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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성순의 지옥을 사유하다
44. ‘금오신화’ 남염부주지의 지옥불교 빌려 유교 이상 설파한 역설
김성순  |  shui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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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11: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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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쓴 조선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에는 세종 대의 선비 박생의 눈으로 관찰한 지옥 이야기인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가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남염부제 혹은 남염부주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말하지만 김시습은 여기에 불교의 지옥교의에 등장하는 초열지옥(焦熱地獄)의 이미지를 대입하고, 명부의 심판자인 염마를 등장시키고 있다. 즉, 김시습이 말하는 ‘남염부주’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명부와 지옥이 중첩되어 있는 세계인 것이다.

박생이라는 유학자를 통해
불교의 각종 재 무용론 주장
유학자로서 이상을 꺾었던
김시습의 비애가 잘 드러나


박생은 유학을 공부한 선비로서, 천지는 음양의 이치일 뿐이라 주장하며 천계나 지옥 같은 불교적 세계관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지만 어느 날 꿈속에서 이 남염부주에 들어가는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김시습은 박생이 들어간 바다 속의 한 섬인 남염부주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섬은 하늘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염부주라고 한다. 이 땅에는 전혀 초목이라고는 나지 않고 모래와 자갈마저 없다. 낮에는 센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 땅덩이가 녹아내리는 듯 하고, 밤이면 쌀쌀한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서 사람의 뼈끝을 에이는 듯해 견디기 힘들다. 성처럼 된 쇠 벼랑이 바닷가를 둘러싸고 늘어서 있고, 굳게 잠긴 쇠문이 하나 덩그렇게 서있다. 수문졸은 사람을 물어뜯을 것 같은 영악한 자세로 창과 쇠몽둥이를 쥐고 성을 지키고 서 있으며, 성 안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쇠로 지은 집에 살고 있다. 낮에는 피부가 불에 데어 문드러지고 밤에는 추워서 얼어붙곤 하는데, 다만 아침저녁에나 사람들이 약간 기동하며 웃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하루 종일 붉은 구름이 햇빛을 덮고 독한 안개가 공중을 막고 있는데, 염부(閻浮)라는 이름 자체도 이처럼 화염이 항상 떠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질척이듯 녹아있는 동철을 진흙처럼 밟고 다닌다. 사람들이 목마를 때는 녹은 구리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쇠끝을 먹는다. 차 역시 구리물이나 다름없고, 과일도 탄환처럼 단단하여 먹기도 힘들다. 야차나 나찰이 아니면 이곳에서 배기지 못하고, 도깨비 떼가 아니면 기운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다. 또한 불타는 화성(火城)이 천 리나 되게 넓고, 철산이 만 겹으로 에워싸고 있으며, 백성들의 풍속이 사납고 악해서 그 간사함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자연환경이 험해서 조화로운 삶이 어렵다.

박생은 지옥의 대왕이라 할 수 있는 염마(閻魔)와 만나 불교의 윤회설과 인과보응론, 시왕의 심판, 천도재 등에 관해 유학자로서의 견해를 제시하며 대화를 해나간다. 저자 김시습은 이러한 토론의 형식을 빌어 기존에 인과보응과 심판의 교의에 기반하고 있었던 불교의 지옥사상을 유교적 윤리로 대체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특히 김시습은 박생과 염마의 대화를 빌어 부모의 사후에 망자의 천도를 위해 치르는 각종 불교의식들이 궁극적으로 무용함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염마는 도덕과 예법으로 인민을 가르치면 화평한 세상이 올 것이니, 유학자 박생이 새로운 염라왕으로서 적임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양위할 의지를 밝힌다. 이에 놀란 박생이 꿈에서 깨어나면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 후 두어 달이 지나자 병이 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얼마 후 이웃사람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박생이 염라왕이 되었음을 알리면서 소설은 끝을 맺고 있다.

이 ‘남염부주지’는 저자 김시습 자신이 당시에 이루지 못한 유학자로서의 이상을 선비 박생에 투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김시습은 장차 박생이 명부의 대왕이 될 것이라는 선언을 통해서 조선시대라는 배경에서 성취할 수 없었던 유교적 교화를 불교적 세계인 지옥에서 이루리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이러한 ‘남염부주지’의 구도나 염마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교의적 지식은 김시습이 불교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 ‘남염부주지’는 불교의 세계관을 빌려서 유교적 이상을 설파할 수밖에 없는 패러독스와, 유학자로서의 이상을 꺾은 채 살아가야 했던 인간 김시습의 비애가 짙게 스며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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