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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공양이 생명을 살린다

기자명 고용석
  • 기고
  • 입력 2018.01.08 14:31
  • 수정 2018.01.08 14:48
  • 댓글 2

[특별기고-한 끼 공양의 힘]

우리는 음식의 진정한 잠재력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음식은 모든 것을 연결하는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구 전체의 경제, 정치, 생태적 질서와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의식적으로 선택하기만 하면 큰 변화로 이어진다. 특히 음식은 나 아닌 것과 나를 연결한다. 이는 거대한 전체에 대한 깨달음과 치유로도 이어진다. 음식의 이러한 특성은 문화근간을 이루는 신화 및 영적 전통에 강력한 상징으로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연간 700억 마리 도살
폭력의 음식문화 만연
발우공양은 자비 발현
인류 음식문화 지향점

밥 한 공기가 밥상에 오르려면 볍씨와 햇빛, 빗물과 바람, 대지의 숱한 미생물, 농부의 땀과 밥 짓는 이의 정성 등 모든 것이 다 들어간다. 한마디로 음식은 온 우주적 희생과 소통의 합작품이자 선물이고 은혜이다. 먹는다는 것은 이 질서에 의식적인 참여이다. 밥은 다른 생명체가 제 생명을 나에게 바친 것이니 나도 누군가의 밥이 되는, 먹히는 삶을 살아야 제대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미 일상에서 “넌 내 밥이야” “말이 안 먹히네” 등 밥을 희생과 소통의 의미로 사용해오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듯 먹고 먹히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은 삶에서 죽음, 다시 죽음에서 삶으로 흘러가는 무한질서에 대한 은유이자 자각이다.

밥의 이런 속뜻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불교의 공양이다. 공양에는 바치고 모신다는 희생과 소통의 뜻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인도의 고전인 ‘바가바드기타’는 공양의 뜻과 비슷한 ‘야즈나’를 핵심개념으로 강조한다. 야즈나는 섬김이자 먹고 먹히는 상생과 희생의 관계망이며 만물의 존재원리이다. ‘바가바드기타’에 따르면 하느님, 즉 아트만(참나)은 이 야즈나 속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한 행위일지라도 그 열매에 대한 일말의 욕망과 기대마저 버릴 줄 아는 순수한 행위를 중요시 한다.

불교의 공양이란 단어를 빌려 표현하면 한마디로 지혜로운 이는 부처님께 공양해 남은 것을 먹고 모든 업장에서 해방되지만, 어리석은 이는 자기를 위해 공양을 짓고 그 업장을 먹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관게(五觀偈)는 식사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우는 게송으로 식사가 있기까지 공이 얼마나 든 것인가를 살핀다. 우주의 선물인 이 공양을 과연 받을 만한 것인가 자신의 덕행을 성찰한다. 그리고 정신을 깨우고 내면의 자비를 키우는 약으로 먹을 것을 상기한다. 공양은 ‘나’ 속에 계신 부처님께 드리는 것이며,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먹는 것이다. 불교의 발우공양은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물론 모든 존재를 배려하는 자비심이 담긴 심오한 영적 행위이자 음식문화이다. 이는 오늘날 전 인류가 배워야 할 음식문화의 대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사람들도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 먹는 음식은 모두 영혼임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마땅히 그들을 죽여 먹이로 삼아야 하는 잔혹한 현실에 마음이 크게 불편하고 두려웠으리라. 하나 피할 수 없는 삶의 전제이다. 대표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과 삶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이 신화의 기본구조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삶의 전제에 대한 고민이나 최소한의 문제의식조차 없이 공장식 사육, 대규모 단일경작, 유전자조작 등 생명이 조작되고 인간마저 상품화되는 것이 일상인 시대에 살고 있다. 밥상에 오르기 위해 연간 700억 마리의 동물이 도살당하고, 어류의 50%와 세계 농지의 80%, 물소비의 70%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낭비되며, 세계 식량의 40%가 가축사료로 투입되면서 연간 10억명은 배고파 죽어가는 반면, 20억명은 배불러 만성질환으로 죽어가는 현실이다.

▲ 고용석
이렇듯 음식 특히 육식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죽음과 고통의 쳇바퀴는 우리 자신에 대한 폭력이며 현대 소비문화의 최대 그림자이다. ‘오늘 한 끼, 무얼 먹을까’라는 물음은 이 거대한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에 대한 ‘알아차림’이며 생명의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인류의 지속가능성과 인간회복의 시금석이다. 이제 언론과 지식인들도 유독 이 문제에서만은 침묵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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