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인문학硏, ‘서구의 불교’ 세미나[br]1. 미국불교의 전래와 확산
동국대 인문학硏, ‘서구의 불교’ 세미나[br]1. 미국불교의 전래와 확산
  • 김주관 교수
  • 승인 2018.01.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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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주민에 의해 유입…1893년 세계종교회의 계기로 확산

▲ 미국불교는 1893년 세계종교회의를 계기로 대중적으로 확산됐다. 사진은 그해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 사진출처=‘미국불교’(운주사)

미국에서 19세기를 맞이할 때까지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불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19세기 들어 불교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기는 하였지만, 이 시기 불교에 대한 관심과 논의들은 유럽의 영향을 받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것이었다.

문헌연구 중점 둔 유럽과 달리
기독교 대안종교 형태로 정착
아시아서의 직접 수용이 배경

20세기 초 일본불교도 유입
일련종 등 일본불교 전통 강세
틱낫한·숭산 스님 등 가세로
미국 선불교 발전에 크게 영향
1990년대 티베트불교도 확산


유럽의 지적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미국 내에서 불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불교에 대한 논의는 유럽에서 행해진 교리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실천적인 특징을 가진다. 즉 미국에서 불교의 시작은 문헌학적 연구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기독교를 대체하는, 또는 기독교를 보완하는 종교의 한 형태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불교가 소개되던 초기에 미국인들이 불교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유럽의 국가들과는 달리 아시아 불교 국가에 대한 식민지 지배 경험이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불교를 접하고 다양한 문헌학적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던 반면 미국은 그러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문헌학적 연구의 자료를 처음부터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사항은 미국사회는 불교가 처음으로 소개되던 시기부터 직접적으로 불교도를 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불교도인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사찰을 건립하는 등 불교의 실천적인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세 번째로는 당시 미국의 종교적인 상황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 기독교는 유니테리어니즘(Unitarianism),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자유종교연합(Free Religious Association) 등과 같은 기존의 기독교 교리와 관행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다양한 논의들이 분출되고 있었다. 기독교에 대한 이들의 비판적 입장은 불교의 교리와 일맥상통하는 면모를 보임으로써 불교 수용에 있어 긍정적인 토양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종교로서 불교가 전래된 것은 소위 1848년 골드러시와 더불어 미국으로 이민한 중국인들에 의해서이다. 이 시기의 불교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부터 불교도였던 중국인들을 주요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소규모의 사찰들을 제외하고도 1875년경 샌프란시스코에는 8개의 사찰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 이민자들 간에는 불교가 일정정도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882년 발효된 ‘중국인 배척법’으로 중국인의 이민이 금지되면서 중국인의 수가 감소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였던 불교도 더불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학문의 대상으로 미국에 불교가 알려진 것도 시기적으로는 비슷하였지만, 그 경로는 달랐다. 독립 후에도 문화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여전히 유럽적 전통에 속해 있었던 미국에서 불교가 학문적으로 소개된 것이 유럽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최초로 미국에 불교가 소개된 것은 1842년 외진 뷔르누프(Eugene Burnouf)의 불역판 ‘법화경’의 일부가 영어로 번역되어 초월주의 잡지인 ‘The Dial’ 에 ‘부처의 설법’(The Preaching of the Buddha)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것이었다. 또한 같은 해에 미국동양학회(American Oriental Society)를 창립하면서 살리스버리(Edward Elbridge Salisbury)가 행한 강의 ‘불교역사에 대한 회고’(Memoir on the History of Buddhism)도 최초로 미국에 전해진 불교에 대한 소개의 하나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역시 뷔르누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최초로 미국에 소개된 불교는 유럽을 거쳐서 전래된 것이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과 쏘로우(Henry David Thoreau)가 주축이 된 초월주의자들은 영적영감의 원천으로 아시아적 전통을 심각하게 고려하면서 불교에 관심을 두었으며, 몇몇 자유주의자들과 학자들은 붓다의 불교만이 진정한 불교이며 그 이후의 불교는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텍스트를 통한 불교 연구를 시작하였다.

불교가 유럽을 거치지 않고 직접 미국으로 전해진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신지학(theosophy)을 주창한 올코트(Steel Olcott)와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는 미국 시민으로서는 최초로 불교에 귀의(1880년)한 사람들이었으며, 이후 미국 불교의 전파에 기여하였다. 1885년 페놀로사(Ernest Fenollosa)와 비글로우(William Sturgis Bigelow)는 천태종을 받아들이고 일본에서 진언명상을 시작하였다.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미국불교의 전파에 하나의 분수령이 된 것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였다. 근접한 거리에서 실행되는 불교를 접할 수 있었고, 종교적 다원주의가 가능하였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열린 이 회의에는 12명의 승려가 참여하여 불교도 스스로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후 미국 불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승려들 중에는 후에 영국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나가리카 달마팔라(Anagarika Dharmapala)와 미국 선불교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 받는 샤쿠 소옌(釋 宗演) 등이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 불교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1893년 세계종교회의 이후의 일이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했던 캐러스(Paul Carus)는 1894년 ‘The Gospel of Buddha, According to Old Records’를 출간하여 일반대중에게 불교와 붓다의 생애를 소개하는 등 불교의 대중화, 또는 불교의 확산이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신앙으로써 불교의 확산은 일본 이민자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1898년 하와이를 합병함으로써 일본불교도들이 본토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899년 스예 소노다(Shuye Sonoda), 카쿠료 니시지마(Kakuryo Nishijima)에 의해 샌프란시스코에 ‘Buddhist Mission of North America’가 창립할 정도로 그 기반을 확장하였다. 그 결과 20세기 전반은 미국 불교에서 일본전통이 지배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기에 미국에 사찰을 건립한 일본불교 종파로는 니치렌슈(일련종), 신곤(진언종), 소토젠(조동선), 조도신슈(정토진종) 등이 있었다. 하지만 1924년 이민법 발효로 일본인 이민이 규제되자 일본불교의 확산은 일시적으로 축소되었다. 진주만 공격 후 일본인들을 격리 수용하였고, 수용소에서 불교를 좀 더 미국적으로 보이게 변화시키려는 압력이 작용하면서 ‘Buddhist Mission of North America’를 ‘Buddhist Churches of America’로 재정비하였다.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 제한적 범위의 불교 확산을 넘어서 불교로 개종한 비아시아인 불교도가 출현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불교 부흥기를 맞이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이는 소위 ‘젠(zen)’ 붐 현상과 티베트와 관련된 운동이 큰 동력이 되었다. 1950년대 일본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비트(Beat)족이 등장하여 유의미한 영성을 추구하였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기존의 질서에 대항하는 히피문화와 결합하여 하나의 대항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급속하게 대중 속으로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비트족과 그 이후 개종자들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스즈키(鈴木 大拙 貞太)였다. 스즈키는 시카고 세계종교회의에서 캐러스와 공동작업을 한 바 있으며, 선불교를 강의하기 위해 1949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스즈키의 강의는 선불교에서 개인주의(individualism), 직관(intuition), 자발성(spontaneity), 일회성(playfulness), 단순성(simplicity), 신비적 지혜(mystic wisdom)의 가치를 강조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스즈키는 대항문화를 선도하는 인물로 부상하였다.

이후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실천 위주의 선이 불교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선이 일본의 전통에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Thich Nhat Hanh)과 한국 출신 숭산 스님의 선불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미국불교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흐름은 티베트 불교의 전래였다. 1970년대 들어 티베트로부터 망명한 일부의 승려들과 티베트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티베트 불교 흐름이 형성되었다. 특히 쵸그얌 드룽파 린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의 ‘crazy wisdom’이라는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관통하는 미국사회의 반문화적 정서와 맞물려 티베트 불교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반문화정서의 퇴조와 더불어 티베트 불교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티베트의 문화적, 정치적 문제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티베트 불교의 다르마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을 보호하고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선불교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미국불교의 한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흐름에서 미국불교의 확산은 비아시아인 불교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1950년대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대항문화 또는 반문화로서 수용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엘리트층에게까지 수용돼 그 지평을 넓혀 왔다.

2006년 9월14일자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는 “미국 내에서 소비중심의 물질주의와 기독교 중심의 문화가 쇠퇴하고, 많은 미국인들이 정신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대안종교인 불교로 선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2년 6월17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사회에서 급격히 불교도가 늘고 있는 현상을 “불교는 어떤 대상을 신격화하는 다른 종교와 달리 단순하고 보편적인 진리와 가르침을 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미국불교는 동양에서 행해지는 염불, 독경의식과는 달리 위파사나와 명상수행 등이 전형적인 수행과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라마 수리야 다스(Lama Surya Das)’는 미국 내에서 불교도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를 명상과 같은 내적수행 (transformative practices)이라는 불교만이 가지는 차별적인 특성에 말미암은 바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 김주관
동국대 경주캠퍼스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이러한 시각들은 미국불교를 선불교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규정, 즉 미국불교를 하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맥락에서 옥시덴탈리즘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불교는 아시아 각국의 불교에 비해 전파의 시기가 짧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파가 일시에 전래되었다. 따라서 미국불교는 불교의 미국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 각국의 불교가 고유의 성격을 가지는 것처럼 미국의 불교 또한 토착화의 과정을 겪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또 다른 불교 중심지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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