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
18.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보현동자상
  • 이숙희
  • 승인 2018.05.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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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현동자상은 인왕과 함께 호법신장

▲ 도갑사 목조문수동자상, 조선전기, 높이 166cm.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8번지에 위치한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동자상은 1988년 10월26일 도난당한 후 회수되었다. 그리고 1997년 12월27일에 또 도난 될 뻔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사진 1, 2). 두 번의 도난 위기를 넘긴 것이다. 원래는 도갑사 입구에 있는 해탈문 안에 인왕상과 함께 안치되어 있었으나 도난 사건 이후 도갑사 도선국사성보관으로 옮겨 보관 중이다. 문수·보현동자상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예로 유일하게 보물 제1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암 도갑사 문수·보현동자상
1988년 도난당한 후에 회수
1997년엔 도난미수 사건 발생
현재 ‘도선국사성보관’에 보관

문수·보현보살 아닌 동자 모습
사자와 코끼리상의 등 위에서
몸 틀어 걸터 앉은 자세 특이
대좌 역할 사좌·코끼리 생동감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상은 높이가 각각 107㎝, 112㎝로 크기 차이가 거의 없으며 특징이나 조각기법도 유사하다. 원래 보살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동자의 모습을 하고 사자와 코끼리 등 위에 몸을 틀어 걸터앉아 있는 자세가 특이하다. 이렇게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동자와 실천의 상징인 보현동자로 추정하는 것이다. 문수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은 모든 부처가 문수보살의 지혜를 통해 정법을 알고 불가(佛家)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문수와 보현이 동자상으로 절 입구에 봉안될 때에는 인왕과 함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호법신장의 역할을 한다. 오랜 세월 탓에 채색이 벗겨지고 많이 바랬으나 오히려 예스러운 맛을 준다.

▲ 도갑사 목조보현동자상, 조선 전기, 높이 164cm. ‘문화재대관’ 보물 불교조각1(문화재청, 2016).

전반적으로 문수·보현동자상은 대좌인 사자상과 코끼리상에 비해 작은 편이어서 왜소하게 보인다. 그러나 작은 얼굴에 늘씬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 여성스러운 모습이다. 머리카락은 위로 올려 두 갈래로 나누어 붉은 띠로 묶었으며 얼굴에는 아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이 엿보인다. 몸에는 긴 도포를 입었고 양쪽 어깨를 감싸는 천의자락이 발밑에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바지를 묶을 때 생기는 특이한 옷주름이 표현되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불화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문수동자는 왼쪽 다리를 반가부좌한 채 오른쪽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지만 보현동자는 두 다리 모두 아래로 내리고 걸터앉아 있어 약간 차이가 있다. 동자상과 대좌는 따로 만들었으며 두 손은 후대에 다시 만들어 끼워 넣은 것이나 손가락 끝마디가 모두 파손되었다. 대좌인 사자상은 동자상과 달리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코끼리상 또한 힘차게 서있는 모습이나 채색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60년 5월 도갑사 해탈문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成化九年癸巳五月 初七日 立柱上樑”)에 의하면, 1473년(성종 4) 5월7일에 해탈문이 완성되었다고 하니 문수와 보현동자상도 이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도갑사 문수·보현동자상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동자상이며 조선 초기라는 조성연대가 비교적 확실하다는 점 등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도갑사에서 볼 수 있듯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한 짝을 이루는 것은 중국 당나라 때 번역된 ‘다라니집경’ 권1에 의거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문수보살은 모두 백색으로 머리 뒤에는 빛이 있으며 칠보영락으로 된 보관을 쓰고 천의를 입고 온갖 장엄을 하며 사자를 타고 있다.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때의 본존은 진금색에 붉은 가사를 입고 칠보관을 쓰고 몸 전체에서 광명을 내며 손으로 모다라를 맺고 칠보로 장엄한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석가불 또는 비로자나불상이다.”

▲ 법수사 사자좌, 높이 74 폭 117cm.

이와 같이 보관을 쓴 석가불(비로자나불)을 중존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이 배치된 삼존불상은 인도에서는 오래된 예를 볼 수 없고 중국 당대 7세기 후반 이후에 크게 유행하였던 불상 형식이다. 실제 벽화나 조각상으로는 중국 돈황석굴, 운강석굴, 용문석굴, 사천석굴 등에 다수 남아 있으며 대부분 코끼리와 사자가 입상으로 표현되었다.

이와 유사한 예로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 문수·보현동자상이 있는데 사자 등 위에서 두 다리를 내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문수동자상 역시 2002년 12월13일 도난되었으나 아직 되찾지 못하였다. 또 한 예로는 1997년 2월18일 도갑사 경내에서 발견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청동문수동자상이 있다. 높이 15㎝ 정도의 작은 불상이지만 사자 등 위에 놓인 연화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유사’ 권4에 ‘문수보살이 사자보좌 위에 앉아 있다’는 신라시대의 기록이 있어 일찍이 사자문수상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로자나불과 문수·보현보살이 결합한 삼존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 등장하였는데 경상북도 성주 법수사 절터와 경주 불국사에서 각각 발견되었다. 법수사 석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본존불과 보살상이 완전히 파손된 상태로 사자좌와 코끼리좌만 경북대박물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사진 3, 4)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불·보살상의 몸체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상들이 너무 많이 훼손되었다. 사자와 코끼리상은 사각형의 받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머리와 다리부분은 없어졌는데 보살상이 앉았던 안장 위에 장식된 구름문과 연화문, 코끼리 머리 위의 굴레와 사자의 날카로운 발톱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문수와 보현보살의 대좌가 확실하다.

불국사 석조비로자나삼존불상 역시 1970년 6월에 불국사 토량처리공사 중에 발견되었으나 현재 협시보살상은 없어졌고 심하게 파손된 본존불과 대좌인 사자와 코끼리상만 남아 있다.

▲ 법수사 코끼리좌, 높이 81, 119cm.

2004년경 논문을 쓰면서 자료 수집 차, 불국사에 갔을 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이 상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어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불국사 경내 기념품 판매소 앞마당에 완전히 분리된 채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석조의 잔편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면, 불상의 대좌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퇴락한 모습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케 하였다. 불국사 비로자나삼존불상이 그 원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왜 그리 안타깝고 답답했던지. 지금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불국사 경내 종각(鐘閣) 근처에 설치된 철책 안에 놓여 있다. 경주 불국사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 최고의 유적지로 문화재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을 정도로 많은 만큼, 그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에도 조금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할 듯하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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