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장례는 7일장으로 치러졌다. 열반 후 7일 동안 조곡하고 공양을 올린 후 7일째 되는 날 말라족 가운데 존경받는 8명과 8명의 신들이 좌우에서 함께 관을 들고 북문을 통해 꾸시나라 거리로 들어가 시의 중앙에서 붓다의 법구에 공양했다. 이때 백성들은 꽃을 뿌리고 향을 피우면서 붓다를 맞았다. 그리고 동문으로 나와 마쿠타반다나 사원에서 다비했다. 붓다의 법구는 향탕으로 씻고 천과 솜으로 싼 이후에 금관 속에 모셨다. 그리고 다시 기름이 담긴 철곽에 안치한 다음 향나무를 쌓고 그 위에 철곽을 올렸다. 이후 불을 붙였을 때 불이 붙지 않았으나, 마하캇사파가 도착하자 스스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신 이후 마하캇사파가 예배를 마친 이후에 역시 스스로 두발을 거두고 관 뚜껑이 닫힌 후 저절로 장작더미에 불이
▷ 병든 붓다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비난이 있다.“나도 치료를 간곡히 청했지만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스승님은 이미 생로병사의 근심에서 자유로운 분이다. 심지어 쭌다(춘다)의 공양물에 독성이 있음을 아시면서도 당신만 드시고 다른 사람들은 먹지 못하도록 묻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를 위해 마지막 공양의 공덕을 설한 분이다. 그리고 인위적 치료는 무상을 설하신 붓다의 가르침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열반 장소가 너무 허름하다. 왜 성으로 모시지 않았나.“붓다께서 성안이나 왕궁에서 열반에 드셨다면 여래를 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왕과 대신 등 권력층에 한정됐을 것이다. 숲에서 열반에 드셨기 때문에 서민들을 비롯해 오고 싶은 사람 누구나 다 와서 열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이미 사성계
붓다 열반으로 나라 안 모든 백성이 비탄에 젖는 등 전국이 추모 모드로 접어든 가운데 상수제자 마하캇사파(마하가섭)가 결집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붓다의 10대 제자 중 맏형 위치에 있는 마하캇사파는 붓다의 다비식을 마치고 슬픔에 잠긴 비구들에게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보석을 줄에 꿰듯, 부처님의 법과 율을 모아 교단의 튼튼한 반석을 만들자”며 결집을 제안했다. 특히 마하캇사파는 붓다의 열반 소식을 접하고 슬퍼하는 비구들에게 사캬족 출신의 늦깎이 비구가 “잔소리꾼이 없어졌으니 기쁜 일”이라며 막말을 한 사실을 밝혀, 장로·비구들을 경악케 했다. 마하캇사파에 따르면 그 사꺄족 비구는 “슬퍼할 것 없다. 그 늙은이는 살아생전에 늘 이것은 된다,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된다, 안 된다
기원전 544년 2월 15일…세납 80-법랍 51세2월 22일 쿠시나가라 마쿠타반다나서 다비식 붓다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열반에 들었다. 2~3세기 간다라 작품. 대영박물관. “비구들아, 모든 것은 쉼 없이 변하니 마음속의 분별·망상과 밖의 여러 대상을 버리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일함을 원수와 도둑을 멀리하듯이 해야 한다. 나는 방일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정각을 이루었다. 마치 낙숫물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정진하라.” 보리수나무 아래서의 성도 이후 계율을 존중하고 한 치의 게으름 없이 정진하며 수많은 중생들의 마음에 진리의 등불을 밝혀온 석가모니부처님이 “모든 것이 변하니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는 유훈을 남기고 기원전 544
▷붓다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아침공양을 마치고 라즈기르 성내를 통과해 수행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향하던 중 탁발하는 한 수행승을 보게 됐다. 그의 고결한 모습과 성인다운 행동에 이끌려 대화를 나누게 됐고, 그의 스승이 일러줬다는 게송을 듣는 순간 반드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스님은 붓다의 최초 다섯 제자 중 한 사람인 아싸지(Assaji)였다.” ▷당신에게는 ‘산자냐’라는 스승이 있었다. 그를 떠나 붓다를 택한 이유는.“산자냐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으로 25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마가다국에서 큰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알다시피 산자냐는 사후세계, 선과 악, 업보 등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회의설(懷疑設)을 펼쳤다. 때문에 그
붓다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는 상수 제자인 사리풋타(사리불)와 목갈라나(목건련)가 있다. 이들은 각각 지혜제일과 신통제일로 칭송받으며 출·재가를 막론하는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또 수행제일 캇사파(가섭)와 다문제일 아난다 비구도 붓다가 있는 자리에서 붓다를 대신해 대중에게 법문을 하기도 하는 등 승단을 이끄는 주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비구니로는 붓다의 양어머니이자 최초의 비구니인 마하파자파띠 고따미와 붓다가 상수 비구니로 선언한 지혜제일 케마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비구니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비구와 비견될 만큼 지혜와 복덕을 두루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구니계의 신통제일과 설법제일로 불리는 웁팔리반나와 담마딘나 향후 승가를 이끌 차세대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캇사파는 “붓다에게 귀
지난 6월 까시국 바라나시 녹야원에 자리를 잡은 붓다의 제자 60명이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해 화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사실 확인을 위해 비밀리에 녹야원에 잠입한 바라문 장로들마저 삼보에 귀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붓다의 제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이 향후 까시국을 넘어 이웃한 15개국 전체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열풍과도 같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승가 관계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괴로움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붓다를 친견한 사람들은 “위 없는 진리를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기원전 588년 6월 15일 사성제·팔정도 법문옛 도반 콘다냐, 법문 후 최초로 아라한과 증득 붓다가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법을 설하고 있다. 2~3세기 간다라. 지난해 12월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6개월 만에 첫 번째 법석을 열었다.붓다는 기원전 588년 6월 15일 까시국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성도 후 처음으로 법륜(法輪)을 굴렸다. 보드가야를 출발, 밤낮 없이 걸어 13일 만에 녹야원에 도착한 붓다는 전법의 의지를 대변하듯 조금의 휴식도 없이 곧바로 법문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는 과거 고행림에서 붓다와 함께 수행했던 콘다냐(교진여), 밧디야, 카샤파, 마하나마, 아싸지를 비롯해 범천과 천신, 수십 마리의 사슴들도 동참, 붓다의 법문에 귀를 기울였다. 당초 붓다
싯다르타가 위없는 깨달음은 얻기까지는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험난한 고행을 지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바른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고행주의자들 중에는 쇠똥을 핥아먹는 이가 있는가하면 하루에 보리 한 알, 깨 한 알만 먹는 이도 있었고, 시커먼 검댕이나 똥을 바른 이, 가시밭에 뒹구는 이,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는 이, 물구나무 서서 생활하는 이, 아예 벌거벗은 이도 있는 등 처절하게 몸을 혹사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이런 수행법을 익힌 싯다르타도 거친 베옷을 입고, 누더기를 걸치고, 하루 쌀 한 톨로 공양을 대신하는 일도 많았다. 특히 어떤 날은 풀이나 나무껍질 또는 부엉이의 깃털을 주워 엮어 입고, 아예 나체로 지내기도 했다. 또 머리카락과
연기-사성제로 해탈의 길 제시 붓다의 깨달음은 인간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해탈의 길이 무엇인가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찬탄을 받고 있다. 특히 “처절한 고행을 통해 천상에 태어나는 것만이 오직 해탈”이라고 믿는 전통적인 견해를 벗어나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획기적인 길을 제시한 점은 놀랄만하다. 붓다에 따르면 모든 것은 연기(緣起)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소멸함으로써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으며, 아트만이나 영혼 등 불변하는 자아도 없음을 의미한다. 붓다는 모든 인간이 고해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원인이 ‘무명(無明)’에 있다고 보았다. 즉 “무명은 지어감으로 인하고, 지어감은 의식으로 인하고, 의식은 이름과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 왜 설법을 망설였다고 보나.“붓다께서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는 단순한 사려를 넘어서는 것으로 오직 지혜로운 이만 이 법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붓다께서 왜 중생들을 위해 설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붓다께서 법을 설하지 않으시면 탐욕의 강물에 떠밀리고 분노의 불길에 휩싸인 이 세상은 결국 파멸로 치닫고 말 것이며 중생들의 고통도 억겁에 걸쳐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붓다께서 설법을 하면 그 심원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 것으로 보았나.“이 세상에는 그래도 때가 덜 묻은 이들이 있다. 또 선과 진리 앞에서 진실한 이들도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들마저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진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건 참으로
싯다르타, 6년 고행 끝 무상정등각 실현범천 요청 받아들여 곧 설법에 나서기로 1~2세기 간다라지역에서 조성된 항마성도로 현재 페샤와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사진제공=유근자 박사 고타마 싯다르타가 혹독한 고행 끝에 마침내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싯다르타는 기원전 589년 12월 8일 “이제 나의 마음은 고요하고, 맑고, 더러움도 없고, 무엇에도 장애를 받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가 됐다”며 “과거에 몇 번이나 되풀이 되어온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지극한 평정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느끼고 출가한 지 꼭 6년만의 일이다. 붓다가 된 싯다르타는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근원은 ‘무명(無明)’에 있으며 이를
사캬족은 이 세상 최초의 임금인 마하삼마다의 혈통을 이어 받은 종족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캬국의 건립은 부다가국의 이크슈바쿠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4명의 아들이 고국에서 쫓겨나 북쪽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정착해 나라를 세운 것이 바로 사캬국이다. 인구 백만의 작은 나라인 사캬국은 현재 코살라의 영향 아래 있지만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나라로 유명하다.
왕가의 전통에 따를 경우 태자에 대한 교육은 7세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 중 왕족의 교양과 기예를 고루 갖춰야할 태자가 가장 먼저 배우게 될 분야는 단연 베다학이다. 『베다』는 정치를 비롯한 사회·문화의 토대인 만큼 이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태자에게 베다를 가르칠 유력한 스승으로 사캬국 최고의 베다학자로 칭송받는 비슈바미트라가 거론되고 있으며, 수학의 대가인 아르주나도 태자에게 수학과 논리학을 가르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숫도다나왕의 태자에 대한 교육열이 지대한 탓에 외국의 학자들도 적극 초빙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베다의 보조학문인 어원학과 문법학과 관련 서북쪽 간다라 지역의 대학자인 사르바미트라를 초청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
▷태자가 탄생했다. 소감은?“과인의 나이 사십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후사가 늘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아시타 선인은 태자가 훗날 전륜성왕이나 붓다가 될 것으로 예언했다. 임금께선 태자가 어떤 길을 걸었으면 하나?“태자는 온 사캬국 백성들의 꿈과 희망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자기 하나만의 깨달음을 찾아가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나는 반드시 태자를 전륜성왕으로 키울 것이다.” ▷전륜성왕도 위대하지만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붓다가 더 위대한 것 아닌가?“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우리 사캬족은 태양신의 자손이자 이 세상 최초의 임금인 마하삼마다 대왕의 혈통을 이은 뛰어난 종족이다. 지금 비록 코살라의 번국으로 전락하
사캬국의 태자 싯다르타의 탄생으로 나라 안이 온통 축제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왕비 마야(Māyā)부인이 4월 15일 돌연 세상을 떠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마야부인이 지난 4월 8일 룸비니에서 태자를 낳은 지 꼭 일주일 만이다. 마야부인의 서거는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평소 마야부인이 건강했을 뿐 아니라 태자를 잉태하고서도 전혀 병세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 마야부인은 룸비니동산에서 태자를 낳을 때도 별다른 산통이 없이 출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마야부인이 아기를 낳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던 중 그곳에서 갑자기 태자를 낳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무리를 한 것이 사인(死因)일 수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들을 내놓고 있다.
천지진동에 꽃비까지…이름은 ‘싯다르타’로아시타 선인 “전륜성왕이나 붓다 될 것” 예언 불자들에게 부처님은 과거가 아닌 늘 현재형이다. 본지는 부처님 시대로 들어가 그 당시의 현장과 목소리를 기사화하는 방식으로 부처님의 일대기를 재구성 했다. 부처님일대기를 담은 경전과 출판서적을 토대로 기사화 했으며, 인물 삽화는 김재일 화백이 맡았다. 편집자 마야부인이 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아기를 낳고 있는 모습. 2~3세기 간다라. 사캬국 왕비 마야부인이 숫도다나왕의 뒤를 이을 태자를 출산했다. 숫도다나왕의 나이 40을 넘겨 얻은 귀한 아들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출산 직후 신이한 일들이 속출해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영축총림 통도사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양산 관내 소외 이웃에 라면을 전달하며 자비 나눔을 실천했다. 통도사(주지 정우)는 부처님오신날을 삼일 앞둔 5월 18일 양산시청 부시장실에서 자비의 라면 전달식을 가졌다. 법보신문이 기획한 이 행사는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주식회사 농심이 공식 후원하고 통도사에서 농심이 개발한 100% 채식라면인 순(純) 라면 500 박스를 보시한 자리다. 전달식에는 통도사 총무국장 항조 스님과 양산시청 안기섭 시장권한대행, 농심 부산동지점 권재환 지점장 등이 참석했다. 통도사가 보시한 1280만원(도매가 기준) 상당 500박스의 라면 가운데 200박스는 농심이 후원해 정성을 더했다. 라면은 양산시청 관내 다문화가정과 독거어르신 등 소외계층 500세대에 전달될 예
남측 불자들이 북측에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를 여법하게 치를 수 있도록 양초 2만개와 향 2000개를 전달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명진)는 지난 5월 17일 고성 동해선 출입사무소를 지나 육로를 통해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에 전할 봉축물품을 보냈다. 이번에 지원한 2600만 원 상당의 봉축물품은 양초 200박스(1박스 100개), 향 20박스(1박스 100갑) 등이다. 물품은 금강산 신계사를 비롯한 북측 사찰에 전해진다. 민추본은 “봉축물품 지원을 계기로 북측에서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와 행사들이 여법하게 이뤄지길 바라며, 북측 불자들의 신행에도 도움이 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5월 21일 오전 남측은 서울 조계사에서, 북측은 평양 광법사에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를 동시에
헌법파괴 종교편향 종식 범불교대책위원회 사무총장에 인천 수미정사 주지 종연 스님이 위촉됐다.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5월 1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종연 스님에 위촉장을 전달하며 “종교편향 모니터와 대응책을 강화하고 관련단체들과 협의해 조직 체계를 정비해달라”고 말했다. 종연 스님은 백양사에서 지종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송광사에서 범룡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현재 인천 수미정사 주지를 맡고 있다. 최승현 기자 trollss@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