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는 기복…출가자는 ‘영혼 관리자’ 전락수행공간은 ‘일상’… 수입 6% 보시운동 제안 “한국불교는 역사의 유구함에 대한 자부심과 사상의 심오함만을 유물로 간직한 채 중생고와 사회고를 치유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는커녕 오히려 천박한 정치권력과 경제논리에 지배당하는 무기력한 종교, 반시대적 종교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박광서(서강대 교수·사진)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는 한국불교학회(회장 김선근)가 7월 3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한 2008여름 학술워크숍 기조강연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산중에 갇혀있거나 경전 속에 묻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불교와 사회참여’라는 주제의 이날 강연은 한국불교의 한 복판에서 오랜 세월 불교를 위해 헌신했던 한 재가
2500년 불교사에 있어 세계 최다의 표제어를 수록한 불교대백과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가산불교문화연구원(원장 지관)이 최근 「가산불교대사림」 제10권을 출간했다. 이번 제10권은 총 1135쪽 분량으로 ‘보살계본’에서 ‘분비’까지 4000여 항목의 불교용어가 수록돼 있다. 『가산불교대사림』은 지난 82년 가산불교연구원 원장 지관 스님의 발원에서 비롯됐다. 이후 지난 99년 제 1ㆍ2권 발간을 시작으로 꾸준히 편찬되고 있으며, 15만여 항목, 본책 15권, 총18권이라는 방대한 규모로 세계 불교학의 연구성과를 종합적으로 반영, 한국 불교학 및 인문학 연구전통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자어,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등 범불교권 언어를 병기하고 있을 뿐 아니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1981)에서 오매일여의 경지를 통과하지 못하면 견성이 아니며 오도가 아니라고 선언했던 것과 관련해 최근 격론이 잇따르고 있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지난 7월 7일 월요포럼에서 “성철 스님이 오매일여를 해석하며 숙면상태에서도 화두를 들어야 한다고 했던 주장은 대혜종고의 간화선 사상과 전혀 다를 뿐 아니라 화두참구 상태가 실제 오매일여가 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도 분별망상”이라고 비판함에 따라 논쟁의 불을 붙였다. 요컨대 성철 스님은 현사(835~908)와 대혜(1089~1163) 스님들의 문헌을 오독(誤讀)하거나 과잉 해석해 논리적 전개를 하고 있어 엄밀한 의미의 간화선이 아닐뿐더러 자칫 후대 수많은 참선자들이 불가능한 허상을 좇다가 일생을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성철선
민족사 윤창화 대표가 지난 7월 7일 월요포럼에서 “성철 스님이 오매일여를 해석하며 숙면상태에서도 화두를 들어야 한다고 했던 주장은 대혜 종고의 간화선 사상과 전혀 다를 뿐 아니라 화두참구 상태가 실제 오매일여가 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도 분별망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하나조노대 박사 원충 스님과 안성두 금강대 교수가 이에 대해 반론한데 이어 이번에는 동방대학원대 교수이자 명상상담연구원장 인경 스님이 오매일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왔다. 편집자 법보신문을 통해서 이루지고 있는 ‘오매일여(寤寐一如)’와 관련된 논쟁을 보면서, 새롭게 다시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린다. 부탁도 있었지만, 논쟁점에서 상당하게 다른 관점이 발견되어 필자는 의견을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지난 2005년 6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실시한 낙산사 발굴조사를 끝내고 31일 「낙산사 발굴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낙산사가 2005년 4월 발생한 강원도 지역 산불로 소실된 지 3년만의 일이다. 연구소 측은 “낙산사 발굴조사는 원통보전(중심 법당)과 그 주변지역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로서 낙산사 사역이 변화되는 과정을 밝히고 건물지의 정확한 규모와 위치 등을 파악해 낙산사 복원의 고증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했다”며 “발굴조사 결과, 중심 건물지(현 원통보전)는 고려시대부터 2005년 4월 산불로 소실되기 전까지 5시기에 걸쳐서 중창됐으며 조선시대 세조 때 최대 규모였음이 밝혀져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 바와 같이 당시 왕실로부터 많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을 시행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현재 진행 중인 석탑 1층부 해체 작업 과정에서 그동안 석축에 가려져 있던 석탑 남·서측면 및 기단부가 노출됐고 특히 석축 내부에서 석인상 1기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7월 29일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노출된 1층 남·서측면은 옥개석을 비롯하여 탑신부가 대부분 보존돼 있고 기단은 기존 동측면과 동일한 상·하 이중기단이 유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일부 부재는 파손 및 변위된 모습이며 부재간 이격이 심하여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기단부는 전체적인 형태는 유지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부재 결손 및 변형이 발생했고 상층기단갑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소 측은 “미륵사지석탑의 석인상은 1층 기단 주위에 3기가 노출되어
그린피플 네트워크가 7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첫 채식심포지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계(不殺生戒)는 불자라면 당연히 지켜야할 첫 번째 계율로 고기를 먹지 않는 불교의 오랜 전통도 이로부터 비롯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채식을 하는 불자들이 그리 많지 않을 뿐 아니라 그나마 자신은 채식을 하더라도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이런 가운데 성장기에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으로 채식을 하는 학생들이 체격과 체력에 있어 오히려 평균 이상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채식인과 동물보호협회 등 50여 개 단체로 구성된 그린피플 네트워크가 7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채식심포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통일신라의 호국사찰인 경주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녹유전(綠釉塼)에 대해 최첨단 3D 스캔(Scan)장비를 이용한 정밀 실측조사를 통해 도상으로 이를 복원했다. 현재 경주시 배반동 935-2번지에 폐허된 상태로 남아 있는 사천왕사지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19년(679년)에 창건된 쌍탑식(雙塔式) 가람으로, 2기의 목탑(木塔)이 배치돼 통일신라 사찰가람의 전형을 처음으로 이룬 곳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수습돼 섬세한 조각과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으로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끌었던 녹유전편이 2006년 서목탑지(西木塔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확인됨으로써, 녹유전이 탑 기단부를 장식했던 면석(面石)임이 밝혀지게 됐다. 이번에 최첨단 3D 스캔장비를 사용해 정밀 실측을 한 녹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경북 청송군 부동면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대전사보광전」을 보물 제1570호 「청송대전사보광전」로 지정했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그 건축 연대(1672년, 강희 11년 임자 5월초 119일, 현종 13년)가 밝혀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에 중창했음을 알 수 있다. 「청송대전사보광전」의 건물 구조는 화강석 기단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약간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구성된 정면3칸, 측면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조선 중기 이후 목조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 공간 구조는 우물천장 형식으로 앞뒤에 층단을 둔 구조이고, 양측면은 빗
민족사 윤창화 대표가 지난 7월 7월 월요포럼에서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 해석은 도교적 관점일 뿐 아니라 화두참구 상태가 실제 오매일여가 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도 분별망상”이라고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장 원충 스님은 이 주장에 맞서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는 수행점검의 기준”이라고 반박하는 등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유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안성두 금강대 교수가 윤 대표의 주장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최근 윤창화 선생님(이하 윤창화)에 의해 성철 스님이 깨달음에 이르는 징표로서 주창하신 ‘오매일여’가 사실은 대혜 종고 등 선사의 어록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성철스님의 주장은 이를 오해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불교철학을 전공한 조성택 고려대 교수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시리즈’에서 강연한다. ‘불교의 역사적 이해’란 주제로 5회에 걸쳐 7월 26일부터 8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역사적 붓다(7월 26일) △붓다(8월 2일) △무불시대의 붓다들(8월 9일) △경쟁하는 붓다들: 미륵과 아미타불(8월 16일) △종합토론(8월 23일) 등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마지막 종합토론에서는 김종욱 동국대 교수의 사회로 박찬국 서울대 교수, 안성두 금강대 교수, 윤원철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해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강의에서 조 교수는 ‘역사’와 ‘신화’가 혼재돼 있는 다양한 붓다의 모습을 해체함으로써 원산지 인도에서의 불교의 역사적 실체
한국선문화학회(회장 이평래)는 8월 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남양주 봉인사에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개혁군주 광해군의 원찰 봉인사와 한국불교’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광해군 367주기 추모제를 시작으로 봉인사 주지 적경 스님의 인사와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의 치사, 이평래 회장의 축사, 육법공양(천선혜), 다례, 진혼무(이영빈 외 3인), 추모의 노래(봉인사 합창단), 광야(현승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1부 행사가 진행된다. 제2부 학술대회에서는 △광해군의 불교관과 봉인사의 창건(김경집) △봉인사의 한국불교에서의 위치(고영섭) △광해군대 불교와 성릉(成陵)의 원찰(願刹) 봉인사(황인규) △봉인사의 고승 부휴선사의 사상과 그의 법통관(김방룡) 등 논문이 발표된다. 이재형 기
한때 1만 2천여 명의 스님들이 공부했던 나란다 대학. 이슬람 침략 후 이곳은 폐허로 변했다. 2600여년 전 붓다의 깨달음으로 시작된 불교는 오래지 않아 인도 전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이후 불교는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몽골 등 수많은 나라들로 전해졌고 오늘날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붓다의 고향 인도에서는 불교가 13세기 이후 자취를 감춰버렸다. 18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힌두교와 쌍벽을 이루며 인도의 문화와 사상을 이끌어왔던 거대한 종교가 짧은 시기에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동안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이슬람의 침략으로 거대한 사원
고려의 4대 신필로 일컬어지는 탄연 스님이 직접 글을 쓴 ‘진락공 중수 청평산 문수원기(眞樂公重修 淸平山 文殊院記碑)’가 최근 복원된 가운데 7월 25일 오후 2시 청평사서 제막식이 열린다. 청평사 문수원기는 973년 창건된 청평사의 역사와 이곳에서 은거하며 수행했던 한국불교사의 대표적인 거사인 이자현(1061~1125년)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고려 인종 8년인 1130년에 세워졌다. 이 비는 탄연 스님이 썼다는 기록이 있는 유일한 글일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사상사, 불교사,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였다. 그러나 이 비는 오랜 세월 풍화로 훼손돼 오다가 결정적으로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사라지고 받침돌만 남았다가 지난 1968년 절터에서 비편이 발견됐다. 그러나 세간의 무관심 속에 간혹 복원에 대한
異體字 난제 해결…훼손 문서들 복원도 가능“돈황학 새 전기” 기대…학진도 15억원 지원 19세기말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6만8000여 점의 고문서. 난해한 한자로 인해 해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학계가 고려대장경을 가지고 본격적인 돈황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돈황 사본 90%가 불교와 관련될뿐더러 고려대장경과 일대일 대응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전산화된 방대한 양의 고려대장경을 활용할 경우 이들 돈황 문서의 난제를 푸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오윤희)는 최근 고려대장경과 돈황 문헌을 비교 연구하는 시스템 구축작업에 착수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도 이번 프로젝트에 향후 3년간 15억원을 지원하기로 지난 7월초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가 최근 선정한 2008년 우수학술도서에 불교 관련 학술서가 8종이 포함됐다. 문화관광부가 7월 17일 총류, 철학, 종교, 사회과학, 순수과학, 기술과학, 예술, 언어, 문학, 역사 등 10개 분야 405종을 2008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했다. 이번 선정 결과에 따르면 불교관련 학술서는 △뇌허의 불교사상 연구(제선/민족사) △민족불교의 이상과 현실(김광식/도피안사) △북종선(혜원/운주사) △신라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연구(서영애/민족사) △신라 토착신앙과 불교의 융합사상사 연구(김재경/민족사) △한국사경 연구(장충식/동국대학교출판부) △한국현대작가와 불교(민족문학작가회의/예옥) △신라하대 선종사상사 연구(김두진/일조각) 등 모두 8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의 4대 신필로 일컬어지는 탄연 스님이 직접 글을 쓴 ‘진락공 중수 청평산 문수원기(眞樂公重修 淸平山 文殊院記碑)’가 최근 복원된 가운데 7월 25일 오후 2시 춘천 청평사서 제막식이 열린다. 청평사 문수원기는 973년 창건된 청평사의 역사와 이곳에서 은거하며 수행했던 한국불교사의 대표적인 거사인 이자현(1061∼1125년)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고려 인종 8년인 1130년에 세워졌다. 이 비는 탄연 스님이 썼다는 기록이 있는 유일한 글일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사상사, 불교사, 서예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였다. 그러나 비는 오랜 세월 풍화로 훼손돼 왔고 결정적으로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청평사가 전소되면서 비도 파괴돼 사라졌고 받침돌만 남았다가 지난 1968년 절터에서 비편이 발견됐다. 그러나 세간의
민족사 윤창화 대표가 지난 7월 7월 월요포럼에서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 해석은 도교적 관점일 뿐 아니라 화두참구 상태가 실제 오매일여가 돼야 한다는 주장 자체도 분별망상이다”라고 주장한데 이어 성철선사상연구원 원충 스님은 본지(957호 19면)를 통해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는 수행점검의 기준으로 윤 대표는 몽산어록 등 기본적인 자료해석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윤 대표는 다시 원충 스님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지난주 반론에서 원충 스님은 “『몽산법어』, 『나옹어록』, 『태고어록』의 오매일여 표현은 화두를 참구해서 얻은 견처(見處)를 ‘형이상’으로 표현한 것이다.…이러한 조사스님들의 오매일여 견처관을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된다는 것은 불조의 수행관과 진리
법화천태학연구회(회장 리영자)는 7월 19일 오전 10시부터 동국대 문화관 2층 제3세미나실에서 제3차 법화학천태학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종파로서의 선종과 종지로서의 선종’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발표회에서는 △한국유교가 일본 불교에 미친 영향(김승일 국민대 연구교수) △천태의 무작도품(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 △십계호구의 물리학적 해석(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천태의 십이인연론(지창규 동국대 교수) 등 논문이 발표된다. 이어 오후 1시부터는 리영자 회장이 ‘다시 보는 선종사’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며, 대승사 주지이자 조계종 종회의원인 학담 스님이 ‘종파로서의 선종과 종지로서의 선종’이라는 주제로 초청강연을 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나한상이 처음 공개됐다. 동국대 박물관(관장 정우택)은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박물관 제2전시실서 열고 있는 ‘남양주 흥국사 십육나한상(十六羅漢象) 특별공개전’을 통해 일반인이 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흥국사 십육나한상은 나무로 만들어 채색했으며, 크기는 45~47cm 정도 크기의 작품이다. 제 1존자부터 16존자까지 모두 형상이 온전하며 제석천(帝釋天) 1구, 사자(使者) 2구, 그리고 신장(神將) 1구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이 십육나한상은 이제껏 막연히 조선조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져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었는데 최근 동국대학교 박물관의 조사를 통하여 1650년과 1892년, 2차례에 걸쳐 수리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물관 측은 “이 십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