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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정유년 동안거 결제 법어“무위진인 추구만이 어려운 세상 살아갈 유일한 방법”
남수연 기자  |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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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1  1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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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 망상!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전도선언을 하신 다음 사부대중과 수행을 함께 하시며 사성제 팔정도의 바른 길을 터득하도록 쉽게 일러주셨습니다. 觀心을 통해 사대오온의 무상함과 무아함을 터득케하심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바입니다. 그 후 중국으로 불교가 넘어오면서 도가와 유가등과 상호교류하면서 선불교와 대승불교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교학의 解悟와 조사선의 證悟( 徹見, 徹悟)를 통해 함께 발전되고 있었습니다.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들어 ‘이게 무엇인가?’, 양손으로 수인을 짓고서 ‘이 도리를 아는가?’, 무단히 자리를 半分한다던지 연꽃을 대중들에게 들어보였다던지 할을 하고 봉을 치며 멱살을 잡고서 ‘일러라!’ 한다던지 눈썹과 눈을 들어 암시한다던지하면서 目擊傳受하는 선종시대를 거쳐서 오늘에까지 이르렀는데 그와 같은 도리가 지금 이 땅, 이 세계에 인류와 역사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며 무슨 이익을 주고 있는가요?

얼마 전 신문기사를 하나 읽게됐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2020년까지 없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마트톨링이라는 기술 때문에 톨게이트가 필요없이 지나가기만 해도 저절로 징수가 되는 때문이라지요.
현재 7,000명의 직원들은 삼년 후에는 직장을 잃게되는 것입니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전 문가들은 2020년까지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듣고서 예전에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운동이 떠올랐습니다. 산업화의 특징은 대량생산과 기계화였는데 여기에서 탈락한 가내수공업 종사자와 농민, 축산업종사자들이 다시 가내수공업시대로 돌아가고자 했던 보수반동의 움직임을 러다이트라고 하지요.

이제 사람이 필요없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작년 세계의 일류 기사들을 꺾었던 알파고도 알파고 제로라는 새 AI에게 100전 100패를 하였다합니다.
기술은 날로 발전해져가고 이제 사람의 노동이 필요없는 시대가 목전에 와있습니다.
이미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는등 인공지능은 점점 사람의 자리를 잠식해 가고있는데 기껏 기존의 조직이나 사람들은 19세기의 러다이트운동 같은 소리만 하곤 합니다.
아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시대는 바뀌었고 그 바뀐 조류가 곧 밀어닥칠텐데 사람들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저는 요새 여러 생각들을 하곤합니다. 바쁜 중에 이동하면서도 날로 새로워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 불교가 어떤 포지션을 취하야하는가하는 것들을 말입니다.
어떤 학자들이 말하는 기본소득이 이루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소득의 가부를 떠나 어쨌든 인간은 점점 할 일이 없어질 것이고 시간은 남아돌고 몸만은 편해져서 인간이 존재목적을 찾지못하게 된다면 향락과 퇴폐로 시간을 보내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飽暖思淫欲 飢寒發道心이라 했으니 사람이 마음쓰는 바가 없게되면 항심이 없어져서 막살게됩니다. 항심이 없고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개인이 많아지면 세상이 위태로워집니다.
아마 4차산업이 완전하게 자리잡는 시대가 된다면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개인적이고 은둔적이게 될 것이고 공동체정신은 훨씬 약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 불교는 어떻게 해야할까? 요새 저의 고민은 거기에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말했듯 불교는 요새 말로 사이버종교입니다 부처님의 교설을 읽다보면 성층권에 대한 부분도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 맞게 法古創新을 하여야하는데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듯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합니다. 아무리 AI가 발전을 하더라도 불성을 지니진 못했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불성을 찾는 공부 그리고 이제껏 세상을 어지럽힌 책임을 참회하는 것 뿐일 것입니다.

요새 억지로 닭벼슬을 하나 맡게 되어 서울에 다니곤 하는데 전철을 자주 타게 됩니다. 거기서 보게된 것인데 젊은이들은 저마다 귀를 막고 스마트폰을 쳐다보고있고 노인들은 자리에 앉아서 큰소리로 별 필요없는 얘길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더군요.
제가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일단 시끄럽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귀를 막고 있는 것이라더군요. 또 노인들에게도 물어보니 그들 역시 아무도 그들의 속내를 들어주지 않는 탓에 그런 곳에서라도 세상에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현상은 다르지만 원인은 ‘인간의 소외’였습니다. 사람이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지못해 괴로움으로 빠져드는 시절이 목전에 와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니 이 불안한 시대에 어찌 안심을 하여야할까요?

시대에 앞서가는 것은 차치하고 자신의 몸 하나 청정한 수행자로 우뚝할 수 없는 현실에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종교라는 것이 점점 필요성과 존재이유를 갖지못하자 세계 곳곳은 탈종교화로 가고 있는데 이러다가 우리 불교가 무종교, 투쟁의 견고한 시대에 존재하지 못할까 늘 염려됩니다. 문명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만큼 인간이 소외되어 비인간화의 길로 한 걸음씩 나가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하지만 이런 시대야말로 역설적으로 우리 불교가 法古創新만 한다면 오히려 세상에 꼭 필요한 종교가 될 수있습니다. 참된 사람, 임제스님께서 말씀하신 무위진인을 추구하는 길만이 이 어려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탓입니다. 지식이 충만하고 세상이 촘촘해질수록 화두를 드는 참선수행이 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담박하고 간단명료하며 본질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혜종고선사께 편지를 보냈던 이들이 누구입니까? 당대최고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조류를 잘 읽어내지못한다면 우린 우리 스스로 소멸해갑니다 참사람의 길을 열지못한다면 세상은 암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화두가 들리지않고 망상이 치열하다면 금년 이 동안거를 전후하여 위와같은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 수행하고 어찌 살 것인지 파적삼아 자문해보십시오.
힘이 들고 번뇌가 성하더라도 꾸준히 화두에 매진하십시오 언제나 사람이 할 일은 수행뿐입니다.

孰炊無米飯 그 누가 쌀 없는 밥을 지어
接待不來人 오지 않는 사람을 대접할까?
聲色紛紜處 소리와 빛깔만이 어지러운 이곳에서
要須識得眞 본래면목을 알아차려야 하리라

제가 깜빡 졸았나봅니다 잠꼬대! 喝!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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