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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11월 대흥사에서는경주서 옥불 1000위 조성
풍랑 만나 일본으로 표류
8개월 만에 천불전 봉안
이재형 국장  |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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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6  11: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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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8일에는 해남지역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1년에 딱 한번 열린다는 미황사 괘불재 현장은 장엄했고, 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의 법문은 울림이 깊었다. 오랜만에 찾은 대흥사도 천년고찰의 위엄과 고즈넉함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도량 어디에나 절절한 신심과 사연이 배여 있겠지만 유독 천불전에 눈길이 갔다. 이곳에 봉안된 옥불과 관련된 200년 전 사건 때문이다.

1817년 11월16일은 대흥사 대중들에게 아주 뜻깊은 날이었다. 6년 전인 1811년 2월 대흥사에 큰 불이 나 12개 전각 중 9개가 모두 타버렸다. 이에 초의 스님의 은사인 완호 스님의 주도로 불사를 시작해 극락전, 용화당, 지장전 등을 차례차례 중건했다.

천불전은 대흥사 사격의 회복을 의미하는 불사였다. 완호 스님은 천불전 불사 조성에 각별한 정성을 들였다. 조각 솜씨가 좋은 영호남 장인 40여명을 선별해 옥돌로 유명한 경주에서 천불을 조성하게 했다. 11월16일은 완성된 불상을 해남 대흥사로 이운하는 날이었다. 천불은 경주 장진포에서 큰 배에 768위를, 작은 배에는 232위를 나눠 실은 뒤 출발했다.

뜻밖의 사고가 벌어진 것은 배들이 동래 앞바다를 지날 때였다. 갑작스레 풍랑을 만나자 작은 배는 해변을 따라 동래로 대피했다. 하지만 큰 배는 파도에 휩쓸려 뭍에서 자꾸만 멀어져갔다. 공들여 조성한 옥불과 스님 15명을 포함한 27명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것이다.

여러 날을 표류하던 배는 가라앉지 않고 11월28일 일본에 닿았다. 여러 절차를 거쳐 한 달 뒤에는 나가사키(長崎) 조선관으로 인계됐다. 배에 탔던 스님들은 일본인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부처님의 나라 조선’에서 왔다며 서로 다투어 음식을 대접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지난 1990년대 중반 공개된 ‘조선표객도’는 에도시대의 유명한 화가 우키다 잇케이가 당시 나가사키에서 조선의 스님과 뱃사람을 만나 그린 그림이다.

일본인들은 옥불을 일본에 모시려고 했다. 어느 밤 그들의 꿈에 옥불이 나타나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흥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생각을 바꿨다. 일행은 나가사키에 머문 지 100여일이 지나서야 막부의 귀국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1818년 4월14일 출항한 배는 대마도를 거쳐 7월14일 해남 앞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옥불도 비로소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됐다. 이때 배에 타고 있던 풍계 현정 스님이 쓴 당시의 사건 기록은 ‘일본표해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완호 스님은 친분이 깊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권유에 따라 일본에 돌아온 768위의 부처님 등에 ‘日’자를 써서 표기해 두었다고 한다.

   
▲ 이재형 국장
대흥사의 옥불 부처님 표류 사건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이번 해남 성지순례에서는 200년 전 벌어진 사건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오래된 사찰일수록 볼거리도 얘깃거리도 풍부하다. 그렇기에 성지순례에는 3가지 즐거움이 따른다. 명산(名山)에 명찰(名刹)이 있다는 말처럼 빼어난 산과 절의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다.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전해오는 문화재와 옛 자취를 살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또 진리의 삶을 살았던 이들과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원력이 깃들어있는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즐거움도 적지 않다. 일반 여행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이 같은 즐거움들이 성지순례의 매력이다. 옛 사람들의 지혜와 여유로움이 필요하다면 깊어가는 이 가을,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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