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정 배 동국대 명예교수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성도하셨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 깨침이란 우주의 본원적 진리를 하나 남김없이 환하게 밝히신 것이다. 참으로 광명 그 자체를 우리 앞에 나투시어 누가 언제 어디서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환한 밝음이요, 여여히 드러내신 우주 본연 그것인 것이다. 시간이 지났거나 공간이 바뀌더라도 그 깨침은 항상 원융하게 나를 앞세우지 아니하고 모든 남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시는 자애심을 품고 계신 거룩한 미소이시다. 왜 이러한 경지에 이르시게 된 것일까. 그것은 다름없는 연기의 이법을 확철명연하게 깨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십이연기법을 깨친 부처님은 이 십이연기법이 참으로 진리인가를 증명하시기 위하여 오랫동안 명상에 잠기시어 순관과 역관으로 명정하셨다
오 진 모 대한부동산학회 회장 바쁘고 힘든 사회생할을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 안식을 주는 생명의 샘이 바로 선(禪)이다. 필자가 21년 전 국토연구원에 국불회(國佛會)를 조직하고 초대회장을 맡아, 점심시간을 이용해 방에서 도반(道伴)들과 좌선을 시작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전국불교신도회 중앙이사, 군불교진흥회 중앙이사, 정목회 회장, 사찰 탐방 등 불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데서 비롯됐다. 특히 국토연구원 국불회를 통해 월 1회 정기법회를 갖고 지관, 무진장, 암도, 법산 스님을 비롯해 채인환, 이기영, 정병조 교수 등의 설법을 들으며 불심이란 곧 선과 염불 등 수행발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루하게 반복되는 직장생활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줄 원동력이
박 건 주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주지하다시피 한국불교의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과 태고종은 모두 선종을 계승한 종파다. 즉 선종이 현금의 한국 불교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래 조계종에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은 간화선에 있다는 전제아래 정체성 확립과 간화선 현창운동을 펼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사업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것일 뿐 아니라 필요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불교의 정체성이란 것을 세울 필요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국불교의 역사는 본래 인도불교의 대소승과 중국불교의 전부를 수용하며 발전해왔다. 시기적으로 어느 종파가 우세한 바는 있었지만 대체로 보아 여러 불법이 다양하게 펼쳐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불교란 다양하게 펼쳐
지 안 스님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오늘날 세태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자본주의에 의한 물질 만능과 상업주의에 편승한 상품화 우선주의다.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하지 않고는 우선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상품가치의 우열로 승패가 갈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비단 물질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전승해 내려온 문화적 가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숨어 있는 전통이 있어도 사람에게 유용한 실용적 이용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대중에 외면 받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물론 이러한 시대 풍조에 따라 때로는 종교계 일각에서도 허장성세의 전시효과를 노리는 외형적 치장에 열중하는 사례가 많다. 필요 이상으로 교회나 사찰 건물이 대형화되고 있으며 신도 수를 통해 세를
목 정 배 동국대 명예교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소담스런 것은 무엇인가. 칠보보물을 가지는 것이 귀하고 소담한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재물인 보석 갖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러한 것이 보물이라 하더라도 그보다 더 귀중하고 값어치가 몇 십만배 더 나가는 보배가 있으니 그것은 발보리심이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발보리심의 믿음은 유행의 칠보구슬보다 신비하기 그지없다. 저 험한 길 봉정암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에 친견예참하려 가는 불자님의 행열을 보라. 염천 한 여름 땀에 목욕을 한 듯 그 뜨거운 날에도 쉬지 않고 앞다투어 오르는 깔딱고개의 숨막힘, 발걸음도 되지 않는 그 고통 속에서도 한걸음 두걸음 옮기는 고행의 순례. 장엄함과 엄숙함이 자신의 의지력과 싸우며 오르
오 진 모 대한부동산학회 회장 참여정부가 20여 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발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시장의 내성만 키워 결과적으로 집값만 올려놓고 말았다. 2003년 10월 29일 강도 높은 대책에 이어 정부도 이제는 웬만한 고강도 대책으로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난 8월 31일 초강도 대책을 공표했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은 그간 추진해온 수요억제나 공급확대라는 부동산 정책의 종합대책이라 할 수 있다. 그 내면에는 우선 수요억제 대책으로 대형주택에 대한 중과세, 재산세(종합토지세) 현실화, 부동산 실거래가 정착, 토지·건물 합산 과세를 기조로 하고 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는 개인별로 합산해 부과하던 것을 세대별로 합산 과세하고, 대상도 주
박 건 주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우리는 얼마 전에 충격적인 뉴스를 들은 바 있다. 지난 1년 동안에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학생이 400여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특히 종교인에게 이 사실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종교란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가르침인 까닭이다. ‘종교’에서 ‘종(宗)’은 ‘근본’, ‘근원’의 뜻이고, 근본문제는 곧 생사문제이다. 불교도 생사윤회를 벗어난 영원의 해탈을 설하고, 기독교도 영생을 설한다. 생명의 영원성을 회복하는 길을 가르치는 종교의 정신에서 보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은 생명의 영원성에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반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 행위는 근본에 저촉하는 것이라 그 죄악성이 아주 크다. 또한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 있는 목숨이
지 안 스님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종단 안팎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제32대 총무원장 선거가 끝났다. 학덕 높으신 훌륭한 스님의 당선에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종단과 불교의 위상을 제고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마음이다. 우리 불교계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 가운데 종단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분파주의로 인한 승가 본연의 정신인 화합정신의 결핍이다. 이는 비록 불교계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 곧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고질적 병폐가 되어 있는 것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중대한 시대적 사안이다. 현대 사회를 두고 혹자들이 ‘불신의 시대’니 ‘불화의 시대’니 하고 평하는 말들이 이미 세계적으로 유행되고 있다. 하지만 화합 상생하는 공존의 틀을 무너뜨리는 분파주의의 대결이 특정 지역 사회나 단체 안
목 정 배 동국대 명예교수 모든 사람들은 눈만 뜨면 일을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노동을 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 안쪽에서 생각하면 의식의 작용을 한다는 의미이다. 일은 바로 업이다. 업은 생각의 촉각으로 밖으로 들어내는 것이다. 그 생각의 촉각은 밖으로 향해 작용하면서 자기 쪽은 가능한 다치지 않고 외형세계를 살피고 나간다. 밖으로 나아가다 조금만 자기 촉각에 손상이 있으면 안으로 움츠리고 만다. 이러한 일상의 일들은 언제나 자기 쪽으로 편향하는 성격이 짙은 자아중심인 것이다. 우리들 주변에도 자아중심에 도취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상대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이 없다. 설혹 관심을 둔다 해도 상대를 비하하거나 멸시 모멸하는 대상으로 생각할 뿐 상대를 이해하거나 존대할 의향은 전혀 없는 것이다.
오 진 모 대한부동산학회 회장 춘하추동 계절의 순환과 반복이 인생무상이라는 허무함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삶의 변화와 더불어 그 느낌이 새삼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계절은 사람에 따라서도 제각기 다른 색깔과 맛을 가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교에서는 춘하추동의 산색을 세월속에 변하는 우리네 머리색에 비유하기도 한다. 봄의 빛깔은 어린아이 머리처럼 부드럽고, 여름은 청년의 머리처럼 숱과 색깔이 짙으며, 가을의 붉은 빛은 장년의 정열에 비유될만하며, 겨울은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은 잎(번뇌)이 떨어지고 열매(보리)를 거두는 때로 생각해 보자면, 허망한 인생의 낙조를 떠올리기보다 본질적 회귀의 가르침으로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가을은 바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름다운 단
박 건 주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은 대표적인 다종교사회이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이교도와 매일 부딪히면서 어울려 지낸다. 한국에서는 아직 종교 간의 큰 충돌은 없었던 셈이지만 여러 부정적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종종 일어나고 있다. 과거와 오늘 날의 종교분쟁들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 또한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도보다 더 많은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자신의 종교생활을 편안하게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지혜와 실천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종교이든 그 근본 교의에 의하면 본래 관용과 화해, 여유, 부드러움 등의 원만한 덕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고등종교는 생사를 넘어 영원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목표를 지닌다.
지안스님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부처님이 성도한 직후 “나는 모든 것에서 이긴 자”라고 선언한 말이『아함경』에 나온다. 일체승자(一切勝者)라고 한역된 이 말에서 어째서 부처님이 자신을 모든 것에서 이긴 승리자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면, 어떤 세속적 경계에 끌려가지 않고 오로지 일로 수도에만 종사하여 도를 장애하는 모든 경계를 물리쳤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무상정각자가 된 기쁨을 토로한 말인 것이다. 세속적 환경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이란 부귀영화나 입신양명을 추구하여 그것을 누리게 될 때 성공한 인생이 된다. 높은 벼슬을 하고 세도를 부리며 과다한 재물을 소유, 부의 축적으로서 남과의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면서 스스로가 자족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