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지역단 교정교화팀 서승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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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보신문
  • 승인 2018.03.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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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정법 지키려는 그 마음이 포교”

 
“광주? 돈 워리, 돈 워리! 아이 베스트 드라이버”

1980년 5·18 소재 영화관람
전법하는 사명감 다시 느껴
힘들었지만 불교대학 재입학

1980년 5월, 서울 한 택시운전사가 서툴고 짧은 영어로 독일인과 말을 나눴다.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 10만원을 준다는 말 때문이었다. 황량한 광주 거리, 그 거리에 오가는 군인들과 탱크 그리고 광주 사람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왜 그라는지….” 기자였던 독일인은 대학생과 광주지역 택시운전사의 도움 속에 촬영을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택시운전사는 집에 혼자 있을 딸 걱정에 초초해지는데….

“어머니 영화 보러 가시게요. 제목이 ‘택시운전사’인데 5·18을 다룬 영화래요.” 가을 어느 날, 며느리의 전화를 받았다. 문득 서늘한 바람을 싣고 계절이 비집고 들어왔다. 유난히 무더웠던 한 여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절기에 길을 내어주고 찬바람이 일고 있었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만섭의 이야기이다. 독일인 기자 피터가 5·18의 징후를 알아차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취재를 통한 희생과 노력으로 더 큰 희생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 기자를 광주까지 태워준 택시운전사의 책임감이 컸다. 또 운전사는 물론 광주시민들과 약속을 목숨 걸고 지킨 기자 모두 오직 한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그 기자가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렸다. 이로 인해 군부정권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대학살의 참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광주의 은인이다. 민주주의의 은인이다. 인연의 소중함을 느꼈다. 마음챙김을 할 수 있게 해준 아들과 며느리에게 “고맙다, 잘 보았다” 마음을 전했다. 영화를 보고 5·18을 돌이켜봤다.

“아낙들이 만든 주먹밥 입에 물고 쫓기면서 민주주의를 울부짖었다. 핏물은 길 위에 파도치고 총소리 울며 숨을 곳 찾던 그날,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다. 이제라도 영혼을 달래는 이 마음, 기쁨으로 극락왕생 하옵소서. 그대들이 가시는 곳 연화의 정토의 길에 아미타부처님의 영접이 계실지니….”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쌀과 주먹밥을 나눴던 것은 식구를 돌보는 사랑이었다. 광주의 소중한 5월 정신은 해마다 금남로에서 영가들을 추모한다.

이처럼 목숨 걸고 지키려는 그 마음들이 포교의 마음이며 부처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포교는 마음을 잘 써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불사이리라. 내가 먼저 거울이 되고 주어진 하루를 잘 사는 게 포교사의 하루일 것이다. 그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광주 향림사에 불교대학이 처음 생겼을 때, 난 큰딸을 입학시켰다. 그런데 직장 때문에 서울로 가게 되자 대신 내가 입학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불교대학을 1기로 졸업했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 포교사 품수를 받았다.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3년이 지난 후 자격을 갱신하지 못했다. 자격증이 없어도 봉사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광주교룡정보산업학교 소년원 보호센터에서 봉사를 10년 넘게 하고 있었다. 포교원이 활성화 되면서 포교사들이 많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자격 없이 활동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다시 포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싶었다.

큰스님 추천으로 서울에서 교육 받고 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졌다. 그때는 형편이 좋지 않았다. 4남매를 키워야 했고, 남편은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와 식구 모두를 혼자 돌봐야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부처님 제자로서 전법을 위해 포교사 자격을 얻으려 불교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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