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시, 의정부시에 걸쳐있는 도봉산은 예로부터 자운봉, 만장봉 등 우뚝 솟은 백색 화강암 봉우리와 기암, 암벽이 어우러진 장관 때문에 인적이 끊이지 않는 명산이다. 특히 만장봉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도봉계곡 옆(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도봉산길 90)에는 유서 깊은 조선시대 서원터가 하나 남아있는데, 조선초기와 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 조광조와 송시열을 제사지냈던 도봉서원터(서울시기념물)의 자취이다.도봉서원은 수려한 영국동계곡(도봉계곡)을 즐겨 찾았던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
어느 해 여름 새벽기도에서 이산선사발원문을 처음 들었다. 불교에 막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새벽예불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호기심으로 처음 참석한 날이었다. 예불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스님께서 일어나시더니 뭔가를 펼치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글은 네 글자로 리드미컬했다.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 생명 사랑하여 이내 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이 대목에서 귀가 번쩍 뜨였다. ‘고통 받던 저 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 새와 기는 짐승 원수 맺고 빚진 이들 갖은 고통 벗어나서 좋은 복락 누려 지이다. 모진
요즈음 회사원들은 ‘숨도 안 쉬고’ 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간혹 회사에 들를 일이 있어 가보면 모두들 호흡에 안 좋은 자세를 하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숨도 안 쉬고’ 가슴을 오므리는 자세로 오래 견디다보니 장기간 ‘무호흡증’ 내지 ‘저호흡증’ 상태로 머물게 된다. 호흡이 조금씩 줄어든 까닭에 두뇌도 산소 분압이 저하된 상태로 있기 쉽다.그렇게 3개월 이상 두뇌 산소 분압이 저하되면 졸리고, 피곤하고 하품이 나오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저하되는 만성피로가 나타난다. 호흡이 줄어들면 당연히
스리랑카 콜롬보공항과 우리나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직항이 개설된 것은 2013년이다. 그 이전에는 싱가포르, 방콕, 홍콩 등을 경유했다. 인천공항을 출발, 아무리 서둘러도 10시간 이상 가야하는 머나먼 나라였다. 직항이 개설된 이후 스리랑카와의 교류는 빠르게 증가했다. 동시에 스리랑카의 불교유적을 찾아가는 불자들의 발걸음도 가파르게 늘어났다.콜롬보공항에서 근무하고 있는 우리나라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스리랑카를 찾아오는 한국인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불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일반관광객이 아닌 불자들도 스리랑
포교사 품수를 받고 활동을 하면서 뭔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다. 포교사가 지역민을 만나서 부처님 가르침의 향훈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 않았다. 군포교, 자원봉사, 염불봉사, 어린이법회, 교정교화, 사찰문화해설 등 포교사 활동분야가 세분화 돼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하기 시작했다.육바라밀의 으뜸은 보시바라밀이라고 생각한다. 건강관리사업을 하면서도 2004년부터 지금까지 약 15년간 전주시자원봉사센터와 동행 중이다. 귀반사(이혈)건
슉셉 제춘(Shugsep Jetsun)은 레왈사르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은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하다.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 사이에 위치해서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여겨짐에도 이 호수를 보기 위해 많은 인도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슉셉 제춘의 어머니인 페마 돌마와 아버지 둔둡 남걀은 성지 순례를 떠났다가 만나 이곳 레왈사르 마을에 정착해 살게 됐다. 1852년 페마 돌마는 여자 아기를 출산했고 이름을 로첸이라고 지었다. 둔둡 남걀은 아기가 딸인 것에 크게 실망했고, 아기가 말문을 트기도 전에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동네의 다른 여인과
자타카는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본생담’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의 핵심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문학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기본적으로 자타카는 교리적인 측면보다 설화적인 측면이 강했고 과거 부처님의 모습은 전설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전생에 동물을 포함한 다양한 모습을 했다는 것은 윤회를 기본적인 세계관으로 받아들이는 인도에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윤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동아시아에서는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한국의 경우 고려 시대 몇몇 예외적인 부조를 제외하고 불교 사원을 장식하고 신도들에게 종교적인 영
야소다라는 머리카락을 풀고 장신구를 뗐다.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잤으며 다듬지 않은 음식을 한 끼씩만 받았다. 수행자처럼 살겠다고 공표한 대로 입고 먹었다. 그간 태생에 기대고, 미모에 기대고, 칭찬에 기대고, 허영심에 기대 살았다. 어느 하나가 사라지면 내가 넘어진다는 것, 싯다르타의 출가가 일깨워 준 진실이었다. 기댈 것을 허물면 어떤 삶이 될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남의 운명에 내 운명을 맡기는 일만은 없겠지 싶었다.6년이 지난 어느 날, 싯다르타와 관련한 소식을 들었다. 깨달았고 교단을 이뤄 가르침을 펼친다는 이야기
문화재란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다른 문화들과의 상호작용과 끊임없는 문화교류를 통하여 형성되었다. 그 때문에 문화재로부터 역사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동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재란 그 나라의 근원을 더듬어 가고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역사적 유산이기에 우리 모두가 지키고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재 반출에 관한 법적인 규정은 그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문화재 보호정책을 시행하고 있다.일반적으로 역사가 오래되어 문화재가 풍부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터
어느덧 연재를 시작한지 1년이 되었고 이제 마지막 회차가 되었다. 급작스레 건너뛴 느낌이 있지만,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의 ‘대사들’이다. 홀바인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와 더불어 르네상스 문화가 북유럽에서도 풍미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특히 초상화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 유럽을 먹구름 속으로 몰고 갔던 때였다.그는 독일의 화가 집안에서 태어
때는 연말인지라 거리에는 번쩍거리는 불빛이 찬란하다. 잘 보냈든 그렇지 않든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시작될 것이다. 이 들썩이고 조금은 흥에 겨운 연말 분위기에 너무나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전원으로 일하던 스물넷 꽃다운 청년이 사고를 당해 숨졌다. 그 청년은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1년 계약직으로 들어온 지 겨우 3개월 만에 사고가 났다. 야간에 홀로 4~5킬로미터나 되는 긴 석탄운송설비를 점검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빨려 들어가 귀한 목숨을 잃었다. 우리의 밤을 환하게 밝혀줄 전기를 생산하는 현장에
독감이 맹렬하게 퍼지고 있다. 병원마다 독감 환자가 넘치고 있다. 이번 독감은 고열만이 아니라 전신 근육통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열은 높은 열이라고 해서 보통 39도 이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실 고열일 때에는 별로 불편한 것이 없다. 멍하니 두통이 심한 정도밖에 모른다. 고통이 심한 것은 37도 내외의 중간 정도 열이 전신 근육통이나 두통, 오한 등을 가장 심하게 가져온다. 벌벌 떤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온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진다.이번 독감은 신종플루에다가 신종플루 변종, 그리고 보통 독감, 보통 독감 변종, 메르
모태불자다. 어머님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리셨다. 집은 익산이었지만 어머님께서 다니셨던 절이 김제 모악산 청룡사였기에 익산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김제 금산사 주자창에 내려 약 4km를 걸어야 했다. 버스를 타고 십리 길을 더 걸어야 했지만 어머님께서는 믿음 하나로 다니셨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절에 다니긴 했다. 하지만 부처님오신날 등 특별한 행사에만 참석했기에, 1년에 몇 번 남짓 다니는 게 전부였다.규칙적으로 절을 찾게 된 시기는 불교대학에 입학한 1992년부터다. 이리불교대학에서 1년 동안 불교
틱낫한 스님과 인연을 맺은 챤콩은 틱낫한 스님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점 더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챤콩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평생을 바치고 싶다는 소망에 대해 이야기했고 틱낫한 스님은 사회 문제에 주시하는 그를 높게 평가했다. 틱낫한 스님은 절망에 빠져 있거나 작은 도움이나마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에게 진정한 마음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 불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부처님께서 인간들에게 전해 주고자 했던 가르침들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현실 세상에서 실현하시는 방법이라고 말했다.틱낫한 스님은 챤콩
수닷사나는 왕을 설득해 광장으로 나왔다. 알람바야나는 수닷사나가 왕과 함께 나타나자 당황해서 말했다. “출가수행자여,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 거대한 뱀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수닷사나가 답했다. “알람바야나여, 저는 뱀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그 뱀은 무서운 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사람들에게 거대한 뱀이 위험하지 않다고 속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닷사나는 앗치무키를 불렀다. “여기 작은 개구리는 앗치무키라고 합니다. 그녀는 뱀왕의 딸입니다. 입으로 불을 내뿜고 강력한
싯다르타는 남편이되 남편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나무랄 게 없었다. 싯다르타는 온화한 말과 부드러운 몸짓으로 대해 주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그 말과 행동에서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눈을 마주쳐도 시선을 받는다는 느낌이 없었으며, 서로 안고 있어도 안겨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령 영원히 걷는데도 닿지 못할 아득한 곳에 싯다르타가 서 있는 듯했다. 싯다르타의 눈망울을 볼 때마다, 혹시 자신이 비치지 않을까 기대하는 일도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고 말았다.10년이 흐르는 동안 야소다라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지냈다. 물론, 이야기를 나
‘삼국유사’에는 백제 성왕5년(대통원년, 527)에 양나라의 무제를 위하여 웅천주에 대통사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양 무제는 불심천자 혹은 황제보살로 칭송 받았던 중국 남조 양나라의 황제였다. 성왕 역시 이러한 양 무제처럼 불국토 건설을 염원하였던 것 같다.성왕은 무령왕의 아들로서 역사적으로는 사비천도를 단행한 인물로 유명하다. 천도를 준비하면서 공주지역에 대통사 및 흥륜사를 창건하였고, 인도에서 5년 만에 귀국한 겸익 스님에게는 흥륜사에서 불경을 번역하게 하였다. 흥륜사는 일본 기록에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 국내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저술한 ‘문명의 붕괴’에는 한때 흥했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문명들의 ‘옛’이야기가 몇 편 실려 있다. 책은 제목 그대로 이스터 섬, 핏케언 섬과 핸더슨 섬, 아나사지 문명과 마야 문명 그리고 저 북쪽 그린란드에서 노르웨이인들의 몰락까지 다양한 ‘문명의 붕괴’를 보여준다.흥미로운 것은 이들 문명이 몰락하게 된 공통점에 삼림 파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든 목재를 활용해서 집을 짓는 문제였든 또는 통치자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목재를 소비했든 어쨌든 숲을 지속가능하지 못하도록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국가 전체가 난리다. 우리 개인에게는 당장 닥쳐오는 엄청난 건강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미세먼지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를 하고 대책마련을 제안해 왔지만 여전히 임기응변식 대처에 그치고 있어 안타깝다.미세먼지 대응책은 사전 예방책, 사후 예방책, 장기적인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사전 예방책으로는 미세먼지 예보를 매일 체크하고, 미세먼지가 보통인 경우 생활 리듬을 조절해야 한다. 평상시에도 스스로 건강 수칙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미세먼지 예보는 정부 당국의
“500명이면 어떻고, 5명이면 어떤가. 시작은 비록 작지만 이 사람들이 일당백을 할 것이니, 염려 말고 밀고 나가라.”이 말씀에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환희심까지 일었다.공공연하게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을 말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내리막으로 치닫던 인생을 건져 올린 부처님 가르침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였다. 2005년 후임에게 군청 내 공무원불자연합회장직을 이임할 때, 50명 정도 회원이 됐다.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사찰순례를 가면 기독교 신자였던 군수가 차량 대여를 신경 써 줄 정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