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법정 스님과 잇펜 스님
24. 법정 스님과 잇펜 스님
  • 김호성 교수
  • 승인 2018.02.06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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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 법정’서 무소유 수행자 잇펜을 보다

▲ 법정 스님과 잇펜 스님은 무소유 삶을 추구했던 ‘비구’였다. 사진은 법정 스님이 머무르던 불일암.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일본 정토문의 한 종파인 시종(時宗)의 개조 잇펜(一遍, 1239~1289)스님이 생각났습니다. 거꾸로 잇펜 스님을 생각하다가 법정 스님을 떠올리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나무아미타불’을 읽은 많은 분들이 잇펜 스님 이야기를 통해서 원효 스님을 떠올린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법정 스님 “책 절판” 유언 남겨
잇펜 스님 왕생 직전 책 불태워

법정 스님, 평생 ‘무소유’ 실천  
“나만이라도 비구로 살것” 발원

잇펜 스님, 집도 절도 없었던 분
16년간 두 발로 일본 전역 순례

법정과 잇펜의 또 하나 공통점
자기만의 길 홀로 개척한 비구


처음 법정 스님을 통해서 잇펜 스님을 떠올린 것은 바로 스님의 유언을 전해 들었을 때였습니다. “책을 절판(絶版) 시켜달라”는 그 말씀 말입니다. “아~”라고 하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그것이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그런 사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때 미리 충격을 받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께서도 출가하실 때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책이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평생 책을 읽고 책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책 중독’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치유의 계기를 잇펜 스님을 통해 얻게 되었습니다. 잇펜 스님은 왕생(往生) 1주일 전에 평소의 메모라든가 편지 또 저술 등을 마당에 쌓아놓고 불태우고 맙니다.

이를 저는 ‘분서(焚書)’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법정 스님의 절판 선언을 저는 잇펜 스님의 ‘분서’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법정 스님의 책 절판선언에 등장하는 키워드(key word)는 ‘말빚’입니다. “내세에까지 말빚을 갖고 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한편 잇펜 스님이 책을 분서한 이유는 “나무아미타불”이 있기 때문에 다른 책들이나 글들은 다 사족이라는 관점에서입니다. “나무아미타불”에 집중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로서는 이러한 분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글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입니다. 자기입니다. 거기에는 ‘에고(ego)’가 붙습니다. 한때 제가 글을 열심히 쓰고 책을 마구 펴내고 할 때 사실 제 생각에는 제가 쓴 글이나 책을 통해서 죽고 난 뒤에도 살아남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이 책입니다.

그런데 두 스님께서 책을 분서하신 것은 이미 에고를 버렸음을 나타냅니다. 우리 인간을 이루는 “오온(五蘊)이 모두 공이라”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진리를 분서라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연출한 것으로 저는 보고자 합니다. 

법정 스님에게서 잇펜 스님을 떠올리게 하는 두 번째 사건은 ‘비구 법정’이라는 자칭(自稱)에서입니다. 여기에는 ‘비구’와 ‘법정’이라는 말을 각기 따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나는 비구다”라는 생각으로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야말로 비구일생이었습니다. 이런 의식으로 살았던 스님의 사례를 찾아본다면 그렇게 쉽게 찾을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모두 아시겠습니다만 ‘비구(bhikkhu)’는 ‘걸사(乞士)’로 번역됩니다. 법정 스님 스스로 ‘걸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무소유(無所有, aparigraha)’를 말씀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스님들도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죽습니다. 가장 무소유에 철저한 종교인이라는 자이나교(Jainism)의 승려들도 옷은 소유하지 않지만 물주전자나 벌레를 쓸어버리는 총채 같은 것은 소유하고 다닙니다. 

‘무소유’를 주장하셨으므로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법정 스님은 언행일치를 하신 분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언을 통해서 심각한 자기성찰을 하고 저 부처님 당시의 비구들과 같은 비구로서의 삶을 추구하려는 자기의지의 표백(表白)으로 본다면,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구 법정’이라는 말 속에는 “다른 스님들이 어떻게 살든지 무관하게 나만은 ‘비구’로서 살겠다”는 고집 같은 것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비구 의식(意識)’을 철저히 생활 속에 구현한 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서 올림픽 같은 것을 한다면 메달 권에 들어갈지도 모를 후보군에 잇펜 스님의 이름도 거론됩니다.

사실 스님으로 출가하여 집을 떠났다 하더라도 절은 있지 않습니까? 대중들이 함께 모여서 사는 것이라 사적 소유는 아니라 해도 살 수 있는 절은 있습니다. 그러나 잇펜 스님에게는 절도 없습니다.

절이 있으면 정주(定住)하게 됩니다. 정주하는 수행자는 아무래도 유행(遊行)하는 수행자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소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잇펜 스님은 집도 절도 없었습니다. 16년 동안 일본 전역을 두 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원효스님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유행의 삶은 인도와는 기후풍토가 다른 동아시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보통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잇펜 스님에게는 그러한 생각은 용납 안 됩니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분 역시 ‘비구’였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초기교단의 수행자들처럼, 인도에서 살았던 비구들처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온전히 ‘비구’일 수 있겠지요. 당시의 사람들이 잇펜 스님을 ‘모든 것을 다 버린 성자(捨聖)’라 부른 것도 그런 맥락에서입니다.

마지막으로 ‘법정’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법정’은 법명입니다. 그런데 법명을 받아서 출가생활을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대개 법호(法號)를 받게 됩니다. 법호를 받는 것은 새로운 스승을 모실 때 이루어집니다. 입실(入室) 건당(建幢)이라는 형식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거부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잇펜 스님은 “나의 교화는 나의 일생에 있을 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법정스님의 절판선언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만, 다른 하나는 제자들에게 “너희의 교화는 너희의 일생에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일 터입니다. 저의 해석입니다만, 이 말씀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교화하라는 것입니다. 스승에게 의지하거나 기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호를 갖는다는 것이 바로 “나는 어느 스님의 법을 이어 받았다”라는 이야기가 되어서, 스승이 속한 계보 속으로 들어가서 안주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길은 편안하기도 하고 외롭지도 않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자기만의 길은 아닙니다. 법정 스님은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여 홀로 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법정 스님 역시 많은 스님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스님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법정’ 안으로 용해시켜서 ‘법정’을 키워가는 데 활용할 뿐입니다. 그 스님들의 권위에 기댈 생각은 없었던 것입니다. 스님 스스로의 교화는 스스로의 법으로 스스로가 책임졌을 뿐입니다. 실로 장부라고 한다면, 어찌 여래가 가신 길이라 하여 졸졸 따르겠습니까?

사실 법정 스님은 자력의 길을 걸었던 분이고 잇펜 스님은 타력의 길을 걸으신 분입니다. 그러한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두 분 스님이 다 각자의 길을 극한까지 걸어가셨기에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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