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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명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

기자명 이중남

‘이주아동’이라는 개념이 있다. 외국에서 태어나 보호자를 따라 이주해 온 아동이나 국내에서 외국인 부부 사이에 출생한 자녀를 가리키는데, 최근에 나온 법무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1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이어서 출생신고만 하면 자동으로 우리 국민이 되고 각종 지원을 받는 다문화가정 자녀와는 달리, 이주아동은 국적을 전제로 한 사회적 배려 시스템에서 원칙적으로 배제된 채 비(非)국적자로 살아간다.

성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출입국관리 체계상 이주아동의 지위는 상당히 애매하고 불안정하며, 특히나 그 부모가 체류자격을 상실하는 때는 결정적으로 취약해진다. 현행법은 부모의 체류 관련한 법집행을 할 때, 그로 인해 직접 영향을 받게 될 아동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부모가 본국으로 송환되면 자녀도 당연히 그에 수반될 것으로 간주할 뿐 당사자의 의사를 묻는 절차도 없다. 그런 저런 경위로 체류자격 없이 살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유엔 아동권리협약(1989)은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미성숙으로 인해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필요로 한다”고 확인하고 모든 당사국에게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협약이 정하는 생존권, 보호권 등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찍부터 그 협약에 가입해 있지만, 현행 아동복지법은 체류자격 없는 이주아동을 보호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근래에 아동학대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하는 바람에 그간 감추어져 왔던 이주아동들의 범죄피해 사례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한국인 계부로부터 1년간 성적 학대를 당하면서도 미등록자 추방이 두려워 신고조차 꺼려온 아동과 생모의 사례, 생후 3주 만에 외국인 부모에게서 버려졌으나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시설에 입소시킬 수 없어 갈 곳이 없는 영아의 사례 등. 이것은 가해자 개개인의 범행과 제도상의 불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부작위가 합성해서 빚어낸 풍경이다.

이주자 사회통합에 관한 기존 연구들이 예외 없이 지지하는 원리를 단 하나 꼽자면, 그것은 이주 1세대에 비해 1.5세대, 2세대 등 그 자녀와 후손들이 수용국에 쉽게 적응하고 국민 정체성을 강하게 띤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에서 출생한 이주아동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언어와 문화, 제도 속에서 자라나고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들은 외국인이래도, 최소한 우리나라를 모국(母國)으로 하는 외국인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제출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이자스민 의원 등)은 국내출생 아동에게 출생등록권을 인정해 교육, 의료, 복지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원칙적으로 보장하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이주아동에게 특별체류지위를 인정하는 등 현행 제도의 공백을 보완하려는 합리적인 시도였다. 한국인 정체성을 가진 아동을 한사코 ‘자기네 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은 능사가 아니고, 사회적 편익에도 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외국인 혐오세력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임기만료폐기’ 되고 말았다.

20대 국회에서 아동의 ‘체류자격’을 차별금지 사유로 추가한 아동복지법 일부개정안(김삼화 의원 등)이 제출되었다. 법무부 역시 내년 상반기 중 미등록 이주아동 실태를 전수 조사하고 인권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실시할 계획을 밝혔고, 미등록자라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심사를 통해 잠정적인 체류지위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주아동은 그저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외국인을 부모로 해서 태어난 것뿐, 대단한 결단에 따라 비국적자가 된 것이 아니다. 미등록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위도 대개 부모의 잘못이나 제도상의 불비 탓이다. 그런데도 그로 인한 모든 불이익을 고스란히 아동에게 돌리고 있는 현행 체계를 시정하기 위한 모든 노력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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