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법보신문·선학회, ‘출가’세미나 ①
월정사·법보신문·선학회, ‘출가’세미나 ①
  • 정리=이재형 기자
  • 승인 2018.04.17 11:3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가자는 연꽃처럼 속된 세상 맑히는 회향의 존재”

▲ 월정사와 법보신문, 한국선학회는 4월13일 출가의 의미를 성찰하고 출가자 감소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출가를 주제로 공동세미나를 개최했다.

 

인도의 출가문화와 불교

불교는 본래 출가지향 종교
인류 첫 수행 전문 조직체
재가자보다 위상 훨씬 높아
도덕성은 출가자 필수항목

불교는 본래 출가의 종교였다. 불교역사는 항상 출가 지향에 있다. 이러한 출가자의 공동체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수행 전문 조직체이자 전문 포교 조직체의 출범을 의미한다. 이러한 출가 조직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문 조직체의 거점[사찰]을 확보하여 활동하였다. 이는 같은 인도종교 가운데 불교보다 먼저 있었던 바라문교나 자이나교보다도 빨랐다. 나아가 불교출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여성을 같은 공동체 내 남성과 동등한 개념의 종교인으로 인정한 종교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조직체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전지구적 종교교단 개념’을 천명한 종교일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넘어 있는 사방승가 개념이 그것이다.

불교에서 출가자는 도덕적 권위를 갖춘 스승이자 지도자이다. 붓다는 이러한 도덕적 그리고 사회적 권위를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나아가 출가자가 늘 염두 해야 할 10가지로 자신이 낮은 상태에 있음을, 다른 사람에 생계가 의존되어 있음을, 재가자와는 다른 행실을, 스스로 계행으로 자책하지 않는지를, 다른 수행자가 나의 계행을 나무라지 않는지를, 좋아하는 것에 연연해 하는지를, 자신의 행위에 있어 자율적이고 책임 있게 하는지를, 밤낮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그리고 한처를 좋아하는지를 늘 점검해 보아야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출가자의 위치와 역할은 불법의 온전한 전승과 함께 사회의 사표로서 그리고 대중 교화 활동에 헌신해 왔다는 점에서 재가자들보다 훨씬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불교사는 전반적으로 재가에서 출가로 지향하는 방향에 있다. 대승에 이르러 출가와 재가의 구별이 잠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초기현상에 불과하다. 교리의 내용을 비롯한 모든 대승의 상황이 곧바로 출세간의 출가지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출가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붓다는 100세 법랍의 비구가 성취한 궁극적 경지나 재가자가 성취한 궁극적 경지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재가의 몸으로 이러한 궁극적 경지를 성취하기란 한계가 있음을 여러 곳에서 강조해 설하고 있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궁극적인 경지로서의 목표는 분명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과이고 그 내용에 있어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그 성취하는 과정까지 모두 같다는 것은 아니다. 같다면 굳이 출가의 중요성이 강조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재가자의 조건은 출가자보다 열반 성취에 있어 훨씬 힘들다는 것인데 그 가운데 중요한 이유는 욕애(欲愛)에서 벗어나기 힘든 환경을 들고 있다. 그래서 초기불교의 수행 계위 가운데 재가자는 열반의 아라한보다는 바로 아래인 불환과(不還果)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경전도 있다.

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과 생계를 위한 이해관계라는 조건적 삶에서 벗어나기가 극히 어렵다. 이해관계라는 사심(私心)이 작동한다. 이를 떠난 출세간은 조건성을 벗어난 삶으로서 공심(公心)이 가능하다. 사심에 놓인 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조건적 삶의 구조와 환경에서는 완전한 자유로움과 평화 그리고 안녕이 근본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출세간의 출가가 강조되는 것이다.

출가의 의의를 불교의 대사회적 실천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류사에 있어 붓다의 깨달음과 함께 또 하나의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승가의 결성이다. 승가는 수행공동체이자 동시에 그 시작에 있어 전문적인 교화 조직체로 출발하였다. 붓다의 탄생게와 전도선언에서 열반의 성취와 함께 중생구제가 천명되었듯이 붓다와 붓다의 제자들은 중생구제라는 대사회적 실천운동을 전개하였다. 승가는 세계의 모든 존재들의 이익과 복지, 그리고 행복을 위해 유행하는 조직체이다. 전도 조직의 승가는 각지로 확대되었다. 모든 불교사는 이 같은 전도 선언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 조준호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출가는 세간을 정화시키는 청정제 역할, 마치 연꽃이 더러운 진흙탕에 거하면서 연못을 맑히는 것처럼 출가자는 다시 세속으로 귀환 또는 회귀하여 세속을 성화(聖化)시키는 방식을 띠고 있다. 즉 속된 세상을 성화시키는 회향의 존재로서 출가자이다. 이러한 점에서 출가 승가는 대사회적 참여운동의 전문 조직체이며 전형적인 모델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출가와 한국불교 특징

중국승가 시작은 외국 승려들
출가문제 등 자율적 교단운영
승려 늘면서 국가 통제 강화
한국도 현대에 정체성 재확립

중국은 삼국 위나라 때 율에 의한 수계의식을 통해 출가자가 나온 이후, 동진16국 시대에 한인(漢人)의 출가가 공인되었으며, 남북조말 수초에 체발(剃髮)이 공인된다. 중국불교 초기에는 출가문제나 교단의 운영이 국가권력과 상관없이 독립적이었다. 중국에서 승가공동체의 시작은 교단이 아닌 개개인의 외국 승려들이었고, 그들의 노력에 의해 중국인 승려들이 배출된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불교가 국가와 사회에 통합과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 일조하였지 위협되는 세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불교가 동진16국을 거쳐 남북조시대에 일어난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국가불교적 성격을 보이는 북중국에서 승려수가 증가되고 승단의 세력이 커지면서였다. 이 과정에서 죄를 피하기 위해 출가하는 사도승, 부역 면제의 특권을 얻고자 출가하는 위람승의 증가는 불교교단 내에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고 국가재정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또한 교단세력이 커짐에 따라 국가통치에 위협을 느낀 왕권은 승려와 승단을 통제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승려의 출가와 관련된 전반적인 절차 모두를 국가의 통제 하에 관장하여 국가로부터 공인받은 승려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부역 면제의 특권을 부여해주는 제도를 생각해낸다. 이것이 바로 도첩제이다. 도첩제는 국가권력 하에서 승려와 사원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승려증명서이자 신분증인 도첩제의 확립은 당나라 현종 무렵 때였다. 처음 도첩제도는 허가제이고 신고제였다. 초기에는 출가하여 체발하고 수계의식을 거쳐 승려가 된 후 국가 관리기관인 사부(祠部)에 신청하면 되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당말 무종의 폐불사건으로 불교교단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고 국가의 예속화가 가속화되었고, 5대16국시대의 후주 세종이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중국 전체의 통일을 꿈꾸며 폐불령을 내리면서 불교는 철저하게 국가로부터 통제받게 된다. 폐불령 조칙에 도첩제 부분을 매우 구체적으로 강화시켰다. 이는 송대로 그대로 이어져 출가제도면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 말하자면 출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일정한 절차를 모두 거치면 출가자로서의 자격을 인정하는 도첩을 주는 것으로 강화된다.

그리고 도첩의 관리는 이전에는 3년에 한 번이었던 승적조사를 강화하여 매년 실시하고, 사망이나 환속 시에는 도첩을 반드시 반납해야 하는 등 국가기관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처럼 당말송초에 이르면 중국은 도첩을 받아 국가로부터 승려로서 인정받은 자만이 승려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중국의 승려는 국가가 만든 제도와 절차에 의해 관련행정기관의 관리를 받게 된다. 이러한 운영체제는 왕권이 절대적이었던 중국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화된 출가의식과 제도를 받아들여 한국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동아시아는 절대왕권을 바탕으로 하는 특성상, 중국과 한국은 도승(度僧)과 승단의 운용은 승단의 독자적인 자율에 의한 것이 아닌 국가관리 체제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가의 공인 없이는 수용도 발전도 있을 수 없으므로, 각 시대 왕조의 불교정책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삼국시대에 불교가 공인되고 국가의 불교행사에서 출가자가 배출되었으며, 신라의 자장에 의해 승단이 정비된다. 숭불시대인 고려는 승과제도와 승계(僧階), 승록사(僧錄司), 왕사와 국사제도를 통해 승려의 정치적·사회적 위상이 보장되고 높아진다.

반면 억불시대인 조선은 고려의 모든 불교제도들이 폐지의 수순을 밟아 철저하게 통제되다가 그 존립의 위기마저 겪으며 명맥을 유지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에 의한 30본산제는 승단을 식민지화시켰고,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승려들의 대처식육 만연은 한국의 전통불교를 변질시키기에 이른다. 이에 근대 한국불교계는 청정한 계율 수지를 바탕으로 하는 선종 중심 성격의 임제종과 선학원을 거쳐 통합종단인 조계종의 성립에 이른다.

▲ 장미란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또한 정화운동과 함께 용성의 선율겸행(禪律兼行), 한암과 석전의 선계일치(禪戒一致)와 같이 엄격하고 철저한 계율 실천에 전력한다. 이처럼 청정한 승가로서의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승려들의 노력에 의해 출가승가로서의 한국 전통불교의 기강과 정체성을 확립한다.

정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중생 2018-04-18 16:30:59
승려들은 길거리 탁발부터 재개하라. 이를 통해서 진정한 하심과 자비심을 성취하고 사방에서 목탁소리, 불경소리가 성스럽게 울려퍼지게 하라. 이리 하면 출가자가 절로 생기고 불국토가 절로 되지 않을까 한다.
핑계를 되어 길거리 탁발은 안하고 고상한 척 거들먹거리고 숨어서 고기를 처먹고 못되게 굴고 돼지처럼 살만 찌우고 화장실에서 사는 것이 중노릇은 아닐 것이다.
불상이나 큰스님 등 상전에만 한 없이 절 하고 탁발한다고 하심과 자비심 수행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