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제3권 (세주묘엄품 3)에서는 중계의 8부중(8부4왕중)과 하계의 호법선신 가운데 5류중의 해탈경계가 설해져 있습니다. 8부중은 건달바왕(乾達婆王)·구반다왕(鳩槃茶王)·제대용왕[諸大龍王]·야차왕(夜叉王)·마후라가왕(摩喉羅伽王)·긴나라왕(緊那羅王)·가루라왕(迦樓羅王)·아수라왕(阿修羅王)이고, 주주신(主晝神)·주야신(主夜神)·주방신(主方神)·주공신(主空神)·주풍신(主風神)의 5류는 호법선신입니다. 변상도에서는 이들 각 부류의 대표가 게찬하였음을 네모 속에 밝혀두고 있습니다.8부중에서 처음의 건달바왕은 동방 지국
예나 지금이나 상대에게 원한을 갖게 되면 앙갚음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상대의 불행을 기원하는 저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보통 욕설을 통해 저주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의미를 모르고 하는 욕 가운데 ‘육실 할’ 혹은 ‘급살 맞을 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저주는 그 역사가 오래 되었다. 불교 경전에서도 이러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숫따니빠따’ 제5장 ‘피안도품’의 서게(序偈, Vatthugātha)가 이에 해당한다. 이 서게는 16명의 바라문이 붓다를 찾아뵙고 문답을 하게
‘금강경’에는 거의 40군데에 이르는 곳에 반복되는 유형의 문장이 하나 있다. 제5분에도 유사형태가 등장하지만, 범어 원문을 기준으로 볼 때 온전한 형태를 갖춘 것은 제8 의법출생분에서 시작되니, “여래에 의해 복덕무더기라 언급된 그것은 여래에 의해 복덕무더기가 아니라 언급된 까닭에 여래께서 복덕무더기라 이름하고 계신다”는 것이 그것이다. 언급된 ‘복덕무더기’를 A로 대체하면 간략하게 “A는 A가 아니기 때문에 A라 한다”라는 다소 의아한 문장구조이다.‘A’로 언급된 내용은 제5분의 신상[身相, 모습 갖춰짐] 혹은 제8분의 복덕취[
근본적 수용이란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친절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든 몸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통제·판단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의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근본적 수용의 첫 번째 날개는 마음챙김이다. 순간순간의 경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조절하려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으면서 이 모든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주의는 모든 조건에서 자유롭게 열려있는 상태이다. 명확히 볼 수 없다면 경험을 진실하게 수용할 수 없다. 일어났다 사
20장은 “저절로 생각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이고, 현재 생각나지 않은 마음은 ‘음마(陰魔)’이며, 혹은 생각나거나 생각나지 않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정법(正法)중에는 본래 이와 같은 일이 없다”이다.‘경덕전등록’에서 지관(止觀)을 강설하는 어떤 스님이 대주혜해(大珠慧海, 9세기)에게 ‘선사께서는 마를 가려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위와 같이 답했다. ‘천마’는 ‘루탄경’에서 “‘욕계’와 ‘색계’의 중간에 ‘마궁’이 있는데 ‘성인의 길’을 가는 사람을 질투해서 돌을 갈 듯이 공덕을 무너뜨리게 한다”고 한
황제가 국사에게 물었다. “백년 후에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노승에게 무봉탑을 만들어 주십시오.” “탑의 본형을 말씀해 주시오.” 국사가 양구(良久)하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노승의 법제자인 탐원이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이것을 기억해두셨다가 불러서 하문해보시기 바랍니다.”황제는 당 제8대 대종황제이고, 국사는 혜충국사(?~775)이며, 탐원은 탐원응진이다. 백년 후는 입적한 이후를 말하고, 양구(良久)는 대화 도중에 갑자기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대화의 한 가지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조금이나마 가라앉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종교단체에 의한 갑작스런 폭증을 제외하고는 선진국민의식과 적절한 정부대응으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잘 이겨내고 있다. 또 불교에서도 산문을 폐쇄하고 중요 일정 등을 취소하며 이번 사태에 동참하여 훌륭하게 국난을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곳곳으로 확산되는 중이기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각자의 위생관리를 지금만큼 해내야 한다.그리고 우리는 두 달 가까운 시간동안 국가와 전 국민이 코로나19와 싸웠고 앞으로
부처님께서 팔만사천의 법문을 말씀하셨지만 출가자라면 누구나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제하신 것은 없다. 그런데 유독 율장만은 모든 비구들에게 반드시 익히고 실행하라고 하셨다. 법랍 5년이 지나도 계율에 대해 소홀하거나 갈마법을 모르는 이에게는 승단의 중요한 일은 물론 사소한 직무도 맡기지 말고 평생 동안 스승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정하셨다.사분율장은 바라제목차 해설, 건도, 집법(集法), 조부(調部), 비니증일(毘尼增一)로 구성되어 있다. 바라제목차 해설에는 비구계와 비구니계가 만들어지게 된 사건과 배경, 죄가 되는 범계조건, 동일
세상의 불평등함은 존재의 시작과 함께 해 왔습니다. 모든 생명들이 다르게 태어났기에, 불평등이 평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의 근원인 자연은 만물에 평등합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각자 근기에 맞게 가져갈 뿐입니다.그러나 사람들의 평등과 불평등의 기준은 모호합니다. 의식주를 비롯해 부(富)와 명예, 권력 등 모든 것이 각자의 욕망에 따라 ‘평등’과 ‘불평등’의 이름이 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등과 불평등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복잡합니다. 불평등에는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최초의 평등이 이루어
1963년부터 1977년 사이에 ‘불교신문’에 실렸던 법정 스님의 글 68편을 수록한 책 ‘낡은 옷을 벗어라’가 지난해 출간되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결같이 ‘주옥같다’는 표현만으로는 그 느낌을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을 주고 있다. 그 중 몇 편, ‘침묵은 범죄다’ ‘부처님, 이 제자의 목소리를’과 ‘이 혼탁과 부끄러움을…’은 내가 십수 년 전 발굴해서 다른 매체에 게재한 적이 있는데 “법정 스님이 이렇게 날카로운 비판의 글을 쓰셨다고요?” 하면서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맑고 향기로운’ 스님의 글에만 익숙한 독자에게는
어쩌면 저렇게 곱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캠퍼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오색연등 행렬이 만들어낸 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시각 동악은 형형색색 연등들이 마치 야단법석이라도 벌이고 있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시끌벅적한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가끔 적막을 깨고 지나가는 조용한 바람소리 외에는 불현듯 신심이 솟구쳐 오른다.두 학기 째 불교한문아카데미 소속 기본과정 수강생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인스님들 틈에서 말 그대로 초발심자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다만 의욕은 있지만 예습과 복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가르치는 선생님들께는 항상 죄송
부산에 계신 어느 노보살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그때 들었던 기억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라 오늘 소개해볼까 한다.노보살님에게 고모가 있었다. 고모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화여전(이화여대의 전신)을 나온 신여성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집 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경주에 시집을 갔다. 당시 시댁은 경주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큰 부잣집이었다고 한다.집이 크고 부유하다보니 일제강점기 때에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공출을 하러 집으로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하루는 관청에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와서 공출을 한답시고 집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청학은 명금, 백학은 분단, 오른쪽 꽃 속에는 복혜, 왼쪽 꽃 속에는 금례. 1795년, 정조가 지금의 수원인 화성으로 행차하였을 때 봉수당에서 열린 의례에서 학무와 연화대무를 춘 기녀들의 이름이다. 이때의 행사를 기록한 ‘정리의궤’에 따르면 이들은 화성에 속한 관기로 학춤을 춘 명금이 32세, 분단이 29세였다. 연화대무를 춘 복혜와 금례는 각각 15세와 16세로 어린 동기였다.이들이 춘 춤은 원래 학무와 연화대무라는 독립된 춤이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궁중정재 학연화대합설무(鶴蓮花臺合設舞)이
그는 어린 시절 강한 종교체험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출가를 감행하였으며 선의 길로 들어서서 치열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열었다. 절의 큰방이며 논두렁길에 걸터앉아 농부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부처님 가르침을 나누며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사람은 평이한 언어로 가르침을 설하고 강렬한 선화나 유머러스한 문자 그림으로 불교를 널리 알리며 일본 임제종을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바로 하쿠인 에카쿠(白隠慧鶴)다. 하쿠인은 법호인데, 그가 나고 자란 후지(富士)산의 영봉, 그 희디흰 산에서 은거했다는 의미에서 백은
원광은 26대 진평왕 22년(600) 귀국하여 동왕 52년(630) 입적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 경전 강론과 호국법회 주관, 정치 자문과 외교문서 작성 등 세속과 출세간을 넘나드는 활약을 하였는데, 다양한 업적 가운데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른바 세속오계(世俗五戒)라는 윤리덕목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 새로운 덕목의 제시는 당시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게 평가된 사건이었다. ‘삼국사기’권45 귀산전에서 원광의 세속오계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해 주었으며, ‘삼국유사’ 원광서학조에서도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막스 레거의 ‘12개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집’ 중 세 번째 곡인 ‘봄노래(Frühlingslied)’는 봄날의 산들바람과 같은 분위기의 곡이다. 이 작품집의 다른 이름인 ‘꽃과 잎(Blätter und Blüten)’과 가장 어울리는 이 곡은,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서사시인 ‘불소행찬(佛所行讚)’의 앞부분이 연상된다. 단정한 모습의 수련과도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는 이 곡을 온화한 마야부인의 모습에 견주어 본다.‘왕은 천제석(天帝釋)같고 / 부인은 제석의 부인 사지(舍脂) 같았네. / 뜻을 잡아 지님은 땅
경주에서 신라 예술의 최고봉이던 석굴암이 조성되고 있을 무렵, 옛 백제 땅 김제 금산사에서는 진표율사에 의한 중창이 한창이었다. 면모를 일신한 사실상의 창건이나 마찬가지인 불사였다. 이때 미륵불이 율사 앞에 나타나 미륵장육상을 조성할 것을 당부하였고, 그 자리에 연못을 지정하셨다고 한다. 익산 미륵사 역시 연못에서 나타난 미륵삼존을 보고 세워진 사찰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미륵부처님은 이런 연못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그러나 실상 연못을 메워 공사를 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주문이다. 고민하던 진표율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몸이 아픈 곳
불교의 삼덕인 지비용(智悲勇)과 유비되는 것이 유교의 삼덕인 지인용(知仁勇)이다. ‘지(知)’는 ‘지(智)’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비(悲)’가 ‘인(仁)’과 상통한다고 볼 때 불교삼덕과 유교삼덕은 일치점을 갖는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덕과 인덕과 용덕을 균형적으로 갖춘 이를 군자(君子)라며,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정형화하였다. 지인용은 육군사관학교 교훈이기도 하다.군자는 ‘군주의 아들’이란 의미를 가진 유위지인(有位之人), 곧 지위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 덕치주의를 심화해가면서 지위보다는 덕이 있는 사
집은 무엇일까. 집은 우리를 보호해주고, 다음날을 살아낼 수 있도록 휴식할 자리를 만들어주는 곳이다. 집의 중요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집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집값 안정이야말로 정치의 최우선 과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기돼지의 빨간 벽돌집을 읽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서민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집은 한편으로는 단절과 고립의 초소다. 나와 남 사이는 두꺼운 철문이 가로막고, 현관문에 보조 잠금장치의 숫자가 늘어가는 만큼이나 이웃과의 소통은 사라진다. ‘치솟는 집값’과 ‘집값 떨어지게’의 공포 사이, 집은 늘 말썽
2007년 여름, 티베트력 7월 그믐 한밤중 손전등을 켜고 데뿡사원 뒷산 언덕을 오르는데 주변은 온통 유럽 사람이었다. 여행 중 정보나 준비할 장비가 궁금하면 유럽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정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여행에 있어서는 앞서가는 그들, 유목민의 후예다. 휴대용 손전등을 비추며 간신히 산길을 오르는 필자와 달리 그 친구들은 후레쉬 달린 모자를 쓰고 양손으로 스틱을 짚으니 달팽이가 원숭이를 보는 듯하였다. 산언덕이 무에 그리 힘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티베트를 안 가본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해발 300~400m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