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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용규의 숲에서 배우는 지혜
41.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계절변화를 처음 알았던 때는 언제인가요?
김용규  |  happyforest@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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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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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것이 목표인 나인데, 요새는 평일의 하루도 빈 날이 없습니다. 빼곡한 일정으로 전국을 떠돌며 강연을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도래하고 있는 가을 탓이겠지요. 사람들이 숲이 전하는 자연과 삶의 중요한 상징과 지혜들을 들어보고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을 봄과 가을로 여기고 있는 탓이겠지요. 그렇게 사색하며 공부하기에 참 좋은 계절 가을을 맞으며 뜬금없는 질문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나와 외부 구별하면 에고 싹터
성장하며 자기중심적 인식 강화
자아 벗어나면 진리 보이기 시작
그럴 때 인간 삶 훨씬 깊어져


이 시절처럼 ‘여름 끝에 가을이 온다’는 사실, 이 평범한 사실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습니까? 겨울 뒤에 봄이 오고, 여름 끝에 가을, 가을 끝에 다시 겨울이 시작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 자연의 질서를 인생에서 처음 알게 된 시점이 언제입니까? 어릴 적에 이 즈음이면 아버지와 나는 방마다 문을 떼 마당 복판의 샘 가로 가져간 뒤 오래된 창호지를 모두 뜯어내고 문틀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낸 뒤 새 창호지를 바르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문고리 근처에는 누나가 책갈피에 넣어 말려두었던 단풍잎이나 꽃잎들을 넣고 덧발라 집집마다 ‘창호문의 미학(?)’을 본능처럼 희구하던. 뒤이어 산과 집을 오가며 나무 삭정이를 지게에 져 나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아버지, 형님과 함께 톱질을 해 나무를 잘랐고 장작을 팼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런 경험을 몇 년간 반복했으면서도 나는 계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순환한다는 것을 온전히 자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통해 태양과 지구와 달의 관계를 학습한 뒤에도 나는 늦된 놈이어서인지 계절이 순환하는 놀라운 질서를 진정으로 인지하고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스스로 두터운 옷을 마련하고 추운 시간을 건너기 위해 무언가를 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 저 가을과 함께 도래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달은 것은 부모의 품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하여 알아가는 힘, 우리는 그것을 인지력이라고 부릅니다. 가만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가 엄마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지. 갓난아기는 나와 외부 세계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서부터 자아(에고·ego)의 씨앗이 싹틉니다. 에고는 자기를 지켜내려는 본능과 결합되어 더 많은 것들을 자기를 중심에 두고 인식해 가게 합니다. 자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인식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여름 끝에 가을이 오는 지극한 진리가 온전히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학교 공부를 통해 해와 지구와 달의 관계를 배우고 나면 인식의 폭은 조금 넓어집니다. 그 관계와 순환의 질서 위에서 지구 도처의 공간에 머무는 해의 길이가 각각 달라지고 그것이 지역마다의 계절을 만든다는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 계절에 따라 그곳에 사는 인간 저마다의 의식주도 달라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인지력을 확보한 성인들에게 단풍은 나무에게 무엇이고, 낙엽은 나무와 숲에게 무엇이냐 물으면 대부분이 머뭇대며 답을 하지 못합니다. 거미와 무당벌레와 그 많던 나비와 나방들은 저 가을을 어떻게 마주하겠느냐 물으면 더더욱 입술과 혀를 우물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들과 우리, 그리고 나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얼굴을 돌려버립니다. 나에게 필요한 나 중심으로 보이는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은 갓난아이보다 훨씬 커졌으나, 나 외의 세계,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나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은 아직 없는 수준의 인지력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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