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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트릭 불교 여성들은 성의 노예였을까

  • 교학
  • 입력 2017.10.26 16:47
  • 수정 2017.10.26 23:17
  • 댓글 5

‘열정적 깨달음’/ 미란다 쇼 지음‧조승미 역/ 씨아이알

수많은 문헌 연구‧인터뷰 통해
탄트릭 여성 다룬 독보적 저술

▲ 저자는 신묘한 기술과 만트라, 의례 행하기, 본존과 만다라 관상, 내부 요가라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 순수한 명상과 철학적 반성이라는 더 높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통달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말한다.
탄트릭 불교(좌도밀교)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견해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학계를 중심으로 차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승불교가 출가자와 사원 중심에서 벗어나 어디서든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듯, 탄트릭 교도들은 자기완성이 시끌벅적한 시장에서도, 사람의 시신을 불태우는 다비식에서도, 외딴 황무지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욕망, 열정, 법열은 깨달음이라는 불교적 여정에서 충분히 포용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들은 욕망에서 달아나기보다는 욕망의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욕망의 정복을 필사적으로 추구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깨달음의 진주를 얻기 위해 욕망의 바다에 뛰어든 ‘영웅’으로 유형화했다. 깨달음이 모든 활동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성적 수행과 연결되면서 남녀 합일은 탄트리즘 의식과 명상의 주요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

8세기 인도에서 시작된 탄트릭 불교는 중관, 유식, 여래장 사상을 토대로 인도의 전통을 폭넓게 받아들인 혁명적인 불교운동이었다. 열정과 희열 속에서 공성의 심오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탄트릭 불교는 대중과 왕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그뿐 아니라 날란다, 비크라마실라, 오단타푸리, 소마푸리 등 인도의 기라성 같은 승가대학의 커리큘럼에도 속속 들어갔다. 13세기 이슬람 침입으로 불교가 사라지기 전까지 탄트릭 불교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됐으며, 지금도 티베트와 네팔 등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미란다 쇼(Miranda Shaw)는 탄트릭 불교가 여성과 남성의 열정을 신성한 황홀로 변형시키는 일련의 의례화된 행위를 통해 함께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적 길임을 밝히는 데서 출발한다. 1992년 저자의 하버드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해 엮은 이 책은 탄트릭 불교 여성 성취자의 살아 있는 역사 및 탄트릭 수행, 성적 결합의 철학적 원리와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다룬 독보적인 저술로 평가받는다. 이 책의 출판과 함께 여러 학술상을 수상하고 7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 널리 소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탄트릭 불교는 엑스터시를 위한 성적 수련법쯤으로 간주돼왔다. 탄트릭 불교에서 여성들의 역할도 기껏해야 주변적이거나 종속적인 데 불과하고, 심지어 천시되거나 착취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수많은 전기 자료와 종파의 역사, 게송과 구전 등을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여성 수행자들이 어떤 수행을 했고, 어떤 성취가 있었는지를 구명했다. 뿐만 아니라 수년간 현장을 다니며 티베트불교 종파 지도자와 탄트릭 불교 수행자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탄트릭 여성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완전히 뒤집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다. 탄트릭 불교가 여성 착취의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상보성과 상호성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묘한 기술과 만트라, 의례 행하기, 본존과 만다라 관상, 내부 요가라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 순수한 명상과 철학적 반성이라는 더 높은 영역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통달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탄트라의 교설은 초기경전과 일부 대승경전에서 나타나는 남성 우월성과 지배력을 박탈하고 여성을 교리 체계 안에서 무한히 긍정하도록 했다. 또 어느 한쪽 성에게 다른 쪽을 지배하도록 허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가르침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여성과 남성간의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돔비 요기니와 돔비빠가 함께 수행해 해탈이라는 빛나는 성취를 이룬 것과 같은 다양한 여성수행자들의 사례, 탄트릭 불교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존중됐고, 종교의식에서 경배돼 왔는지에 대한 세세한 설명도 흥미롭다.

 
번역자 조승미 박사는 역자 후기에서 “세계 거의 모든 종교에서 여성의 몸을 부정적이고 한계를 가진 것으로 옭아매고 있는데,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탄트릭 불교 요기니(여성수행자)들이 몰려와서 깔깔거리며 이를 비웃고, 들고 있던 큰 칼로 그 정신적 감옥의 자물쇠를 뚝 잘라버리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만큼 이 책은 여성 독자들에게는 여성이 가진 원천적 힘과 가치를 재발견해 자신이 여성임을 긍정하도록 하고, 남성 독자들 역시 여성성의 가치를 깨달아 여성과의 관계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탄트릭 불교를 부정적으로만 보았다면 이 책은 그러한 시선을 교정시켜주기에 충분하다. 2만4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13호 / 2017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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