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청송교도소에 사형집행시설을 설치하려 하고 있다. ‘김길태 사건’으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진 틈을 탄 반인권적 정책이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사형집행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우리나라는 13년 동안 단 한 건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이다. 사형제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일관성이 없다. 사회적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져왔다. 유영철 사건, 강호순 사건 같은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흉악범들은 무조건 다 사형시켜야 한다”며 분노가 커지곤 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김길태 사건으로 사형집행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런 흉악범죄가 발생하는 것과 사형제 부활은 다른 문제이다. 15·16·17대 국회에서 사형폐지법안이 잇달아 제출됐고,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며칠 후면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버리고 출가하신 날이다. 자신을 후계자로 하늘같이 믿고 있던 정반왕과 백성의 뜻을 저버리고, 사랑하던 야소다라 공주와 라훌라까지 이별하면서 시종만 데리고 왕사성을 나오신 것이다. 전날의 파티 자리는 아수라장과도 같았으며, 춤추고 노래하던 무희들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날따라 왕사성의 개들도 짖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으며, 정적이 감도는 날이었다. 고다마 싯달타의 출가를 눈치체고 있었던 부왕은 어떻게 하든지 말려 보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허사였다. 태자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수행자의 옷을 얻어 입고 명상에 잠겼다. 출가하는데 본사나 은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계산림을 한 것도 아니었다. 참으로 위대한 출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시작되었다. 단
여름 안거 한 철을 꼼짝도 안 하고 참선에 정진한 절구통 수좌 효봉 스님의 전직은 판사였다. 1923년 평양복심법원 판사직을 수행하던 그는 10여년의 판사 생애 중 처음으로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해야만 했다. 만감이 밀려왔다. ‘인간을 죽이라는 판결을 할 수 있다니! 내가 무슨 권리로 타인의 생명을 끊으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식음을 전폐하며 고뇌의 몸부림을 쳤던 스님은 급기야 사표 한 장 던지고 미련 없이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엿판 하나 들고 고행길에 올랐다. 엿장수로 나선 것이다. 유럽연합이 2015년을 ‘지구촌 사형제 폐지 원년’으로 삼겠다는 선언이 나온 그 이튿날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한 ‘합헌’결정을 내렸다. UN이 인정한 197개국 중 139개 국가가 사형제를 실질적으로
나이 많으신 노스님 두 분이 열반에 드셨다고 하자. 한 노스님은 입고 있던 누더기 승복과 고무신 한 켤레, 발우 한 벌과 나무 지팡이가 유품의 전부였다. 그런데 또 다른 한 노스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수억 원이 입금되어 있는 예금통장과 개인 명의로 되어있는 부동산 등기서류 등이 적지 않은 현금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떤 노스님이 스님답게 한 평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노스님들이 열반에 드는 모습을 지켜보아왔고, 그 가운데는 헌 누더기 한 벌과, 헌 고무신 한 켤레와 나무 지팡이 하나에 발우 한 벌이 유산의 정부였던 청빈한 노스님의 열반 모습이 우리들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고, 말없는 큰 가르침을 전해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지난 해 12월 22일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는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 아이티는 버림받은 나라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고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아이티 지진의 비극을 몇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엄청난 사망자의 규모이다. 20세기 이후 20만 명 이상의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지진으로는 오직 1976년 중국 당산지진과 2004년 수마트라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들을 들 수 있다. 지진학에 “지진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건물들이 죽인다”라는 격언이 있다. 아이티 지진의 대규모 인명피해는 건조물에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耐震設計)가 되어있지 않은 것에서 비롯한다
지난해 말 1년 가까이 끌어오던 용산참사 보상협상이 타결되었다. 그리고 올해 초 용산참사 희생자의 장례식도 무사히 치러졌다. 종교계는 협상이 타결된 뒤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경제적 이익 이전에 약자들의 생존권을 우선 보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도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종교계의 희망도, 정부의 약속도 실현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재개발로 얻어질 경제적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서울시 1년 예산은 21조원이다. 자치구 예산까지 합치면 약 30조원이다. 서울시 1년 예산은 재개발의 경제적 이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밖에 되지 않는다. 한 도시계획학자의 연구결과를 보면 서울시의 개발밀도를 10%만 올려도 부동산 가치는 250조원가량 상승한다고 한다. 바로
중국 당나라의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스님은 어릴 때 장난을 치다가 왼쪽 발가락 하나를 잃었다. 그는 출가하여 도를 깨닫기 전에는 부모를 만나지 않겠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이를 보고 울던 어머니는 눈이 멀고 말았다. 눈 먼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스님들의 출입이 많았던 초제사(招提寺) 앞에서 지나가는 스님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들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양개스님은 어머니 앞에서 오른발을 씻게 하고, 왼발은 상처가 있다고 하여 씻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던 차에 마을 사람들이 방금 그 스님이 당신의 아들인 양개스님이라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강을 건너는 양개스님의 뒤를 따라가다가 물에 빠져 죽으면서 해탈의 시 한수를 남겼다고 한다. 이
시주(施主)가 대중 스님에게 보시한 돈이나 물건을 상주물(常住物)이라 한다. 불교에서는 이 상주물을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첫 번째가 절이나, 창고, 집, 숲, 밭, 정원 등 지금으로 말하면 ‘부동산’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같은 물건(體)은 있는 곳에 두고 사용해야지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더 상세하게 말하면 ‘수용(受用)은 할지언정 나누거나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파계사 영산율원 율주 철우 스님이 이 상주물에 대해 언급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철우 스님은 ‘상주물을 훔치거나 손해나게 하면, 훔친 죄가 성립되고, 쌀 한 톨, 실 하나라도 모두 깨끗한 마음으로 온 것이기에, 청정하지 않은 마음으로 가지면 그 죄가 더 중한 것’이라 했다. 물론 훔친 것과 손해나게 한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겠
경인년이 밝았다. 새해에 덕담을 해보고 싶다. 지난 연말에 한국전력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미국.프랑스 등을 제치고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원자력발전소 수주에 성공한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새로운 획을 그을 쾌거다. 1400MW급 원전 4기의 설계에서 운영지원을 포함한 이 초대형 프로젝트의 규모는 400억 달러(47조 400억원)로 내년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6에 해당하며 쏘나타 200만대를 수출한 효과와 같다고 한다. 이번 수주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5번 째 원전 수출국이 되었다. 외신은 한전의 원전수주를 “놀라운 선택”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로이터통신은 “UAE의 선택은 정치적 측면보다 경제적 요인에서 결정된 것이며 한국은 원전의 안정성과 가격면
미국에서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사람은 바로 저 유명한 링컨 대통령이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뒤, 대통령 집무실로 한 여류작가를 초대했다. 그 여류작가는 『엉클 톰슨 캐빈-톰 아저씨 오두막』이라는 소설을 쓴 분이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다. 이름은 스토우 부인. 스토우 부인이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서자 링컨 대통령이 정중히 맞아들여 의자로 안내했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은 스토우 부인의 작은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이 작은 손으로 위대한 작품을 쓰셨군요….” 링컨 대통령은 스토우 부인의 손을 감싸 쥐고 오랫동안 감동에 젖었다. 링컨은 변호사 시절, 스토우 부인이 쓴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감명 깊게 읽고 흑인 노예의 비참한 생활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억
12월 4일자 CNN 홈페이지에 “에베레스트에서 네팔 각료회의가 열리다”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기사는 빙하로 덮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해발 5242m의 고지에서 열린 각료회의의 인상적인 사진을 제공하였다. 24명의 각료들은 방한복을 입고 “히말라야를 구하자”라는 푸른 현장(懸章)을 두르고 산소마스크를 착용했으며 강풍 때문에 육성이 잘 들리지 않아 회의는 마이크를 사용하여 진행되었다. 마다브 쿠마르 네팔 수상은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를 앞둔 시점에서 이 각료회의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히말라야가 전지구환경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함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지구온난화로 히말
며칠 있으면 음력 시월 보름, 동안거 결제다. 하안거를 마친 후 만행을 떠났던 납자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좌복 위에 앉아 일대사를 치러야 할 것이다. 겨울 석 달 동안의 안거는 이제 선사들만의 일이 아니다. 재가불자들의 수행 열기도 승가에 못지않게 뜨겁다. 그래서 일까? 각 사찰이 내놓는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참선은 물론, 염불이나 기도 등에 대한 수행방식도 세분화되며 점점 다행해 지고 있다. 조금씩 수행 체계가 잡혀가는 듯하다. 그런데 ‘방식’이 많다 보니 ‘말’도 많다. 수행하기도 전에 방식을 놓고 ‘이게 옳다 저게 옳다’하는 식의 단견이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도 보인다. ‘염불’ 하나만 보아도 어떤 이는 ‘하루 10만 염송’이 좋다 하고, 어떤 이는 ‘횟수에 연연하면 진정한 수행이 될 수 없다’고
무슨 일이든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끝이 좋아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도 포교에 나선 제자들에게 “시작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하라”고 당부하셨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거창하게 했으나 갈수록 지지부진, 나중에는 흐지부지하다가 결국에는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조직의 권자에 오르는 사람도 그 권자에 새로 취임할 적엔 거창하고 아름답게 첫 발을 내딛지만 자칫하면 나중에는 그 권자에서 내쫓기기도 하고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온갖 추잡한 몰골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비참한 퇴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투가 있지만 거창하고 화려한 취임식을 가졌던 수많은 감투들이 더럽고 추악한 모습으로 내쫓기고 굴러 떨어지고 자명하는 모습을 우리는 수없이
미국에서 출간된 인기 있는 지구과학 텍스트의 하나가 “푸른 행성(The Blue Planet)”이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회색의 삭막한 달 표면위에 푸른빛깔의 행성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지구가 왜 푸른색을 띨까? 그 이유는 하늘이 푸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 태양에서 오는 빛이 대기권의 기체 분자들과 충돌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분자들의 크기가 작아 짧은 파장의 푸른빛으로 더 많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푸른 행성 지구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미래의 역사가들이 20세기 과학문명의 가장 위대한 성취의 하나로 지구를 전체적(holistic)으로 보는 과학적 견해를 꼽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지구에서 진행되는
참으로 묘한 판결이 나왔다. 7월국회에서 강행 처리된 언론관련법이 절차상 위법은 있으나 이들 법률의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법과 권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한 야당 정치인의 비유를 빌면 “위조지폐인 건 분명한데 화폐로서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고, 입시부정은 있었지만 합격무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고난도 정치방정식의 결과 절차적 정당성 없이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실질적 정당성을 갖게 된 셈이다. 더불어 헌재가 위법을 인정했으므로 원천무효라는 주장과 효력을 인정했으므로 법을 충실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의 충돌로 새로운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헌재는 신문법과 방송법 처리과정에서 의원들의 권한침해를 인정했다. 신문법 표결시 “권한이 없는 사람에 의한
얼마 전에는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 요꼬하마(橫浜)의 입정교성회(立正成會)에서 열린 제12회 한중일불교우호교류회의(韓中日佛敎友好交流會議)가 개최 되었다. 흔히들 이 삼국의 교류를 불교의 황금유대(佛敎の絆)라고 한다. 앞으로 한중일 불교계가 연대하여 이루어야 할 사회적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며,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에 앞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음을 느꼈다. 삼국이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불교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중국불교에 대해서는 피상적이나마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사용하는 강원의 교재나 어록 등은 대부분 중국 선지식들의 저술이다. 그렇다보니 중국불교의 역사와 고승들에 대한 이해 및 가르침은 설법의 대상으로 많이 인용하고 있다
며칠 전 한 방송 프로그램의 토크 쇼 ‘강심장’에 배우 이의정 씨가 출연했다. 20여 명의 출연진 중 유독 이의정씨에 눈길이 머문 것은 아무래도 불자 연예인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뇌종양’을 이겨 낸 그는 지난해 ‘미얀마 문화원’ 홍보대사로 위촉되며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다. 미얀마문화원 공식 개원 이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그는 이 문화원의 명예홍보대사를 맡으며 2006년 미얀마 현지에서 ‘바자회’도 열은 바 있을 정도로 불심 돈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토크쇼까지 출연한 것을 보니 완쾌된 것 같아 반가웠다. 그는 ‘강심장’에서 ‘뇌종양’ 투병 일화에 얽힌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는데 미쳐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가 웃으며 던진 짧은 이야기였지만 그 속엔 남모를 고통이
서양 종교인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적을 올리고 다니던 성당이나 교회만을 열심히 다니며, 멀리 이사를 가더라도 한사코 다니던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만 예배를 보는 경향이 많다. 심지어 다른 도시, 다른 고장으로 천리나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기어이 같은 교회, 같은 교단의 성당과 교회만을 찾아서 다니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불교를 믿는 언필칭 ‘2천만 불자’들은 이런 ‘말뚝 신심’이나 ‘붙박이 신심’이 아니라, 이 절에도 가고 저 절에도 가고, 팔도강산 어디를 가든 이 종파, 저 종단 간판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을 모신 절에는 스스럼없이 들어가서 예불도 드리고 불전도 놓고 기도도 드린다. 그래서 불교신도들은 ‘전국구’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똑같은 부처님을 모신 절인
최근들어 우리나라에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의 출입이 잦아지고 있다. 이들은 대중강연을 포함한 학술 활동을 통하여 IMF이후로 인기가 급격히 떨어진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진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9월 초에 방한한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 교토 산업대의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교수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귀중한 조언을 하고 떠났다. 한국물리학회 주최의 만찬에서 한 물리학자가 노벨상을 받는 것이 모든 과학하는 사람들의 꿈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정색을 하고 이를 부인했다. 그는 연구를 하다 보니 노벨상을 받은 것이지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 연구를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주최한 만찬에서 한 화학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분야의 전망을 물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을 따
추석을 맞아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오랫동안 중단됐던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다.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금강산에서 이뤄지는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은 아주 감동적인 추석선물이 될 것이다. 우리 측 방문가족은 평양으로 가고 북한 측 방문가족은 서울로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금강산에서라도 만나니 얼마나 좋은가. 이산가족이 처음 만난 건 1985년 추석이었다. 1984년에 북한이 수해물자를 지원한 것을 계기로 남북회담이 재개되었고, 마침내 분단 이후 처음으로 1985년 추석 때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이뤄졌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 ‘00야!’ 35년 동안 불러보고 싶던 외침들이 터져 나온 9월 22일의 서울과 평양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만나자마자 주체하지 못하고 흐르는 기쁨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