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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대사의 피눈물

연산군-중종대로 이어지는 16세기 전반기는 한국불교 전체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평가된다. 조선의 권력자들은 이미 태종-세종 연간에 불교 종파를 축소하고, 고려말 사원이 보유하고 있던 인적 물적 자원의 대부분을 강제적으로 빼앗아가는 조치를 취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승려의 도성출입을 금지시키는 등의 극단적 정책을 전개해 나가면서 불교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이르게 하였다. 

조선불교의 중흥조로 평가되는 허응당 보우 스님은 1538년(중종 33) 발생한 법난을 몸소 겪어야 했다. 이 법난을 겪는 과정에서 스님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불교가 쇠퇴하기가 이 해보다 더하겠는가 / 피눈물을 뿌리며 수건을 적시네. / 구름 속에 산이 있어도 발붙일 곳 없으니 / 티끌세상 어느 곳에 이 몸을 맡기리(釋風衰薄莫斯年 血漏潛潛滿葛巾 雲裏有山何托跡 塵中無處可容身)

1538년의 법난은 전국의 유생들이 닥치는 대로 사찰을 불태우고, 만나는 스님들마다 몽둥이질을 해댔던 참으로 무자비하게 진행된 법난이었다. 보우스님은 30대의 나이에 이 법난을 당했으며, 이 시에서 표현한 것처럼 스님은 ‘피눈물을 뿌리며 수건을 적시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보우대사 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중기를 살다간 스님들의 시에서 ‘눈물(淚)’이라는 시어는 자주 등장한다. 서산대사 역시 ‘이끼로 얼룩진 불상’을 눈물로 대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한탄한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사명대사는 보우대사의 시가 실려 있는 ‘허응당집’의 끝에 발문을 남겼다. 여기에서 사명대사는 보우스님이 아니었다면 불교가 끊어질 뻔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발문의 끝에서는 후손들이 이 문집을 절대 대충대충 보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당부를 덧붙이기도 하였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보우 스님을 비롯한 숱한 스님들이 흘린 피눈물 위에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보우대사의 문집을, 그가 흘린 피눈물의 의미를 대충대충 보지 말아달라는 사명대사의 당부는 그저 허공의 메아리처럼 흩어지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현실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드디어 끝났다. 선거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치루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번 선거 역시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날이 갈수록 갈등과 혼탁상이 더해진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회의 발전을 선도해야할 종교집단, 특히 대한민국 최대의 종교집단이라 할 수 있는 조계종 선거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는 현실은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4년마다 앓는 몸살, 이제는 정말 멈추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승복입은 자들을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권력자들도 존재하지 않는 21세기 이 시점에 왜 적지 않은 이 땅의 불자들은 또다시 피눈물을 흘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총무원장 당선자 설정 스님은 당선자 소감문에서 “종도 여러분들의 발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불교다운 불교, 존경받는 불교, 신심나는 불교를 만들어야 합니다”는 뜻을 밝혔다. 무엇보다 조계종을 구성하고 있는 사부대중의 발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는 설정 스님의 말씀이 눈에 띈다. 하지만 새로운 총무원장으로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시기 이전에 지금 이 시점, 조계종 사부대중의 진정한 발원이 무엇인지 조금 더 다녀보시고 조금 더 들어보시라는 말씀을 권해드리고 싶다. 그래야만 부처님 전에서 밝힌 “우리 모두 일불제자로서 원융무애의 화합으로 새로운 한국불교를 열어 나가기를 발원합니다”는 스님의 발원이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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