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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차이야기〈25〉-화랑도의 차생활

기자명 조은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무사로 무장하는 화랑도
차를 마시면서 온화함을 찾지 않았을까…

협곡 겹겹한 깊은 산이거나 일출 출렁이는 푸르른 바다 앞에 둔, 소나무 숲 울창한 곳일 것이라고 상상했던 한송정은 너무도 평범한 모습이었다. 군부대와 인적이 성근 마을을 이웃하고 있었다. 그곳을 밭이라고 해야 할까, 들판이라고 해야 할까. 그 옛날 화랑들의 웅혼한 기상과 풍류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선(四仙)이 남겼다는 돌샘에 얹힌 푸른 이끼만이 무심히 묵은 세월을 말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강릉의 한송정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수풀 성성한 들녘에 새로 지은 듯한 밋밋한 정자 하나와 돌우물 하나만이 덩그마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헌에 기록된 돌화덕과 돌물통은 보이지 않았다. 도의를 닦고 무술을 연마하며, 수련을 위해 명산대천을 찾아다녔다는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뜻의 화랑이 ‘이렇게 평범한 곳을 왜 찾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백 년의 세월이 돌려놓은 모습인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익재 이제현의 제자이며 목은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이 52세 때(1349) 동해안을 유람하고 남긴 기행문에 경포대와 한송정, 그곳에서 사선이 사용했다는 돌그릇과 돌샘에 관한 글이 남아 있다. 한송정은 사선이 놀던 곳으로, 그 고을 사람들이 유람자들이 많이 오는 것을 꺼려 한송정을 헐어버렸다고 하며, 소나무도 불타 없어지고 차 끓일 때 사용하던 유적만이 남아 있다고 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한송정의 돌샘을 차샘(茶泉)이라 적고 있다. 또 한송정을 읊은 시도 여러 편 실려 있다. 김극기도 그곳을 구경하고 시 한편을 남겼다.

여기가 신선이 유람하는 곳
지금까지 남은 자취 참으로 기이하구나.
주대(酒臺)는 기울어 풀 속에 잠겼고
차 부뚜막은 딩굴어 이끼 끼었네.
양 언덕 해당화는 헛되이
누구를 위해 지고 누굴 위해 피는가.

화랑도는 단체의 성격이 매우 강한 집단으로 교육적, 군사적, 사교적 기능을 가진 집단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청소년 집단이었다. 각 단체마다 화랑 1명에 승려 약간 명, 화랑을 따르는 많은 낭도(郎徒)들이 있었다.

화랑은 진골 출신의 귀족으로서 용모가 단정하고 신뢰적이며 사교성이 풍부한 사람을 낭도들이 추대하였다. 낭도는 진골이하 6두품에서 1두품, 평민까지 경주에 사는 청소년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결사적 집단이었다. 이것은 신라의 골품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때, 신분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계층간의 갈등을 조절하고 완화시키는데 기여했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것에도 이바지했다.

화랑도는 도의를 닦고 무술을 연마하는 것 외에도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국토를 순례하며 국토애도 고취시키고 지리도 익혔다. 가무를 즐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이었다. 또 화랑도에게는 무사(武士)정신도 있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도 불사했으며, 전사(戰死)를 명예로 여겼다.

한송정의 차유적을 두고 신라의 화랑이 삼신이나 오악산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하는 차인들이 있지만 그런 용도로 사용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사선이 놀던 곳이라고만 되어있다.

언젠가 일본을 다녀온 친지에게서 일본의 군인들이 꽃꽂이를 배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군인들이 꽃꽂이를 배우는 것은 토요토미 히데요시 당시에 무사들이 다도를 통해 중화의 덕을 찾은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화랑도도 반복되는 수련의 긴장과 피곤을 청청한 소나무 아래서 장쾌히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일몰 수평선 위로 붉게 떨어지는 풍광에서 차를 마시며 풀어내지 않았을까. 때로는 무사로 무장할 때도 있었다고 하니, 차를 마시면서 온화함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가무를 즐긴 화랑이고 보면 여가에 차를 흠씬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술보다 머리와 마음을 맑히는 차가 훨씬 낫지 않았을까.

무게있는 것만이 다도라고 할 수 있을까.


조은 /한국다도연구원 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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