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사순례

기자명 일선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3.19 13:24
  • 수정 2018.03.19 13:25
  • 댓글 0

봄맞이 대청소를 끝내고 나니 단비가 흠뻑 내렸습니다. 동백꽃은 서로 다투어 붉은 입술을 살포시 내밀고 조사전 앞에는 매화가 마침내 향기를 터트렸습니다. 비가 그치고 새벽 도량석에 나가보니 연밭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옵니다.

끝 없이 흐르는 중생의 업력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수행
기도·참선은 용광로와 같아
삼매의 불로 중생 업력 녹여

오늘은 우리 절 신도님들과 정초기도를 마치고 남해로 삼사순례를 떠나는 날입니다. 30여년 만에 다시 밟는 보리암의 풍광이 눈앞에 나타나고 가슴이 설레는 것은 신도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보리암은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성취하고 개국한 뒤 산을 금으로 덮으라는 뜻으로 금산 보리암이라고 했다는 설화가 전해옵니다. 문득 깨달아서 보고 듣고 지각하는 소소영령한 보리자성을 순간순간 자각하면 하루에 황금 만냥을 쓰는 것과 같다고 보조국사는 ‘수심결’에서 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항상 금산 보리암에 상주하는 것입니다. 또한 까치 울음소리를 통해서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에 들어간 인연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바닷가에 상주하며 고해의 중생들을 천수천안으로 살피시며 소리를 통해서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무량한 복덕을 구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부들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믿고 걸음마다 잊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문득 듣는 성품을 요달하기 때문에 보리자성을 증득하기 위한 순례를 떠나야만 합니다.

두 번째 순례길은 용문사였습니다. 30여년 전 초발심 시절에 잠깐 머물렀던 용문사는 소박한 지장도량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정비됐지만 진입로 옆 계곡의 바위들이 웅장하고 법당에 부처님은 변함없어 더없이 반갑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반드시 용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끝없이 흐르는 중생의 업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기도와 염불 참선은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삼매의 불로 중생의 업력을 녹이는 과정이기에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발심의 원동력이 약하면 끝까지 중생의 업력의 흐름을 거슬러 차단하고 번뇌장과 소지장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산내 암자인 염불암 입구에는 걸음마다 나무아미타물 일념삼매를 성취하면 여기가 바로 극락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습니다. 여기에는 30여년 전 오직 수행일념으로 살다간 초삼선사님이 계셨고 흠모했던 선지식이었기에 더욱 숙연해졌습니다. 그때 훌륭한 상호를 갖추었고 우람한 목소리를 가진 초삼 선사님은 어린 나이에 일찍 발심했다고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다시 신심을 내어 입방을 청했지만 끝내 허락을 해주지 않아서 되돌아섰던 발걸음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 일선 스님
마지막 순례길은 화방사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꽃다운 절이었습니다. 수행자가 홀연히 발심을 이루어 문득 돈오를 이루고 다시 한번 크게 죽어서 용문을 통과하면 비로소 산 넘어 꽃피고 새가 우는 한 마을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바로 만화방창 호시절인 화방사입니다. 산세가 아늑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꽃봉오리를 일깨우며 약사유리광여래불은 묵연히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도량입니다.

지금 제방선원에서는 수행자들이 동안거를 마치고 보살만행을 실천하고 자기가 얻은 바를 선지식을 찾아가 점검하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출가하여 공문에 들어선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깜깜하여 더욱 30년을 정진해야겠습니다.

일선 스님 장흥 보림사 주지 sunmongdoll@naver.com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