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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 이야기 39 - 욕망(慾望)

기자명 목석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행복 원치 않는다면 멋대로 하라

절집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욕망(탐욕)이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오늘날의 문명에 이르는 전과정은 어찌보면 인간 욕망의 창조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개개인이 집착해 온 욕망이 오늘의 세계를 이룩한 것이리라. 욕망이 없다면 더 이상의 희망도 근면도 의미도 없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왜 그토록 욕망을 경계하였을까. 그것은 매우 간단 명료하다. 욕망은 개인에게 조건부의 행복과 일시적인 성취감을 주기도 하고 나아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창조물만을 볼 때에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욕망의 속성이란 끝없는 가지치기이므로 결국은 그 욕망의 창조물 뒤에는 개개인은 고통과 절망과 불행으로 빠져드는 일이 많다. 한 예로 증권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한 달에 천 만원 가량 월세수입이 있는 중산층 가정이다. 그 가정의 불행한 사연은 이렇다. 남편은 모 회사의 증권이 틀림없이 배로 뛸 테니 4억원만 투자하자고 했다. 그러나 아내의 적극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몇달 뒤 그 회사의 주가가 정말 거의 배로 뛴 것이다. 투자를 했더라면 3억원 가량은 굴러든 것이다. 이 기사를 본 뒤부터 남편은 아내 때문에 3억원을 잃었다며 이성을 잃고 아내를 못살게 윽박지른 것이다. 아내의 주장은 주식으로 번 돈은 결국 주식으로 망하기 때문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것이며, 또 자기 돈 1원도 잃은 것이 없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 뒤 남편은 결국 자기 화를 못이겨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만나 하반신을 못쓰게 된 것이다.

욕망이란 욕망의 창에 투영된 환영(幻影)이 실재인듯 착각하여 집착하는 것이다. 마치 3억원이 자기 돈인 양. 이것이 욕망의 속성이고, 어떤 일이든지 욕망의 결과는 똑같다. 그래서 욕망은 지혜를 가리고 정견(正見)을 잃게 한다. 부처님은 욕망과 행복은 절대 병행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고 계시다. 부처님의 대자비는 모든 생명가진 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 한 마리의 개미도 자신이 오고가는 한 줄기 작은 길에 장애가 있으면 그걸 피해가는 지혜의 삶이 있다. 하물며 인간이 잘살고 행복하고자 닦아가는 그 길에 고통과 불행이 깔려 있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욕망은 모든 죄악과 불행의 원천이다. 욕망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장애가 생기면 그걸 피해서 가기보다는 분별력의 상실로 인해 분노와 고통과 시기와 질투와 투쟁과 온갖 음모와 파멸을 불러일으킨다. 대궐 같은 집이라 해도 잠자는 곳은 여덟 자 뿐이요, 논밭이 만경(萬頃)이 되어도 하루 먹는 것은 두 되뿐이라는 동양 성현의 말이나 재산의 수준을 높이기 보다는 욕망의 수준을 낮추라는 서양 성현의 말도 모두 욕망이 물러난 만큼 안락과 평화가 깃든다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오죽했으면 탐욕을 독(毒)에다 비유했을까.

인간의 감각기관 즉, 눈, 귀, 코, 혀, 피부, 뜻 등의 기관은 외부의 대상을 만나면 즉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익이 없거나 무관할 때는 각 기관이 문을 닫지만 대상에 유혹될 때는 그 해당기관의 문은 활짝 열리고 그 유혹에 따르기를 마음으로 전달한다. 이때 마음의 통제가 없을 때는 그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이 여섯 기관은 항상 유혹이 출입하므로 여섯의 도적이 드나드는 문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이 도적을 물리칠 마음의 통제력을 잃을 때 욕망이 활개를 치므로 불교에서 항상 마음을 관찰하고 잘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 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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