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부정의 극치서 긍정으로의 대전환

2011-05-03     법보신문

“외로 가는 길손이여 그림자만 따르나니/ 짐 벗은 이들 모두 같이 이 길에서 노닌다.(常獨行 常獨步 達者同遊涅槃路)” 증도가


선(禪)에서의 자기의 참된 성품은 ‘무성(無性)’, 즉 자기 아닌 자기,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무일물’이 자기이다. 그것은 자기라는 한계로부터 그 한계를 초월한 자기이다. 이 ‘무성’으로서의 자기는 자기부정의 극치에서 만나는 자기이다. 이 참된 자기에게 있어서는 일체의 타자가 곧 자기화 된다. 산하대지가 모두 남김없이 자기화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여기에 오면 저 허공의 구름도, 달도, 별도 이 모두가 자기일 뿐이다. 유한상대의 자기의식, 남과 나의 대립 의식은 부서지고 대신 무한절대의 ‘참된 자기’가 나타난다. 이는 선 경험의 기본이다.


따라서 자기의식과 대립의식이 무너진 자기는 공간의 한계를 벗어난다. 시간의 벽을 뚫고 나간다. 상대적인 자기라는 한계 속에 있으면서 절대적으로 그 한계를 초월한 자기로서의 참된 성품을 체험하는 순간, 동시에 일체의 한계는 극복되는 것이다. 상대가 그대로 자기화 한다.


안을 향해서 자기의 탐구가 시작되면 그것은 자기의 죽음, ‘살아 있으면서 죽은 자가 되는’ 곳까지 도달한다. 이렇게 하여 자기에의 부정이 극한에 이르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대전환이 온다. 심기일전(心機一轉)이 일어난다.


나의 안으로 안으로만 조이던 마음이 더 이상 조일 수 없는 충전의 마지막에 오면 그 조인 힘의 역반응으로 하여 밖을 향해 터져나간다. 무한한 자기 확대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은 용수철 현상이다. 용수철을 눌렀다 놓으면, 용수철은 그 눌려진 힘의 몇 배로 튀는 것이다. 이는 부정의 극치에서 긍정으로의 전환인 것이다.


▲석지현 스님
여기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고독의 밑바닥까지 침잠하는 선에서의 자기탐구는 타자에의 관심으로 전환될 필연적인 계기를 그 자체 안에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선의 자타일여(自他一如)의 입장에 있어서의 무아(無我)를 지향하는 공부는 반드시 모든 존재에의 자비행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아가 곧 자비요, 자비에서만이 무아는 실현되기 때문이다. 자비 없는 무아행(無我行)은 빈껍데기이다. 자비는 곧 모든 부처님들과 성자들의 비원(悲願)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