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지역단 교정교화팀 최성유-상
강원지역단 교정교화팀 최성유-상
  • 최성유
  • 승인 2017.12.12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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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향한 절절함으로 시작한 절이 이끈 불연

 
좌절했고, 주저앉았고, 세상도 바닥으로 꺼졌다. 분하고 억울했고,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를 양육해야 했고, 신용불량자가 됐고, 살아야겠다는 의지조차 잃어버렸다. 2003년 가을, 난 망했다. 누군가는 모스님이 용하다며 권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책을 보냈다.

빚쟁이 신세로 전락한 모진 삶
‘금강경’ 독경과 정방사 기도로
고통 매듭을 풀며 다시 태어나


교수인 지인이 자기가 보던 거라며 책과 테이프를 한 박스 보내 줬다. 손때가 얼룩얼룩 묻은 무비 스님의 ‘금강경’ 초판과 큰스님들 법문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쪽으로 치워버렸다. 왜일까. 불연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어느 산중에 들어가 우연히 만난 보살이 던진 말 한 마디가 목에 걸렸다. “이런데 돌아다니지 말고 불교대학에서 정법을 공부하세요.” 그 말은 낮고 부드러웠으며 은밀했다. “어떻게? 공부? 불교대학? 무슨 돈으로?” ‘정법’이라는 한 단어 가슴에 새기고 내려온 친정집에 틀어박혀 머리카락만 쥐어뜯고 있었다. 문득, 지인이 보내온 ‘금강경’이 눈에 들어왔다.

첫 장을 열었더니 지인이 친 밑줄과 빼곡한 글자로 적은 메모가 보였다.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 삼라만상의 진실을 밝혀나가는 일입니다.” 휙, 던져버렸다. 떨어진 ‘금강경’은 ‘제16분 능히 업장을 깨끗이 함’을 펼쳐 보였다. ‘금강경’을 들었다. 16분을 읽기 시작했고 정신없이 정독하며 빠져들었다.

1년이 꿈같이 흘렀다. 서울 대학로에서 소극장이었지만 주연도 하며 무대에 올랐고, 방송생활도 간간이 하면서 화려하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 모습을 알던 친구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해맑게 웃는 내 모습에 “정신 차려”라며 울먹였다. 난 새롭게 태어났다.

사진촬영이 취미인 지인과 함께 찾아간 산사는 눈물이었다. 제천 금수산 정방사, 의례적이고 어설프게 했던 삼배가 끝나자 지장보살이 눈앞에 와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슬슬 내려가자는 지인의 말에 바로 올라와서 기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냥하면 되나? 뭘 준비해야 할까?’ 관음전 앞을 지날 때였다. 시선만 마주친 스님이 “108배는 하고 가시나요?”라고 물었다. “오늘은 어렵고, 며칠 내로 기도를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 한 마디는 자비로움이었고 격려이자 다독임이었다.

이틀 만에 올라간 정방사, 지장전에서 결판을 내고 싶었다. “못되게 살지 않았어요. 남 해코지도 안 해봤고, 뭐가 잘못 돼서 이 모양 이 꼴인지 알아야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부처님이 계시면 부처님이 알려주세요. 그 해답 못 찾으면 이 자리에서 죽을 작정이거든요.”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니 무작정 절을 했다.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간절함에 삶을 향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서럽도록 눈물이 났다. 미친 듯 절하던 순간, 잘한 것이 하나도 없는 과거가 영화 필름처럼 스쳐갔다. 결국 “잘못했습니다. 부처님”이 나왔고 “감사합니다. 부처님”이 나왔다. 정방사의 하루는 짧았다. 그날 밤, 밤새 눈물을 흘렸다.

난 학원을 보낼 수도 학비를 낼 수도 없는 빚쟁이 엄마였다. 품삯으로 한 달 한 달 연명하는 것보다 내 잘못과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와 지혜가 더 절실히 필요했다. 연로한 모친에게 딸아이를 맡겨두고 죽든 살든 결단을 내야겠다고 들어왔던 정방사였다. 기도는 낮과 밤이 없었고 쉼도 없었다. 기도 방법을 몰라서 일까. 오히려 더욱 더 절실하고 간절했다. 하루 이틀, 하나 둘씩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고통의 매듭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어려서 모르겠지만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초등학교 선배라는 사람이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니 차 한 잔 하자고 했다.

최성유 강원지역단 교정교화팀 ctd0228@hanmail.net
 

[1419호 / 2017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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