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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모든 생명이 더불어 행복할 순 없을까?

기자명 최원형

지중해에서 먹거리로 죽어가는 5억마리 새

얼마 전 창가로 책상을 옮겼다. 내다보이는 앞산은 겨울이라 스산하기 짝이 없는데도 굳이 이 계절에 창가로 책상을 옮긴 까닭은 새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함이다.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새들의 겨울나기를 걱정하다가 모이를 평소보다 갑절로 내 놓는 걸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평소에는 곡류만 줬는데 견과류 몇 종류와 가끔은 육류의 지방덩어리도 추가했다. 그랬더니 찾아오는 새 종류와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발걸음을 하지 않던 박새까지 찾아오는 걸 보니 확실히 이 계절이 곤궁하긴 한가보다. 새들마다 좋아하는 모이가 다르다. 어치는 견과류를 특히나 좋아한다. 참새들은 곡류를 좋아하나 가리지 않고 먹는다. 직박구리는 단 열매를 좋아한다. 올해 선물로 받은 홍시 가운데 여남은 개는 직박구리 몫으로 따로 두었다. 새들이 모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먹이에 따라 부리 생김새가 달리 진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박구리가 가늘고 긴 부리로 홍시를 알뜰히 먹는 모습은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모이를 먹다 잠시 쉬는 새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폴록거리며 배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진한 생명을 느낀다. 덤불속에 옹기종기 모여들어 체온을 나누며 지새웠을 저들의 밤이 애잔하다.

밀렵꾼 동물사냥 성행하는 겨울
덫에 걸려 오랜 시간 고통 받기도
미식가들을 위한 식탁에 올려져

올 겨울엔 눈이 제법 많은 것 같다. 벌써 함박눈이 몇 차례 다녀갔다. 그동안 눈다운 눈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겨울을 보냈던 터라 더욱 반갑다. 눈은 겨울 숲에서 새들의 목을 축이며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이제 겨우 겨울길목이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눈이 내릴지 사뭇 기대도 된다. 푸근하게 눈이 쌓인 날 모이를 내 놓으려다 말고 모이대 위에 찍힌 발자국들을 봤다. ‘벌써 다녀갔구나’ 하는 생각과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하는 생각에 더해, 이렇게 발자국이 찍힌 건 동선을 다 들켜버린 건데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겨울은 밀렵꾼들의 세상이라던 어느 야생동물치료사의 말이 떠올랐다. 특히 눈이 내린 다음날은 동물을 사냥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뭇잎이 죄 떨어진 숲에서 동물들이 몸을 숨기기란 어렵다. 게다가 눈까지 내리면 모든 족적이 그곳에 새겨진다. 그런데 밀렵꾼들이 그저 발자국을 추적해서 사냥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게 만드는 게 올무다. 사냥은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지만 올무는 그렇지 않다. 한번 올무에 걸려든 야생동물은 몇 시간에서 길게는 며칠씩 고통 받으며 몸부림치다가 굶어죽으니까. 이런 위험천만한 올무가 겨울 숲 구석구석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끈끈이 덫에 걸려 버둥거리며 거꾸로 매달린 예쁜 새들이 있다. 창공을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인간이 만든 끈적거리는 덫에 발이 붙어버렸고 벗어나려 애쓸수록 날개마저 붙어버린 그런 풍경들이 사이프러스 어느 숲에서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주먹 크기정도의 감자 속에 쏙 들어가는 알몸의 새 한 마리가 있다. 이 새는 산채로 위스키에 절여지고 털이 뽑힌 다음 오븐에 구워져 식탁에 오른다. 사람들이 좀 있어 보이고 싶을 때 먹는 요리라는데 가격이 20~80 유로쯤 된다.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별식인 이 요리는 뼈째 우적우적 씹어 먹는데 씹는 식감에다 미감이 더해져 인기다. 뼈째 씹을 때 일그러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식탁에서 이 요리를 먹을 때 사람들은 하얀 천을 뒤집어쓴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오가는 철새들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먹을거리였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어쩔 수 없었겠다 백번 양보를 해도 오늘 날은 형편이 좀 다르지 않은가. 미식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팔리기 위해 잡아들이는 새라면 말이다. 서식지 파괴에다 성행하는 밀렵으로 개체수가 줄어들자 유럽연합은 철새 사냥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매년 지중해에서 고의로(음식으로) 사라지는 새가 적어도 5억 마리 가량 될 거라는 통계가 말해주고 있으니까. 허공에 쳐 놓은 그물망은 마치 바다 속 그물과 흡사하다. 한 밤에 그 그물에 걸리는 새들이 많게는 1만 마리까지 된다고 한다. 이 얘기는 더글라스 카스와 로저 카스 감독이 만든 다큐 ‘텅 빈 하늘’ 중 일부다.

새를 가까이에서 보기 시작하면서 겁 많고 작고 여린 새들의 고통에 감정이 이입되어서 이 다큐를 보는 내내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우리가 먹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제대로 알아야겠단 생각을 또다시 했다. 포획되고 사리지는 숫자에 질려 한 마리 새를 구하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야 말로 절망이다. 그땐 정말 텅 빈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을 지도 모른다. 여전히 창 밖에선 새가 지저귄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20호 / 2017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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