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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경수의 ‘불교계에 바란다’ ① - 1980년 5월 ‘법륜’

기자명 법보신문

찬란했던 과거만 자랑해서야

1910년 불교계 최초의 잡지인 ‘원종’이 발간된 이후 수많은 불교 잡지와 신문이 있었다. 여기에는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명문장 명칼럼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법보신문에서는 선지식들의 주옥같은 글들을 선별해 매주 연재한다. ‘불교계에 바란다’는 서경수 전 동국대 교수가 1980년 5월 ‘법륜’에 수록된 글로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오늘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과거 영화에만 집착하는 건
스스로의 가치 훼손하는 것

집착을 악덕으로 규정하고,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불교의 교리적 입장은 어떠한 이론도 받아들일 아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비판한고 하여, 자신을 무장하여 오므리고 마음의 문을 좁게 닫아 버리는 것은 적어도 대승을 자처하는 보살의 자세는 아니다. 모든 흐름은 궁극에 이르러서는 큰 바다에 합류되고 만다는 비유의 깊은 뜻을 안다면, 다소 쓰디쓴 맛을 주더라도 신선한 이론에는 귀를 기울일 만도하다. 마음의 문을 닫고, 남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자세는 아집(我執)을 낳고, 아집은 아만(我慢)으로 통하고, 아만은 교단의 화합을 깨뜨리며, 크게는 중생이 사는 사회의 평화를 무너뜨리고 만다. 나보다는 남과 이웃을 위한다는 대승불교가 나를 위한 집착 때문에 화합을 깨뜨린다면 보살의 길에서 어긋나는 셈이다.

한국 불교계에 바라고 싶은 몇 가지 가운데서, 첫째는 ‘과거지향적 성향’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동양 역사와 함께 늙어온 불교는 찬란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상 속에서 지내는 과거적 존재로 굳어 버린 인상을 풍긴다. 모든 종교는 강한 보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지향적 성향을 띠고 있다. 특히 한국불교는 과거지향적 성향을, 다른 종교보다 농후하게 띠고 있다. 여기에는 근원적으로 아주 오랜 옛날 즉, 태고에 거의 완전에 가까운 ‘선(善)의 시대’가 있었다는 역사관도 작용하고 있다. 완전한 낙원은 이미 태초에 있었다는 사관이다.

완전한 선의 시대나 낙원은 과거에 있었었다는 과거완료형적 서술은 현재는 태초보다 선에서 멀어진 즉, 악의 시대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오늘은 어제보다 타락했으므로 어제보다 못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타락한 시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락하여 가고 있으며, 절망적인 시간으로 떨어져 간다는 것이다. ‘오늘은 말세’라고 고함치는 광신자의 병적인 발상도 이 같은 사유에서 연유되었다. 태고적 과거가 가장 완벽한 시대였다면 그 같은 과거를 지향하는 성향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일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불교도, 지난날의 찬란했던 과거만을 집착하고 자랑하며,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과거가 완전한 것이라면, 현재의 의미는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와 꼭 닮은 꼴로 남아 있는데서 찾아진다. 과거의 유산인 문화재적 가치는, 현재 남아있는 현 상태로 보존하는 데 있다. 역사의 비바람에 파손되었다 하여 보수하거나 개수하면 오히려 문화재적 가치는 감소된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불교교단은 결코 유형문화재는 아니다. 오늘을 산다는 말은, 오늘의 시간에서 호흡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지만, 어제의 시간에 서 호흡하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정말로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다고 하나, 실은 어제의 연장으로 어제를 따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문화재적 자리를 그대로 유지해온 유형문화재의 존재와 같다.

 

 
서경수(1925~1986)

전 동국대 교수는 함경북도 명천이 고향으로 중학교 때 항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됐으며 해방 후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도 네루대학에서 인도불교학을 연구했고 한국불교연구원 창설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학문, 신행,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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