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대 ‘동아시아 전통철학과 불교’ 세미나[br]2. ‘한국불교의 특성에 관한 기초적 이해’

기자명 이병욱

“회통·호국불교 정신, 현대 한국사회에 요구되는 덕목”

▲ 승군을 지휘하는 서산 휴정 스님. 박광진 作 1976년.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온 지 1700여년이 넘었다. 그동안 불교는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한국인의 종교가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는 적게 있거나 없고, 한국에만 있는 불교의 특성은 무엇일까? 예를 들면, 탑의 경우 인도의 발우모양 탑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에서는 전탑이 주류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석탑이, 일본에서는 목탑이 주류가 되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화강암이 풍부해서 그것으로 탑을 만드는 것이 편리했고, 일본에서는 나무가 많기 때문에 그것으로 탑을 만드는 것이 편리했으며, 중국에서는 벽돌을 구워서 탑을 만드는 것이 중국의 여건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는 인도에서 유래된 불교의 탑을 동일하게 수용했지만, 그 나라의 여건에 따라 그 탑이 다르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한중일, 인도불교 수용했지만
나라 상황 따라 다르게 전개
호국·회통은 한국불교 특성

특정종파의 맹신 막기 위해
한국불교사상가들 회통 강조
균형적 사고하는데 있어 유리

전쟁 유독 많았던 한반도에서
호국사상 강조될 수밖에 없어
현대공동체 정신 회복에 필요

이것을 확장해서 불교문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인도의 불교문화를 수용한 것이지만, 나라의 상황에 따라 불교문화가 다르게 전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불교의 특성에 대해 개설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된 내용이 있고, 또한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제기된다. 먼저 개설서에 소개된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호국불교, 종합불교(회통불교), 한국불교의 복잡성을 거론한다.

먼저 ‘호국불교’에 대해서 살펴보면, 신라시대 원광의 세속오계, 고려시대의 대장경 조판, 조선시대의 청허휴정과 사명유정 등의 승군활동 등이 호국정신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한다. 그다음 ‘종합불교’에 대해 살펴보면, 원효의 종합불교가 후일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은 선교일치를 주장하고, 그리고 조선조에서는 전 종파를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시켜서 종합불교를 이루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불교의 복잡성’으로 독성각, 산신각, 칠성각의 삼신각(三神閣)을 거론하고, 사찰의 신중단(神衆壇), 도선(道詵, 821~898)에 의해 일어난 풍수신앙과 불교의 결합 등을 거론한다.

일반적으로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 회통(會通: 화쟁)불교, 줄여서 통(通)불교를 거론한다. 필자는 회통불교가 한국인의 감정적 성격을 완화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감정을 불교의 종파문제에 적용하면 자신의 종파 이데올로기는 맹목적으로 따르고, 자신과 다른 종파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배타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현상을 대비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필자는 이 현상을 대비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회통(화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불교에서 회통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그것은 한국불교인이 자신의 종파 이데올로기에 맹종할 가능성이 많은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착하게 살자는 구호가 사회에 유행한다면, 거꾸로 그 사회에 착하게 살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을 암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착하게 살고 있다면 그런 구호가 사회에 유행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속한 불교종파의 이데올로기에 맹종하지 않았다면, 거꾸로 회통불교를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회통불교가 한국불교의 자랑이 아니라 한국인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것은 뒷날 조선조 유교와 현대의 기독교 문화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조선조 유교에는 사색당쟁이 있었고, 현대의 한국 기독교는 다른 나라의 기독교보다 더 배타적인 경향이 강하다. 한국불교에서 비교적 배타성이 적었던 것은 불교의 기본적 성격에다 회통을 강조한 한국불교사상가의 혜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호국불교’와 관련해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라가 외침을 당하였을 때에 나라를 구하고 지키는 지도 원리로서의 불교이다.” 여기서는 ‘호국불교’에 대한 정의를 더욱 좁혀서 “나라가 외침을 당하였을 때에 나라를 구하고 지키는 불교인의 활동이다”라고 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국불교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서 호국불교, 곧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불교인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대부분의 불교국가(불교가 전파되어 어느 정도 세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불교인이라면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호국불교’가 한국불교의 특성이 될 수 없다.

이 ‘호국불교’는 ‘불교’라는 종교현상의 보편적 속성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호국불교’가 ‘불교’라는 종교현상의 보편적 속성에 가까운 것이 한반도에서는 더욱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반도는 외적의 침입이 다른 불교국가에 비해서 많이 받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불교인’도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활동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이 자연히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호국불교’라는 개념은 다른 불교국가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이 ‘호국불교의 현상’이 다른 불교국가에 비해 한반도에서 많이 일어났고, 따라서 이 ‘호국불교’라는 개념이 한국불교의 특성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에 불교계가 ‘호국불교’라는 미명 아래 정권에 협조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연구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비판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호국불교’라고 주장하면서 정권에 협조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려와 조선시대에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에 목숨까지 내걸고 나라를 지키려는 활동까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 ‘호국불교’라는 개념이 일본불교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당시에 일본불교계에서는 ‘호국불교론’이 시대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고, 이러한 일본 근대불교학의 ‘호국불교론’이 한국의 불교계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제가 어떤 의도에서 사용하였든 간에 한국불교의 특성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병헌 교수의 다음 제언에는 필자도 동의한다.

“이제 ‘호국’이라는 개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한국불교사에서의 국가와 불교의 관계, 그리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호국의 사례만을 일방적으로 모아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일반화시키려는 기왕의 이해방법은 재고되어야 한다. 시대와 주제별로 불교의 국왕관과 국가관, 국가발전과 사회통합에서의 불교의 역할, 지배체제와 불교교단체제의 관계, 지배세력의 교체에 따른 불교의 변화, 외적의 침입과 승려의 군사적 활동 등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불교가 담당하였던 사회적 역할과 호국불교의 실상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연구에 적용해서 의미 있는 결론을 이끌어내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연구가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회통불교’와 ‘호국불교’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필자는 앞에서 ‘회통불교’는 한국인이 감정적인 성향이 강해서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제어하는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이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요구되는 사항이다. 감정에 치우지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오늘날에는 더 요청되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시민의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이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그런데 앞에 소개한 ‘회통불교’의 내용은 어느 종파 이데올로기에도 휘둘리지 않고 균형적 사고를 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불교의 종교 이데올로기에만 한정되지 않고 여러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한국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 ‘회통불교’는 지금은 그 역동적 모습이 사라진 것이지만, 다시 이 땅 위에 그 활발한 모습을 나타내서, 불교 안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사회 전반으로 그 사고방식이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21세기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내부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고가 더욱 넘쳐나고, 그에 따라 공동체를 생각하는 정신이 빠르게 쇠퇴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불교의 특성으로서 ‘호국불교’의 정신은 여전히 한국사회에 요청되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병욱
중앙승가대 강사

 

 

 

‘호국불교’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키고 구하는 불교인의 활동으로, 특히 조선조 임진왜란 때 휴정과 유정의 승병활동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집권층이 불교를 탄압하였고, 게다가 무능해서 일본군의 침입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탄압받고 있던 불교에서 집권층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위해 승병활동을 한 것은 한국불교의 자랑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요구되는 덕목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정신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데, 한국의 ‘호국불교’의 정신은 이러한 한국사회에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회통불교’와 ‘호국불교’의 정신을 통해서 한국사회가 이성적 사유능력이 풍부해지고 나아가 공동체를 위하는 정신이 뿌리내릴 수 있다면, 한국사회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점에서 한국의 ‘회통불교’와 ‘호국불교’의 정신은 과거의 관점에서 추억할 덕목이 아니라 오늘날에서도 여전히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