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대흥사 황금 십자가 분실과 복원
52. 대흥사 황금 십자가 분실과 복원
  • 이병두
  • 승인 2018.01.30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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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가 팔았다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1974년 8월8일 전남 해남 대흥사에 보관 중이던 황금 십자가(이하 ‘십자가’)가 사라졌다. 황금에 칠보로 장식한 천주교 십자가<사진>였다. 길이 5.9cm, 두께 0.1cm, 앞면에는 INRI(‘유태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뜻)라 새기고 밑바닥에는 로마자로 SV라 새겨져 있었다.

경찰 수사로 행자 안씨 검거
진술만 있을 뿐 행방은 묘연
십자가 원래 소유했던 사람
예수회신부 vs 서산대사 갈려
2016년 대흥사 복제품 제작

SV는 이 십자가를 지녔던 사람 이름의 머리글자를 표시한 것일 터인데, 이를 근거로 1593년 일본 침략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들과 함께 들어온 예수회 신부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의 것이라고 추정하고 가톨릭 쪽에서도 그렇게 확인하였다. 그러나 8월19일자 ‘경향신문’에서는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대사가 일본 강화사로 갔을 때 이태리 신부를 감화시켜 얻은 최초의 십자가”라는 추측 기사를 내어 그 뒤 오랜 동안 출처를 둘러싼 통설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경찰은 대흥사 행자로 있던 안모씨를 범인으로 검거하였지만 “금은방에 넘겨 녹여버렸다”는 진술을 받아냈을 뿐 그 행방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사건이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몇 년 뒤 ‘동아일보’(1981년 4월9일자)에서 이 사건을 다시 전하면서 이 십자가는 “종이 금편(金片)에 조각을 해서 나무에 입힌 것으로 황금덩어리로 볼 수 없는 골동품이므로 무모하게 녹여버렸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점이 남아 있다”고 보도해 경찰 수사 결과와 십자가의 성분에 대한 이견을 내놓아 궁금증을 더해주었다.

어쨌든 이제라도 진품을 되찾게 되면 반가운 일이겠지만 수사결과 발표대로 오래 전에 세상에서 사라졌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아주 깊숙이 숨겨져 당분간 그 존재를 드러낼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지난 2016년 대흥사가 “옛 사진을 참고해서 복제품 셋을 만들어 대흥사와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 하나씩 보관하고 하나는 가톨릭 쪽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하고 최근 발견된 유리원판 사진에 근거해 복원작업 경과를 공개하면서 다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십자가는 1604년에 작성된 ‘서산대사 유물 목록’에 ‘십자패(十字佩)’로 기록되어 있는데 수백 년 동안 보관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가 1927년 겨울에 발견되어 언론에 소개되면서 존재가 드러나 그 성격을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당시 ‘매일신문’(1927년 12월20일자)은 “전남 대흥사에서 기이한 십자가 발견-대흥사에서 예수교십자가를 발견해 순금으로 지은 고귀한 십자가.”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경성제대 교수였던 오다 쇼고(小田省吾)의 의견을 참고하여 “SV는 과연 누구, 의문의 해결은 막연-서반아(스페인)나 포도아(포르투갈) 제조품”이라는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분실 전에도 가톨릭에서는 십자가를 기증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 세스페데스 신부가 왜군 군종신부 신분으로 여러 해 동안 머물렀던 경남 창원의 웅천왜성에서 마산교구 주최로 2009년부터 매년 기념 미사를 봉헌해오고 있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천주교 전래 시점을 200여년 앞당기는 증거 자료로 삼으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흥사가 순금으로 이것을 복원하여 가톨릭에 기증한다는 데에 대하여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1981년 ‘동아일보’에서 의문을 제기했듯이 이 십자가가 순금이 아니라 나무에 금편을 입힌 가벼운 것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26호 / 2018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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