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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정토의 두 가지 차원

‘국토를 청정하게 하다’와 ‘청정한 국토’

저는 지금 이 편지들에서 정토신앙, 정토사상, 정토문, 정토교, 정토종 등 다양한 용어를 엄밀한 개념 정의 없이 쓰고 있습니다. 우선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셔도 좋겠습니다.

‘정(淨)’의 품사를 동사로 볼 때
불국토를 완성하는 능동의 의미
불국토 발원에서 정토불교 출발

‘정(淨)’의 품사 형용사로 보면
정토는 곧 청정한 국토란 의미
극락세계 발원할 땐 형용사 ‘정’

그런데 엄밀히 생각하면 ‘정토’라는 말에는 적어도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한자로 ‘淨土’는 ‘淨+土’로 이루어진 복합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석하는 방식에도 두 가지 차원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관건은 ‘淨’의 품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에서 결정됩니다.

첫째 ‘정’을 동사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토를 청정하게 하다’라는 말이 됩니다. 제로 그런 의미로 쓰이는 용례가 ‘유마경’과 같은 경전에서 보입니다. ‘유마경’ 불국품(佛國品)에는 ‘정불국토(淨佛國土)’라는 말이 나옵니다. ‘불국토를 청정히 하다’는 뜻입니다. 바로 ‘정’의 품사를 동사로 보게 될 때, ‘토’라는 목적어(명사)를 청정하게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유마경’에서 ‘정불국토’라고 할 때의 산스크리트 표현은 ‘buddhakshetra-pariśuddhi’ 또는 ‘buddhakshetra-pariśodhana’라고 합니다. ‘붓다크세트라’는 ‘불국토’라는 말입니다만, ‘빠리슛디’ 또는 ‘빠리슛다’는 공히 ‘청정’이라는 뜻입니다. ‘빠리’는 ‘완전한’이라는 의미이고, ‘슛디’나 ‘쇼다나’는 ‘청정히 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정토’는 그야말로 불국토를 건설하고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보살도의 실천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마경’은 반야사상에 근거하여 대승불교의 보살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경전입니다.

둘째 ‘정’을 형용사로 보는 것입니다. ‘정’이 ‘청정한’이라는 의미라고 한다면, 정토의 뜻은 곧바로 ‘청정한 국토’라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의미 역시 ‘유마경’에서도 나옵니다. 그럴 경우 산스크리트로는 그저 ‘buddhakshetra’라고 합니다. 불국토라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정토’라는 말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정토’라는 말의 영어식 표현에서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정’을 동사의 의미라고 한다면, ‘정토’의 영어 표현은 ‘purification of land’라고 합니다. 하지만 형용사라고 하게 되면 그냥 ‘pure land’라고 하면 되지요.

지금 우리가 정토신앙, 정토사상, 정토문, 정토교, 정토종이라고 할 때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이 두 가지 표현 중에서 어느 것을 써야 하는 것일까요? 그 선택에 따라서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집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해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자는 불교를 의미하게 될 때는 ‘Pure Land Buddhism’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두 번째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의미, 즉 불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뜻의 정토는 정토불교와 무관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첫 번째 의미에서 정토불교가 출발하였다는 점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의 ‘정토’ 역시 ‘무량수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섭청정장엄불토(具攝淸淨莊嚴佛土)’라는 말이 나옵니다. 번역하면,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것을 두루 다 갖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장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만 그 뜻은 청정히 하다. 청정하게 장식하다는 뜻인데, 결국 보살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장엄’에 해당하는 말을 산스크리트로는 ‘vyūha’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화엄’이라는 말에도 들어있습니다. 화엄이라는 말은 꽃으로 장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꽃’은 바로 보살도입니다. 보살도를 실천하여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는 것을 화엄이라 하였습니다.

‘유마경’에서 말한 불국토 청정은 ‘무량수경’에서는 불국토를 청정히 장엄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말을 우리는 다시 ‘화엄경’에서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엄하다’는 말의 의미가 산스크리트에서는 ‘vyūha’가 되는데 이 말이 ‘무량수경’에서도 그대로 나오고 있습니다.

‘Sukhavativyūha’라는 말 속에서입니다. ‘Sukhavati’는 극락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량수경’이라는 이름을 산스크리트로부터 직역하면 ‘극락장엄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스크리트 경전에서는 법장보살이 48가지 서원을 세우고서 불국토를 청정히 하는 이야기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문으로 번역되면서는 그러한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행하시는 분 아미타불에 초점이 두어지는 것으로 변화를 겪었습니다.

실제로 ‘무량수경’은 그 상권에만 초점을 두고 본다면, 법장보살의 성불이야기라고 볼 수 있음과 동시에 법장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히 장엄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의미의 ‘정토’로 이해하는 것은 발신자(發信者) 입장에서입니다. 그것을 강조하면서 경전은 편찬되었습니다. 보살도의 연장선상에서 ‘무량수경’을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불국토가 이미 이루어졌고 법장보살은 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이미 10겁(劫)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수신자(受信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미 우리의 왕생을 기다리는 ‘청정한 국토’로서 다가왔던 것입니다. 영어로 정토불교를 말할 때, ‘Pure Land Buddhism’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첫 번째 의미의 정토는 이 국토를 청정하게 하여 불국토로 만들자는 의미이므로 차방정토설(此方淨土說)이라 하고 두 번째 의미의 정토는 이미 존재하는 정토세계에 가고 싶다는 것이므로 타방정토설(他方淨土說)입니다. 발신자의 불교로서 정토불교는 차방정토설이었으나 수신자의 불교로서 정토불교는 타방정토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의상(義相) 스님에 의지하여 아미타불을 등에 업거나 혹은 그 옆에 서서 아미타불의 시선(視線)을 따라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고 할 때 첫 번째 의미의 정토사상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아미타불과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미타불이 가졌던 과제를 동일하게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과제는 바로 불국토를 청정히 하는 것,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 즉 불국토를 건설함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분이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법장보살이었을 때 세운 48가지 서원을 실천하는 데 5겁이나 되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의 보살행, 그것이 바로 정토신앙의 중요한 한 축이 됩니다. 청(淸) 나라의 거사 위원(魏源)은 보살도의 대표적 경전인 ‘보현행원품’을 정토삼부경에 추가하여 ‘정토4경’을 말하였습니다.

보살도를 설하는 ‘보현행원품’에 속히 무량광불의 국토에 왕생하길 발원하는 정토신앙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발원교(發願敎)라는 점에서 ‘무량수경’과 공통하는 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점을 볼 수 없다면 ‘보현행원품’에 왜 정토신앙이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맙니다. 단순히 중생을 달래기 위해 베풀어진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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