‘업이 깊다’는 표현은 업을 숙명이나 징벌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히라오카 사토시 교수의 ‘업이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편견을 넘어, 업 사상이 고대 인도라는 역사적 토양 속에서 어떻게 탄생하고, 불교에서 어떻게 전개·확장되어 왔는지를 치밀하게 밝혀내는 연구서다.

저자는 업을 도덕지침이 아니라, 존재를 형성하는 근본 원리이자 인간 삶을 규정하는 인연의 법칙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이 책은 윤회의 실재 여부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고대 인도인은 무엇이 윤회한다고 믿었는가, 붓다는 그 사유를 어떻게 전환했는가라는 역사적 질문을 중심에 둔다. 브라만교·자이나교에서 업이 형성된 과정과 붓다 당시의 새로운 이해가 비교적 쉽게 서술되어 있어, 업 개념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붓다가 업을 ‘의지적 행위’와 ‘책임의 구조’로 재정의한 점이다. 불교에서 업은 신의 계획이나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 짓고 스스로 돌려받는 과정이다. 이로써 업은 기독교의 원죄나 운명론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며,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윤리적 토대가 된다.

책은 전통불교에서 업 사상이 세분화되는 과정도 상세히 다룬다. 신체·행위·결과에 따라 A·B·C군으로 나뉜 체계, 전생담에서 업이 서사적 장치로 활용되며 복잡해지는 양상, 대승불교에서 공(空) 사유와 결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는 흐름은 업이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와 사유에 따라 확장되는 살아 있는 사상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업을 현대사회와 연결해 해석하는 데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차별이 고착화되는 구조, 세습되는 불평등,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 분위기, 신체성·감각이 사라져 가는 디지털 환경 등은 모두 업 사상을 통해 다시 질문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업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미래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구성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책을 번역한 법장 스님은 “업을 가장 섬세하면서도 친절하게 풀어낸 입문서이자 사상서”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책은 문헌적 엄밀함과 대중적 설명이 균형을 이루며 수행자에게는 업에 대한 바른 관점을 제공하고, 일반 독자에게는 불교적 삶의 방식을 새롭게 조망하게 한다. 업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깊은 성찰과 명확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