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고불총림의 역사적 의미와 강령 정신
내부 정화 넘어 확장적 결사…정법 회복으로 공동체 틀 재편 시도 12개 사찰과 10개 포교당 참여, 호남 일대 178명 스님 동참 삼보호지부터 재산관리까지, 11개 강령으로 종합 개혁안 제시 강령 따르는 도량은 어디든 총림 명칭 사용 가능한 확산 구조
1948년 1월 18일(전년도 음력 12월 8일 성도재일), 장성 백양사에서 결성된 고불총림(古佛叢林)은 해방 후 난맥에 빠진 한국불교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원대한 결사였다. 전환기 한복판에서 수행과 계율 중심의 청정 승가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선언이었고, 일제강점기 내내 제도적 틀에 갇혀 있던 한국불교가 스스로 힘으로 정법의 근본을 회복하겠다는 강건한 의지였다.
“오직 부처님의 크고 위대한 위엄과 공덕의 빛과 이 땅의 모든 덕망 높고 훌륭한 옛 스승들의 남긴 지혜와 교훈을 이어받아, 하나의 등불이 무수히 많은 등불을 밝혀 오래도록 꺼지지 않기를 모든 대중이 함께 부처님의 크고 넓은 서원을 펼쳐나가겠나이다.…”(‘호남 고불총림 결성 성명’ 중)
만암 스님이 총림의 기치를 올린 것은 하루아침의 결단이 아니었다. 일제 치하에서도 참선·강학·청규가 조화를 이루는 승가공동체를 꿈꿔왔으며, 그 이상을 백양사라는 도량 안에서 차근차근 구상하고 실험해 왔다. “온전한 총림을 작은 숲으로 만들었으나, 몇 해 동안이나 그 계획을 가슴에 맺어두고 헤아려 왔던가[一片叢林作小林 幾年籌度滯胸襟]”라는 청규 서언의 게송은 오랜 세월 지녀온 숙원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구상은 해방 후의 불교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일본식 사찰령 체제의 잔재, 종단 집행부의 종조관 혼란, 왜색불교의 관행과 승가의 세속화, 제도개혁을 둘러싼 갈등 등은 불교의 근간을 흔들고 있었다. 스님이 품어온 ‘총림의 실현’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더욱 분명하게 그 필요성을 드러냈고, 오히려 그 때문에 총림 결성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고불총림은 기존 질서를 흔들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었다. 그대로 두고서는 수행공동체의 본래 정신을 살릴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대안적 결사였다.
해방기 한국불교에는 수행의 청정성을 되살리려 한 ‘봉암사 결사’와, 수행·계율·조직·재정까지 아우르는 ‘고불총림 결사’라는 두 개혁 흐름이 동시에 존재했다. 1947년 11월 27일(음력 10월 15일 동안거 결제일) 결행된 봉암사 결사는 외부와 차단한 폐문 정진을 통해 계율의 본모습 회복에 집중한 ‘내부 정화형 결사’였다. 반면 고불총림은 여러 사찰과 포교당이 참여하는 연합적 구조를 통해 공동체의 틀을 새롭게 세우려 했던 개방적이고 확장적인 결사였다. 특히 강령을 따르는 도량이면 누구나 ‘고불총림’의 명칭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결사의 정신을 공유하며 넓은 연대 체계를 형성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두 결사는 방식은 달랐으나, 모두 해방기 불교가 직면한 위기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정법과 승가 정신 회복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는 점에서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만암 스님은 고불총림을 통해 선의 본래 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시대의 수행공동체를 만들려 했다. 역대 선지식들이 지켜온 정법의 빛이 끊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존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모범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오랜 구상’과 ‘당대 비판’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성찰을 위한 필연적 관계로 맞물렸다. 가슴 깊이 담아온 이상이 있었기에 현실의 한계가 더 선명하게 보였고, 그 한계 때문에 이상 실현의 시기는 더 늦출 수 없었다. 고불총림은 그 교차점에서 탄생한 결사였다.
만암 스님이 명명한 ‘고불(古佛)’은 석가모니 이전의 여섯 부처님을 일컫는다. 선종에서는 이 여섯 부처님에 석가모니를 더해 ‘과거칠불(過去七佛)’이라고 부른다. 특히 선종에서는 ‘고불’을 정법을 지키고 전해 온 역대 조사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해, 진리를 체득한 이는 시대를 넘어 ‘고불’과 동등하다는 관점을 드러낸다. 총림(叢林)은 선·교·율을 지도할 기관이 모두 갖춰진 대규모 사찰을 의미한다.
스님이 총림의 이름에 고불을 붙인 건 정통성 회복을 통해 일제강점기 왜곡된 불교를 극복해 내겠다는 의지였다. 시대를 초월한 진리 추구와 평등한 깨달음을 지향하며, 근본을 성찰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구현하겠다는 결연함이 담겼다.
총림의 결성 소식은 호남 일대 사찰과 포교당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12개 사찰과 10개 포교당에서 178명의 스님이 동참 의사를 밝혀왔다. 백양사를 중심으로 불갑사, 용흥사, 연흥사, 은선암, 금정암, 용천사, 문수사, 상원사, 소요사 등이 뜻을 함께했고, 백양사가 운영하던 장성·고창·함평·광주·순창·담양·목포·죽교·중동 등 여러 포교당의 스님들도 결사에 합류했다.
고불총림의 대의가 담긴 강령의 서문은 맹귀우목(盲龜遇木)의 고사를 들어 불법(佛法)과의 지중한 인연으로 말문을 연다. 맹귀우목은 눈먼 거북이 백 년에 한 번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올 때, 대해를 떠도는 구멍 난 널빤지와 마주쳐 머리를 그 구멍에 넣을 확률만큼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렵다는 비유다.
“고조(古祖)가 이르시되 사람의 생 얻기가 어렵고 불법 만나기가 어렵다고 칭하신바 우리가 사람의 생을 얻었으며 또한 불법을 만났으니 가히 귀목(龜木)의 기이한 인연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안으로 출가의 본지를 각성하시고 밖으로 대법운명(大法運命)의 좌우를 결정하여 그 사람의 생을 얻은 가치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수승한 인연을 저버리지 않기를 천만번 간절히 기원하나이다.”(고불총림 강령 서문)
고불총림 강령에는 총림 결성이 제도 개선을 넘어선 시대적 요청이었음이 잘 드러난다. 서문에서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는 인연을 거듭 강조한 이유도, 왜색불교의 잔재와 제도적 혼란 속에서 수행의 근본을 바로 세우고자 한 대중의 각오를 밝히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비원을 담은 강령은 모두 11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강령의 첫 항목 ‘삼보호지(三寶護持)’는 총림이 지향하는 중심축을 제시한다. 불(佛), 법(法), 도(道)를 삼보로 명시한 뒤 마음의 청정함이 불, 마음 광명이 법, 처처에 걸림 없는 자리가 도임을 명확히 한다. 이는 총림의 정체성이 ‘본래 마음’을 종지로 삼는 선종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 항목인 ‘사은보답(四恩報答)’은 출가자가 국가, 부모, 스승, 사회의 큰 은혜를 잊지 않고 스스로 덕을 쌓고 마음을 정화해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불교적 책임을 강조한다.
‘종맥승통(宗脈承統)’에서는 강령의 시대 인식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일제 치하 정통성이 훼손됐다는 판단 아래 조선불교는 모두 청허 선사와 부휴 선사의 법맥임을 각인시킨다. 이는 향후 불교가 어떤 정신을 중심에 두고 다시 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네 번째 항목 ‘법중조직(法衆組織)’부터는 구체적인 개혁 방향이 제시된다. 승가를 계율의 충실도에 따라 정법중과 호법중으로 구분하고 역할을 명확히 하는 조항은 승가 질서를 재정비하려는 시도였다. 뒤이어 제시된 ‘관중추대(管衆推戴)’는 계덕을 갖춘 스님을 중심으로 승가의 품격을 회복하고, 삼보사찰을 모범으로 삼아 다른 도량들이 옛 모습을 찾도록 유도한 내용이다.
강령은 이어 ‘직무분장(職務分掌)’을 통해 총림의 공동체적 운영 원리를 구체화한다. 수행·강학·청규 등의 내적 수련은 정법중이, 포교와 재정 등 외적 업무는 호법중이 맡도록 하여 수행과 행정의 충돌을 줄이고 책임을 명확히 하려 했다. ‘인재채용(人材採用)’ 조항에서 자격 이외에 신심과 공심, 덕성을 주된 기준으로 제시한 것도 승가 인사 원칙을 새롭게 정립했음을 보여준다.
가장 선구적인 조항은 ‘재산보관(財産保管)’이다. 사찰의 토지와 건물은 선대 조사들이 지켜온 상주재산(常住財産)이므로 누구든 목숨처럼 여겨야 하며, 이를 보호하기 위해 재단법인 설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매우 시대를 앞선 제안이었다. ‘명사가칭(名詞加稱)’은 고불총림이 특정 사찰의 변화를 넘어 한국불교 전체의 결사로 확장되기를 바랐던 만암 스님의 구상을 보여준다. 강령을 따르는 도량이나 단체라면 어디든 ‘고불총림’의 이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은 결사의 정신을 공유하고 연대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직 부처님의 유훈과 계법을 스승으로 삼으라는 ‘무타궤도(無他軌道)’, 강령을 받아 실천하는 사찰이나 단체 간에 서로 소통해야 한다는 ‘성기상통(聲氣相通)’을 제시한다.
고불총림 강령은 이처럼 수행과 계율의 원칙에서 전통의 계승, 조직 운영, 재정 관리, 사회적 역할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성격이었다. 한 도량의 규범을 넘어 한국불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선언이었으며, 이후 정화운동과 승가 교육의 방향을 미리 보여준 선구적 모델이었다. 만암 스님과 대중이 품은 ‘새 시대 불교’의 이상은 이 강령 안에서 구체적 형태를 갖추었고, 백양사를 넘어 한국불교 전반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재형 대표 mitra@beopbo.com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